폐지된 예수회의 귀환: 종교 권력과 미국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예수회를 폐지했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도 거듭 추방당했던 수도회는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1814년 공식적으로 복구되었다. 존 애덤스가 토머스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귀환을 거세게 비판했듯, 예수회의 존속은 가톨릭교회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종교 조직이 국가와 개인에게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시민적·종교적 자유는 그 권력 앞에서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함께 걸려 있었다.
기독교 영화 제작사 아둘람 필름스의 크리스 핀토(Chris Pinto) 감독은 예수회의 역사를 종교개혁에 맞선 활동에서 미국의 정치와 현대 정보기관까지 이어지는 권력 투쟁으로 읽는다. 그가 제시하는 연결 고리에는 위클리프의 성경 번역과 청교도의 이주, 링컨 암살 배후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발전, 두 세계대전, 조지타운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맥이 포함된다. 개신교 저자들의 비판뿐 아니라 전직 가톨릭 성직자들의 증언과 저술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예수회 폐지에 대한 보복으로 일루미나티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처럼, 개인적 가설로 제시되는 내용도 있다.
이 역사를 이해하려면 누가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가뿐 아니라,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국가도 하나님의 명령 아래 놓이는지, 서로 다른 종교가 결국 같은 하나님께 이른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성경 예언을 역사 이해의 기준으로 삼을 때 정치적 자유와 신앙은 떨어져 있지 않다. 권력의 정체를 살피는 일에는 무엇을 믿고 누구에게 충성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따른다.
비밀결사 연구와 아둘람 필름스의 설립
수천 년 동안 존속한 비밀결사들이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배후에서 세계를 지배한다는 인식은 아둘람 필름스의 연구를 이끄는 출발점이다.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지뿐 아니라 그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얼마나 오래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는다.
독립 기독교 영화 제작자인 핀토 감독은 성경 예언을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1999년 아둘람 필름스(Adullam Films)를 설립했다. 성경과 역사, 세계 사건을 함께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미국의 기독교 역사를 다룬 작품에서는 역사 재연도 활용한다.

아둘람 필름스의 「미국의 참된 기독교 역사」 예고편에 사용된 역사 재연 장면이다.
회사 이름은 구약의 아둘람 굴에서 따왔다. 사울왕에게 박해받던 다윗이 그곳으로 피신하자 이스라엘의 소외된 이들이 모여들었다.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그들은 함께 나가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웠다. 이들이 다윗에게 모이는 모습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모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아둘람이라는 이름에는 영화와 영상 제작을 통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겠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아둘람 필름스는 언제나 성경적 세계관을 제작 기준으로 삼는다. 기독교 영화 제작사로서 복음을 옹호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옹호하는 데 헌신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며 그분의 예언이 지금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믿음으로 역사와 세계 사건을 살핀다.
예언은 참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예언이 참되다는 확신과 모든 예언의 성취 시점과 방식에 대한 의견 일치는 서로 다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어떤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고 어떤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현재의 세계 사건들이 어떻게 맞물려 앞으로 성취될 예언을 예고하는지도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예언 자체가 참되다는 확신은 유지할 수 있다.

성경의 예언을 역사 속 사건들과 함께 살피는 일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언과 역사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한다. 영화 제작 활동을 통해 이것이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매우 강력한 방법임을 경험했다.
이사야 46장은 미래의 일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 다른 모든 존재와 어떻게 다르신지를 밝힌다.
이사야 46:9 너희는 오래된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요, 다른 이는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요,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6:10 내가 처음부터 그 끝을 선포하고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옛날부터 선포하고 말하기를 “나의 계획이 확고하리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행하리라.”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같은 이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처음부터 끝을 선포하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옛날부터 알리신다는 점을 함께 제시하신다. 예언은 단순히 미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실 뿐 아니라 말씀하신 일을 친히 이루신다. 이사야 46장 10절과 11절에는 계획의 선포와 함께 그 계획을 실행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이사야 46:10 내가 처음부터 그 끝을 선포하고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을 옛날부터 선포하고 말하기를 “나의 계획이 확고하리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일을 행하리라.” 하였고,
이사야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로부터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를 것이라. 정녕,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또한 이루어지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의도하였으니 내가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에서 자신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언의 성취는 그분의 계획과 실행에 달려 있다. 말씀하신 일을 이루시고 의도하신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과 역사를 함께 살피는 일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일이다.
모든 종교가 같은 하나님께 이르는가
하나님께서 예언으로 자신을 다른 신들과 구별하신다는 말씀은 모든 종교가 결국 같은 하나님께 이른다는 생각과 충돌한다. 여기서 비판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모든 종교가 어떤 식으로든 하나이며 동일하다거나, 어느 종교를 믿든 결국 하나님께 이른다는 종교 통합 운동이다. 그 추진 세력으로 예수회, 프리메이슨, 스컬 앤 본스(Skull and Bones), 그리고 대체로 고대 신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지목된다.

모든 종교가 같은 하나님께 이른다는 생각에 맞서려면 먼저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을 그분을 아는 일과 직접 연결한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생은 어떤 신이든 믿기만 하면 얻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은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다. 거짓 신에게 믿음을 두는 것은 영생으로 이끌지 못하며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참 하나님과 거짓 신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종교마다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별에 영생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1:19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1장 19절은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비기며 그 말씀에 주의하라고 권한다. 예언은 먼 미래에 대한 호기심만을 채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어둠 가운데서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예언과 역사를 살피는 목적도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가 이 땅에 펼쳐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 있다.
바티칸 내부의 루시퍼 숭배 의혹과 오를란디 실종 사건
바티칸 내부의 루시퍼 숭배 의혹과 관련해 말라카이 마틴(Malachi Martin)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티칸의 특정 계층에 루시퍼를 공개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증언했다. 단순히 어떤 행동을 사탄적이거나 루시퍼적이라고 비난한 것이 아니라, 루시퍼, 곧 사탄이자 마귀를 실제로 숭배한다는 뜻이다. 직접 목격한 일을 전하는 듯한 증언이지만, 마틴이 지목한 대상은 바티칸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특정 계층의 일부 사람들이었다.

바티칸 내부의 악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로 거론되는 사건은 에마누엘라 오를란디(Emanuela Orlandi)의 실종이다. 바티칸에서 일하던 가족의 십 대 소녀였던 오를란디는 1983년에 실종됐다. 가족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행방을 찾아왔다. 핀토 감독도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러 해 동안 이 사건을 다뤘지만,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었다. 넷플릭스에서도 시리즈로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으며, 제목은 『바티칸 걸』과 비슷한 이름으로 기억했다.
가톨릭 구마 사제 가브리엘 아모르트(Gabriele Amorth)는 오를란디가 납치되어 바티칸의 성적 파티에 이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소개된 아모르트의 발언은 소녀가 모종의 사탄 의식에서 살해되었다는 인상도 주었다. 이 발언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사건에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2013년, 오를란디의 가족들은 교황을 찾아가 자신들의 딸이자 자매인 에마누엘라의 실종을 조사하고 무언가 알아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피에트로 오를란디의 증언에 따르면, 이 만남에서 교황은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따님은 천국에 있습니다. 따님은 천국에 있습니다.”
가족들은 “뭐라고요?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천국에 있다는 말을 사실상 에마누엘라가 죽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어 “그 애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뭘 알고 계십니까? 뭘 알고 계십니까?”라며 캐물었지만, 전해진 이야기에서 교황은 더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들은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며, 바티칸 내부의 루시퍼 숭배와 사탄 숭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로마와 바티칸에서 수백 년 전부터 활동해 온 매우 어둡고 사악한 세력이 현대에도 계속 활동한다는 판단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 은밀한 활동에 관해 아마 가장 신뢰할 만한 증인으로 꼽히는 인물이 말라카이 마틴이다. 마틴은 오랫동안 예수회원이었으며, 스스로 예수회의 정보 부문에도 속했다고 밝혔다. 예수회가 정보 활동을 워낙 비밀에 부치기 때문에 그 운영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틴이 밝힌 정보망 경력은 바티칸 내부의 은밀한 활동을 알 만한 위치에 있었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된다.
1605년 화약 음모 사건과 『맥베스』
1605년 화약 음모 사건은 의사당 지하에 화약통을 설치해 제임스 왕의 개신교 정부를 폭파하고 나라를 장악하려 한 계획이었다. 사건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던 에드워드 코크 경(Sir Edward Coke)은 예수회에 책임을 돌렸으며, 아주 많은 예수회원이 음모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예수회가 가담자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조종해 화약통을 설치하게 했다는 주장도 이 사건의 배후를 예수회로 지목한다.

가이 포크스는 오늘날 『브이 포 벤데타』의 가면으로도 익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를 예수회 공작원으로 지목하는 비판에서 보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누구를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널리 알려진 대중문화의 상징과 포크스의 소속을 둘러싼 비판 사이에는 이처럼 큰 간극이 있다.
화약 음모 사건 이후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도 예수회를 향한 고발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있다. 역사학자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개리 윌스(Garry Wills)는 『마녀들과 예수회원들』(Witches & Jesuits)에서 이 희곡을 화약 음모 사건과 연결한다. 『맥베스』는 ‘화약극’이라고도 불렸다. 예수회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단순한 반가톨릭 음모론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은, 퓰리처상을 받은 저술가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세 마녀와 예수회의 대응 관계
윌스의 해석에서 『맥베스』는 화약 음모 사건의 알레고리다. 알레고리는 등장인물과 사건을 통해 다른 대상이나 사건을 나타내는 이야기로, 여기서는 세 마녀가 예수회에 대응한다. 마녀들이 남자 같은 수염과 여자 같은 가슴을 지닌 모습도 예수회원들을 마녀이자 사탄숭배자, 살인자로 고발하는 묘사로 읽힌다.
두 이야기에서 중요한 공통점은 배후의 존재가 다른 사람을 움직여 왕권을 공격하게 한다는 데 있다. 예수회가 가이 포크스를 조종해 의사당에 화약통을 설치하게 했다는 설명은 마녀들이 맥베스를 조종해 왕을 죽이게 하는 줄거리와 맞물린다.
| 비교 대상 | 화약 음모 사건에 관한 설명 | 『맥베스』의 대응 요소 |
|---|---|---|
| 배후에서 행동을 유도하는 존재 | 예수회 | 세 마녀 |
| 조종을 받아 행동하는 인물 | 가이 포크스 | 맥베스 |
| 왕권을 겨냥한 행동 | 의사당을 폭파해 제임스 왕의 개신교 정부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장악하려는 계획 | 왕을 죽이는 행동 |

헨리 퓨젤리의 「맥베스와 뱅쿠오 앞에 나타난 세 마녀」.
이 대응 관계를 설명한 윌스의 책을 직접 읽고 판단할 수 있다. 예수회를 향한 비판은 이러한 문학적 해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백 년에 걸친 역사에는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프랑스의 군사·정치 지도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 밖의 과거와 현재의 여러 인물이 남긴 비판이 있다. 이들을 함께 살펴보면 예수회가 행사해 온 매우 강력하고 불길한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수회를 향한 오랜 비판은 사전의 뜻풀이에도 남아 있다. 웹스터 사전이나 19세기의 여러 사전에서 ‘예수회원’을 뜻하는 Jesuit와 ‘예수회적’을 뜻하는 Jesuitical을 찾아보면, 예수회의 이름은 기만, 궤변, 결의론,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속임수와 연결된다. 수도회를 가리키는 이름이 속임수와 궤변을 뜻하는 말로도 쓰였다는 데서 예수회가 오랫동안 얻어 온 평판을 엿볼 수 있다.
현지 종교의 수용과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길
예수회가 여러 이교·오컬트 집단과 얽혀 있다는 판단은 세계 각지에서 펼친 선교 활동과 연결된다. 예수회는 중국, 일본, 인도, 아라비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선교사를 보냈다. 이들을 향한 비판은 기독교를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지 종교를 받아들여 불교도, 무슬림, 힌두교도가 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선교사’라는 말에 붙인 따옴표는 기독교 신앙을 전한다는 본래의 역할과 현지 종교를 따르는 행동 사이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비판이 지목하는 종교 수용의 목적은 정치권력을 얻는 데 있었다. 사실상 세계 각국의 정부가 자국의 주된 종교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그 종교 안으로 들어가면 정치 지도자들에게 접근해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국가와 결합한 종교가 이슬람교이든, 어떤 형태의 불교이든, 그 밖의 종교이든 원리는 같았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종교와 정부의 관계를 알고 그 나라의 지배적인 종교를 따랐으며, 수 세기 동안 이런 방식을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예수회 동굴에서 종교 통합을 준비했다는 구상
여러 종교를 받아들이는 활동과 관련해 눈여겨볼 장소는 마스트리흐트의 예수이텐베르흐(Jezuïetenberg), 이른바 예수회 동굴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예수회가 운영한 이 동굴에는 세계 여러 종교의 형상들이 모여 있다. 가톨릭 수도회가 관리하는 동굴에 왜 그런 형상들을 모아 두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현대의 에큐메니컬 운동, 곧 종교들을 하나로 모으는 운동을 준비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여러 종교를 함께 놓고 다루면서 훗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사용할 사상과 논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1962년 10월 11일 개막한 이 공의회의 주장은 여기서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의 하나님이 사실상 이슬람의 신 및 세계의 다른 모든 이교 종교의 신과 같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동굴에 모인 종교 형상들도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가 같은 신을 섬긴다는 종교 통합 구상을 준비한 흔적으로 읽힌다.
손과 이마의 표는 누구를 향한 충성을 나타내는가
종교들을 하나로 모으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짐승의 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 가지가 관련될 가능성을 살펴보려면 성경에 나오는 표의 위치와 충성의 대상을 함께 보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 속한 표가 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밝히며, 그분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사람의 전부를 요구한다.
신명기 6:4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니
마가복음 12:30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마음과 혼뿐 아니라 생각과 힘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충성은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일상에서 되새기는 삶으로 나타난다. 신명기에서는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에 이어, 그 말씀을 손과 두 눈 사이에 표로 두라는 명령이 나온다.
신명기 6:7 네 자손에게 그것들을 열심히 가르칠지니, 네가 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네가 길을 걸을 때나 네가 누워 있을 때나 네가 일어날 때 그 말씀들에 관해 말할지니라.
신명기 6:8 또 너는 그것들을 네 손에 매어 표적을 삼고 네 양 눈 사이에 표가 되게 할 것이며
집에 앉아 있거나 길을 걷고, 눕거나 일어날 때 말씀을 이야기하라는 명령과 몸에 표를 두라는 명령이 함께 주어진다. 두 눈 사이에 두는 표는 기도함과 같은 것이다. 짐승의 표와 비교할 때 눈여겨볼 부분은 표가 놓이는 자리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손과 이마가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3:16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표가 놓이는 자리를 비교하면 누구에게 충성하는가라는 문제가 드러난다. 성경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그분의 표를 지닌다. 반대로 악한 사탄적 체계에 충성하는 사람은 어느 시점에 짐승의 표를 지니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비교하는 표 | 표가 놓이는 자리 | 충성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
|---|---|---|
| 신명기의 표 | 손과 두 눈 사이 | 성경의 하나님께 충성하여 그분의 표를 지닌다. |
|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 | 오른손이나 이마 | 악한 사탄적 체계에 충성하여 짐승의 표를 지니게 되는 것으로 본다. |
표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으며,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일이 일어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사람들이 예측하는 대로 적그리스도 아래 단일 세계 정부가 등장한다면, 에큐메니컬 운동은 짐승의 표와 관련해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이 운동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의 종교 통합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고대 신비 종교의 기만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Secret Mysteries of America's Beginnings』와 『The New Atlantis』 등에서도 다룬 이 문제는 고대 이스라엘 자손이 거듭 빠져들었던 기만과 맞닿아 있다.
은밀한 우상숭배와 비밀결사의 기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거듭 빠져들었다. 비밀결사의 기원을 이 은밀한 우상숭배에서 찾을 때 중요한 것은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일을 행했다는 점이다. 열왕기하 17장 9~12절에는 그 은밀한 행위와 구체적인 숭배 방식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하 17:9 이스라엘 자손이 주 그들의 하나님을 거역하여 옳지 않은 일들을 은밀히 행했으며, 또 그들이 파수꾼들의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읍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모든 성읍에 산당들을 세웠더라.
열왕기하 17:10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세웠으며
열왕기하 17:11 주께서 그들 앞에서 옮겨 버리신 이방인들이 하던 대로 그들이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고 또 악한 일들을 행하여 주를 격노케 하였더라.
열왕기하 17:12 그들이 우상들을 섬겼으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런 일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셨더라.
산당은 파수꾼들의 망대에서 견고한 성읍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읍에 퍼졌고,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에는 형상들과 아세라들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은 주께서 그들 앞에서 옮겨 버리신 이방인들의 숭배 방식을 따라 분향하고 악한 일을 행했다. 이처럼 널리 퍼진 숭배가 처음에는 왜 “은밀히” 이루어져야 했을까? 하나님의 율법이 그 행동을 정죄했기 때문에 동족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다. 그들이 어긴 첫 번째 계명은 다른 신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다.
출애굽기 20:2 “나는 이집트 땅, 종의 집에서 너를 데리고 나온 주 너의 하나님이라.
출애굽기 20:3 너는 내 앞에 다른 어떤 신들도 있게 하지 말지니라.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데리고 나오신 분이 자신임을 밝히시며, 다른 어떤 신들도 그 앞에 두지 말라고 명하셨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은 자신들을 구해 내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었다. 금지된 숭배를 계속하면서도 공동체의 시선은 피하려 했던 데서 은밀한 모임과 의식의 필요가 생겨났다.
헬파이어 클럽과 보헤미안 그로브, 같은 하나님이라는 기만
영국과 유럽 전역의 헬파이어 클럽(Hellfire Clubs)은 이러한 은밀한 숭배가 되풀이된 사례로 꼽힌다. 기독교 사회 안에 살면서도 과격한 행동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비밀리에 모여 술에 취하고 매춘 여성을 불러들였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이교와 우상숭배에 관여했으며, 일부 차원에서는 노골적인 사탄숭배에도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의 숭배 장소와 현대의 비밀 모임을 연결하는 낱말은 영어 성경의 그로브(groves)다. 열왕기하 17장 10절에서 한글 본문이 ‘아세라들’로 옮긴 이 말을 숲과 연결하면, 사람들이 숲으로 나가 은밀히 우상을 숭배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북부 캘리포니아의 보헤미안 그로브(Bohemian Grove)라는 이름도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그곳을 ‘그로브’, 곧 숲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고대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악행의 현대적 모습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끌어들이는 데는 장소를 감추는 것 이상의 기만이 필요했다. 이교의 신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다는 말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나님을 버리는 행동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바알이나 몰렉, 아스다롯을 비롯한 이교 신들을 섬겨도 결국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식이었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대신, 우상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여 금지된 숭배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금송아지를 세운 일은 그 방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금송아지와 바알: 하나님의 이름과 일을 우상에게 돌리다
금송아지를 세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낸 신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주께서 하신 일을 금송아지가 했다고 돌린 것이다. 우상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기 것으로 돌려 그분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름의 뜻도 같은 대상을 섬긴다는 주장에 이용될 수 있다. 바알(Baal)은 ‘주’, 몰렉(Molech)은 ‘왕’이라는 뜻이다. 바알을 ‘주’라고 부르고 하나님도 하늘의 주라고 부른다는 점을 내세워, 바알과 여호와가 결국 하나이며 같은 존재가 아니냐고 설득하는 식이다. 이런 가상의 설득은 호칭이 같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숭배 대상을 하나로 묶는 속임수를 드러낸다.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에는 성경 이야기까지 정당화의 구실로 쓰인다. 여기서 근거로 든 주석과 역사서들은 사람들이 자녀를 제물로 바친 이유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이용한 기만으로 설명한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지 않으셨느냐고 설득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녀를 인신제사의 제물로 바치게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끌어와 다른 숭배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의 호칭, 명령까지 가져다 쓰는 이러한 모방은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가 선언한 말의 성취로 읽힌다.
이사야 14:14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
루시퍼가 되려는 대상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다. 금송아지에 구원의 공로를 돌리고, 하나님의 호칭을 우상에게 적용하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명령을 자녀 희생의 구실로 삼는 데에는 모두 하나님의 것을 모방하여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사탄의 속임수가 있다.
금지된 성경과 위클리프의 번역
성경을 누가 읽을 수 있는가는 종교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가르는 문제다. 『어둠 속의 등불: 알려지지 않은 성경의 역사』(A Lamp in the Dark, the Untold History of the Bible)를 제작하게 된 계기도 성경이 암흑시대를 거쳐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공부한 일이었다. 예수회의 역사 역시 이 성경 역사 시리즈에서 이미 다룬 주제였다.

암흑시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금지되었던 시대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로마와 종교재판이 성경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유럽의 여러 왕도 이에 협력했다는 비판은,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책임을 종교 권력에만 묻지 않는다. 왕들까지 금지에 가담하면서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14세기 신학자이자 영어 성경 번역자였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이런 상황에서 라틴어 성경을 중세 영어로 옮겼다. 그의 번역은 불법으로 취급되었고, 그 때문에 온갖 박해와 반발을 겪었다. 로마 교회와 종교재판의 적대감은 위클리프가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사망한 지 44년 뒤에는 유골을 파내어 뼈를 저주하고 불태운 뒤 강에 던졌다.
위클리프가 지키려 했던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권리였다.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가르치라는 말씀은 그 권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 준다.
마가복음 16:15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계층이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일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은 그 명령과 충돌한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배우고 지키도록 가르치는 책임도 따른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더라. 아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배우려면 먼저 그 명령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권리는 단순히 책을 소유할 자유가 아니라, 말씀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권리다. 마태복음 4장 4절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밝힌다.
마태복음 4:4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 말씀을 자신이 이해하는 언어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위클리프가 라틴어 성경을 중세 영어로 옮긴 것은 일반 사람들이 직접 말씀을 읽고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일이었다.
말씀을 아는 백성이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성경을 읽을 권리는 개인의 신앙생활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알게 되면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도 그 기준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었다. 위클리프의 번역은 그런 의미에서도 로마의 압제에 맞서는 일이었다.

널리 알려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표현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것은 위클리프가 1384년 자신의 성경 서문에 썼다는 다음 문장이다.
“이 성경, 이 성경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위한 것이다.”
위클리프는 사람들이 교회와 국가 모두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법과 명령은 백성뿐 아니라 지도자도 따라야 할 기준이었다. 그러나 백성이 그 내용을 모른다면 지도자가 말씀을 지키는지 판단하거나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성경을 일반인의 언어로 옮기는 일은 통치받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직접 읽도록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당시 러터워스 교구 주임사제 찰리 스타일스(Charlie Styles)는 바로 이 필요가 위클리프의 번역 열정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그 말씀을 아는 것이었다.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백성이 말씀을 알아야 한다. 평민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확신이 위클리프로 하여금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게 했다.
종교개혁의 확산과 로욜라의 회심
위클리프의 저술과 성경 번역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훗날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위클리프의 가르침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보헤미아의 설교자이자 교회 개혁가인 얀 후스(Jan Hus)의 가르침도 종교개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후스와 위클리프 같은 선구자들의 가르침을 다룬 영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이들의 가르침이 널리 전해진 토양에서, 루터를 통한 대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이 확산되자 수많은 나라와 도시, 마을이 로마에서 벗어나 오늘날 개신교라고 부르는 기독교로 향했다. 그 중심에는 성경에 근거한 신앙이 있었다.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던 개혁은 여러 지역이 로마의 권위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커졌다.
이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of Loyola)는 스페인 군인 출신이었다. 전투 중 포탄을 다리에 맞아 한동안 걷지 못했고, 이후 회복했지만 군인으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성인들의 생애를 다룬 여러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특히 도미니코회 창립자인 도미니크 구스만(Dominic de Guzmán)의 생애에 관심을 기울였다.
구스만과 도미니코회 회원들은 종교재판을 운영한 종교재판관들로 지목된다. 로욜라는 이들에게 매료되어 자신도 그와 같은 열성적인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되기를 원했다. 성인들의 생애에서 새로운 헌신의 대상을 찾은 그는 당시 진행 중이던 종교개혁을 저지하고, 사람들이 로마를 떠나는 것을 막는 일에 자신을 바치려 했다.
예수회의 창립과 계속되는 반종교개혁
여러 영토에서 지지를 잃고 있던 교황은 1540년 로욜라를 만나 그와 그가 이끄는 사제단에 임무를 맡겼다. 이들은 자신들을 ‘예수의 단체’를 뜻하는 컴퍼니 오브 지저스(Company of Jesus), 또는 소사이어티 오브 지저스(Society of Jesus)라고 불렀다. 로욜라가 창립한 이 단체는 이후 제수이트 오더(Jesuit Order), 곧 예수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제수이트’라는 명칭은 예수회의 적들이 붙였고 예수회가 나중에 받아들인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숨은 목적을 위한 구실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예수회가 실제로 그런 목적을 품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반종교개혁이라는 비판은 단호하다. 개신교 종교개혁을 뒤엎고 인류를 다시 암흑시대로 되돌리는 것이 그 목표였으며, 반종교개혁을 이루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이 운동은 과거에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American Jesuits』를 제작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반종교개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역사를 밝히려는 데 있었다. 예수회와 반종교개혁의 역사가 미국사에 미친 영향을 다루면서, 미국 남북전쟁과 예수회의 소행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던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발전을 함께 살폈다. 예수회의 활동이 유럽의 종교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미국의 정치적 사건과 근대 사상 운동에도 미쳤다는 주장이다.
사회 정의의 기원과 사회주의 배후에 관한 주장
사회 정의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예수회 사제이자 철학자인 루이지 타파렐리(Luigi Taparelli)다. 사회 정의에 관한 사상 전체가 그에게서 나왔으며, 예수회가 19세기에 카를 마르크스와도 협력했다는 주장에는 독일 제국 초대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신문 발표가 근거로 제시된다. 비스마르크가 당시 예수회 제22대 총장 페터 얀 벡스(Peter Jan Beckx)를 두고, 마르크스와 함께 서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 소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로교 목사이자 역사가인 J. A. 와일리(J. A. Wylie) 목사도 예수회와 공산주의의 관계를 비판했다. 와일리 목사는 예수회가 장악하려는 나라들을 상대로 공산주의를 무기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비스마르크의 발언이 벡스와 마르크스의 협력을 지목했다면, 와일리 목사는 예수회가 공산주의를 이용해 나라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목적에 주목했다.
『두 바빌론』으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 목사도 로마와 예수회를 사회주의 발전의 배후로 지목했다. 『두 바빌론』의 긴 제목은 『두 바빌론, 또는 님롯과 그의 아내에 대한 숭배임이 입증된 교황 숭배』다. 히슬롭 목사가 사회주의의 배후를 다룬 책은 1849년에 쓴 또 다른 저서 『붉은 공화국』(The Red Republic)이다. 세 인물의 비판은 예수회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각각 소요를 부추긴 협력, 국가 장악을 위한 수단, 사상 운동의 발전을 이끈 배후에 초점을 맞춘다.
| 인물·문헌 | 예수회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관계에 관한 주장 |
|---|---|
| 비스마르크의 신문 발표 | 예수회 총장 벡스와 마르크스가 협력해 서유럽의 사회주의 소요를 부추겼다. |
| J. A. 와일리 목사 | 예수회는 장악하려는 나라를 상대로 공산주의를 무기로 사용한다. |
| 히슬롭 목사의 『붉은 공화국』 | 로마와 예수회가 사회주의 발전의 배후에 있었다. |
히슬롭 목사는 붉은 공화국을 요한계시록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붉은 공화국』 137쪽과 함께 제시되는 예언 해석의 중심에는 여인이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로마와 사회주의의 관계를 정치 운동의 배후 문제로만 다루지 않고, 성경에 묘사된 여인과 짐승의 관계에서도 찾은 것이다.
요한계시록 17:3 그가 나를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어가니라. 또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주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히슬롭 목사가 주목한 표현은 짐승의 주홍빛이다. 붉은 공화국을 이 짐승과 연결하면서,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색깔도 붉다는 점에 예언적 의미를 부여했다. 여인과 짐승을 묘사한 성경 본문을 19세기의 정치 운동에 적용한 것이다.
공산주의와 교황제를 연결한 19세기의 비판
요한계시록 17:3의 주홍색 짐승을 공산주의로, 그 위에 앉은 여인을 로마로 읽으면 짐승과 여인은 같은 대상이 아니다. 공산주의의 배후에 로마가 있다는 해석은 바로 이 관계에 근거한다. 로마가 공산주의 자체라는 뜻이 아니라, 여인이 짐승을 타고 있듯 공산주의를 이용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비판을 남긴 저자들은 1901년 이전, 곧 1800년대에 글을 썼다. 개신교 목회자인 J. A. 와일리 목사는 다른 저서에서도 공산주의와 교황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하늘이 진노하여 죄 많은 인류를 징벌할 저주를 내린 적이 있다면, 그것은 공산주의다.”
“하지만 그것이 태어나는 악취 나는 자궁은 교황제다.”
와일리 목사는 공산주의를 죄 많은 인류에 내려진 징벌에 비유하면서, 그것을 낳은 모체로 교황제를 지목했다. 로마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발전의 배후에 있다는 공개적인 비판이었다. 와일리 목사와 히슬롭 목사는 개신교 목회자였지만, 로마와 예수회의 역할을 비판한 저자들이 개신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톨릭 배경을 가진 저자들도 자신의 내부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예수회 내부 경험과 『검은 교황』
예수회를 비판한 가톨릭 배경의 저자 가운데는 수도회 안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19세기의 저명한 가톨릭 인물인 파울 폰 횐스브뢰흐(Paul von Hoensbroech)는 독실하고 유력한 가톨릭 가문에서 성장했다. 귀족에 견줄 만한 집안이었으며, 예수회를 후원하던 아버지는 수도회에 성 하나를 기증할 정도였다. 횐스브뢰흐 자신도 예수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해 14년 동안 사제로 지냈다. 그의 저서 『예수회원으로 보낸 14년』(Fourteen Years a Jesuit)은 이 경력을 제목에 담고 있다. 소개된 영어판은 1911년판이다.

횐스브뢰흐가 예수회를 떠난 이유로는 독일 사회주의의 배후에서 예수회가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점이 제시된다. 그는 예수회를 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뒤에서 작용하는 손으로 묘사했다. 예수회를 후원하는 집안에서 자랐고 직접 사제로도 활동했던 그의 비판은, 앞서 나온 개신교 목회자들의 비판과 달리 수도회 내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전직 가톨릭 수녀 M. F. 큐색(M. F. Cusack)도 예수회를 다룬 저자다. 출생명은 마거릿 애나 큐색(Margaret Anna Cusack)이며, 저서 『검은 교황』(The Black Pope)의 저자 서문은 1896년 3월에 작성되었다. 책 제목의 ‘검은 교황’은 예수회 총장의 별칭이다. 이 별칭에는 예수회 총장이 ‘백색 교황’ 위에서 군림한다는 설명이 연결된다. 백색 교황은 예수회의 꼭두각시와 같은 존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예수회가 지시한다는 주장이다.
이 저자들의 비판은 공산주의의 기원, 독일 사회주의의 배후, 교황권 내부의 권력관계라는 서로 다른 문제를 겨냥한다.
| 저자 | 소개된 배경·저서 | 인용하거나 연결한 내용 |
|---|---|---|
| J. A. 와일리 | 개신교 목회자, 19세기 저술 | 공산주의를 낳은 모체가 교황제라는 비판 |
| 파울 폰 횐스브뢰흐 | 예수회 사제로 14년 활동, 『예수회원으로 보낸 14년』 | 독일 사회주의 배후의 예수회를 발견해 탈퇴했다는 설명 |
| M. F. 큐색 | 전직 가톨릭 수녀, 『검은 교황』 | 예수회 총장을 다룬 저술과 교황 위의 배후 권력 문제 |
교황의 배후 권력과 비밀 회의
예수회가 교황에게 지시한다는 주장의 사례로 거론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초기에 보도된 예수회 지도자들의 비밀 회의다. 주목할 기간은 재임 초기 5년, 6년, 7년 정도다.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는 알려져 있었지만, 외부인은 참석할 수 없었고 회의 내용도 비밀에 부쳐졌다고 한다. 예수회 지도자들이 그 자리에서 사실상 교황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지시했다는 것이다.

19세기 가톨릭 저자들의 글에서 비판한 권력관계도 대체로 이와 같다는 해석이다. 이를 오늘날의 말로 옮긴 표현이 ‘바티칸의 딥스테이트’다. 눈에 보이는 교황의 권위 뒤에서 별도의 조직이 방향을 정하고 지시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배후로 지목된 예수회가 교황권 자체도 움직인다는 주장에는, 예수회가 실질적인 정보 조직이자 정보망이라는 설명도 맞물려 있다.
예수회의 정보망과 E. 하워드 헌트의 증언
예수회의 정보 역량에 관한 증언을 남긴 인물은 전직 CIA 요원 E.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다. 헌트는 워터게이트 재판을 통해 유명해졌으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이’로 불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남미 국가들에서 벌어진 CIA의 활동을 이야기한 영상에서 그는 가톨릭 지도부로부터 정보를 얻었다고 증언했다.

헌트는 가톨릭 지도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까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가톨릭 지도자들이 어떻게 정보를 얻는지야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정보를 얻기는 합니다”
CIA 내부에서 예수회의 정보 역량을 높이 평가한 이유로는 수백 년에 걸친 활동 경험을 들었다.
“우리 기관, CIA에서는 종종 예수회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되고 정교한 정보 조직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 일을 해 왔으니까요.”
정보 수집 능력을 넘어 예수회의 활동 방식 자체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 에밋 매클로클린(Emmett McLoughlin)은 전직 프란치스코회 사제이자 저술가로, 1960년대 가톨릭 사제였던 인물로 소개된다. 매클로클린은 예수회를 ‘치명적인 교황 마피아’, ‘로마의 하수인들’이라고 불렀다. 횐스브뢰흐와 큐색에 이어 매클로클린의 비판에서도 드러나듯, 예수회에 대한 반대는 개신교 저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수회에 대한 비판에는 암살과 첩보 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수백 년 전부터 사람들을 위장시켜 교회와 정부에 보내 염탐했다는 주장도 포함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인용되는 자료는 존 애덤스가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다. 그 편지의 역사적 배경에는 1773년의 예수회 폐지와 그 전후의 갈등이 있다.
가톨릭 내부의 반대와 반복된 추방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도 예수회와 그 활동에 반대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으며, 예수회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의 상당 부분은 가톨릭 저자들에게서 나왔다. 예수회 비판을 모든 가톨릭 신자에 대한 비판과 구분하는 이유다. 가톨릭 내부에서도 예수회의 활동 수단과 종교적 관행을 놓고 충돌이 벌어졌다.

1540년부터 1773년까지 예수회는 유럽 국가들에서 39차례 추방되었다. 상당수는 가톨릭 국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같은 가톨릭 신자들이 예수회에 등을 돌리고 자국에서 내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이유로 지목되는 것은 예수회가 기만, 암살, 혁명, 정부 전복, 학살을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많은 가톨릭 신자가 그러한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종교적 관행도 반대를 불러왔다. 예수회가 이교를 가톨릭교와 섞고 이교 관행을 받아들이자, 당시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이단으로 여겼다고 한다. 정치적 수단과 폭력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종교적 혼합에 대한 반대도 여러 나라에서 예수회를 거듭 추방한 이유의 일부였다.
1773년의 폐지와 1814년의 복구
반복된 추방은 수도회 자체를 없애 달라는 요구로까지 번졌다. 1773년 세계 각지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들고일어나 교황에게 예수회 폐지를 청원했다. 1769~1774년에 재위한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마침내 영구적 교령으로 예수회를 폐지했다.

그러나 영구적 폐지 명령이 예수회의 영구적 소멸을 뜻하지는 않았다. 예수회가 없어졌다는 말에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예수회는 일련의 사건을 거쳐 1814년에 복구되었고, 그 재등장은 미국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미국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본 세 사람
존 애덤스는 1816년 5월 6일 토머스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회의 복구를 비판했다. 예수회 창립자 로욜라의 이름을 따서 예수회를 ‘로욜라의 아들들’이라고 부른 이 편지에는,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선 강한 정죄가 담겨 있다.
“나는 예수회가 다시 등장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이 로욜라의 아들들보다 지상에서든 지옥에서든 영원한 멸망을 더 받아 마땅한 집단을 알지 못합니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 조지 워싱턴과 함께 활동한 프랑스 장교 라파예트 후작도 예수회의 단호한 반대자였다. 라파예트에게 귀속된 다음 경고는 후대 문헌인 찰스 치니퀴(Charles Chiniquy)의 『로마 교회에서 보낸 50년』(Fifty Years in the Church of Rome)에 전해진다.
“이 주들, 즉 미합중국이 언젠가 자유를 잃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로마 가톨릭 예수회 사제들의 손에 의한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민적·종교적 자유의 가장 교활한 적이기 때문이다.”
라파예트의 경고는 미국이 훗날 자유를 잃을 경우를 전제로 하며, 그 위협의 범위에 시민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모두 포함한다. 예수회의 활동을 미국의 자유와 직결된 위험으로 보는 경고가 이미 1800년대에 나온 것이다.
라파예트의 친구였던 새뮤얼 F. B. 모스(Samuel F. B. Morse)는 같은 우려를 책으로 펼쳤다. 모스 부호를 개발한 전신 발명가이자 저술가였던 모스는 『미합중국의 자유에 맞선 외국의 음모』(Foreign Conspiracy Against the Liberti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를 출판했다. 여기서 소개된 판본은 1835년판이다. 모스는 미국 땅에서 벌어지는 일을 ‘유럽의 음모’라고 부르고, 예수회 사제들을 그 주요 공작원으로 지목했다. 이들이 미합중국의 자유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경고였다. 애덤스가 예수회의 복구 자체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면, 모스는 복구된 예수회 사제들의 활동을 미국 내부에서 진행되는 유럽 세력의 음모로 보았다.
바이스하우프트를 예수회 인사로 보는 이유
‘예수회 인사’라는 말은 여기서 사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는 예수회의 일종의 제자로서 협력하며, 그 승인을 받아 목적을 추진하는 사람에게도 이 표현이 쓰였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사제 신분이 아니더라도 예수회의 활동에 참여하는 협력자는 이 넓은 범위에 들어간다.

예수회 사제와 협력자의 구분 예수회 사제와, 사제는 아니지만 예수회의 승인을 받아 그 목적을 추진하는 협력자는 서로 다른 범주다. 핀토 감독은 ‘예수회 인사’라는 말을 두 범주를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를 사실상 예수회 인사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제가 아니었지만 예수회와 협력한 사람이었다는 판단이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이력은 잉골슈타트 대학의 교회법 교수 경력이다. 이 대학을 예수회의 안식처로 보고, 그곳에서 활동한 바이스하우프트 역시 예수회의 목적을 추진하는 협력자였다고 보는 것이다.
바이스하우프트가 바로 그 대학에서 프랑스 혁명의 사상을 제시하고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를 창립했다는 설명도 여기에 연결된다. 예수회가 사제들의 직접적인 활동뿐 아니라 대학의 협력자를 통해 사상을 퍼뜨리고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예수회 폐지에 대한 대응과 복수의 동기
바이에른 일루미나티가 1773년 예수회 폐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은 개인적 가설로 제시된 것이다. 이 가설은 일루미나티를 명백히 기만적인 운동으로 보며, 예수회가 개신교도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등을 돌린 가톨릭 세력과도 싸우기 위해 마련한 수단이었다고 추론한다. 관련 문헌으로는 1787년 뮌헨에서 출판된 바이에른 일루미나티 문서들과, 같은 해 출판된 바이스하우프트의 편지인 『스파르타쿠스 서신』이 제시된다.

이 가설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회를 몰아낸 세력 가운데 같은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여러 나라에서 예수회를 추방하고 교황에게 수도회 폐지를 요구한 이들에게 대응하려면, 기존의 개신교 상대 투쟁만으로는 부족했다. 개신교와 계속 싸우면서 가톨릭의 적대 세력도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를 드러내는 예수회 측의 말은 실제 회의록이나 선언문의 인용이 아니라, 그 입장을 풀어낸 가상의 발언이다.
그 동기로 지목되는 것은 복수다. 복수가 예수회 역사에서 하나의 교리를 이루며, 예수회 사람들이 자신들이 당한 부당한 일을 결코 잊지 않고 기회가 오면 복수하겠다고 했다는 설명이다. 이 가설에서 일루미나티는 새로운 사상을 퍼뜨리는 조직인 동시에, 예수회를 추방하고 폐지하도록 만든 세력을 겨냥할 도구였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와 이성의 여신
프랑스 혁명을 가톨릭 세력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견해는 이러한 동기와 맞닿아 있다. 예수회를 연구한 일부 역사가들도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프랑스를 보복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이유는 그 나라가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옛 유럽의 영광’이라고 불릴 만큼 언어와 문화를 갖춘 나라였지만, 앞서 낭트 칙령을 폐지하면서 많은 개신교도를 몰아냈다. 개신교 인구가 남아 있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적었고, 국민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였다.

성경을 읽지 않던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세속적 인본주의와 이교 사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리에 희생되었다. 그 교리들의 출발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바이스하우프트가 일루미나티 운동을 통해 전개한 사상이다. 이를 보여 주는 사례가 혁명 세력이 높이 받든 이성의 여신이다.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는 이 여신을 받드는 것은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하는 권한을 인간의 이성에 두겠다는 뜻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추구한 것은 가톨릭을 개신교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혁명 세력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없애려 했기 때문에 개신교도, 가톨릭도 원하지 않았다. 두 종교 전통을 모두 거부한다는 성격이 일루미나티를 예수회의 무기로 보는 가설에서 중요하다. 가톨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는 같은 가톨릭 신자들을 공격하기 어렵지만, 양쪽을 모두 거부하는 운동이라면 기존의 적과 새롭게 적대하게 된 세력을 함께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공격 대상 | 보복 수단 가설에서의 위치 |
|---|---|
| 개신교도 | 예수회가 기존에 싸워 온 상대 |
| 예수회에 등을 돌린 가톨릭 세력 | 추방과 폐지 요구로 새롭게 싸워야 할 상대가 된 세력 |
| 두 전통을 모두 거부하는 일루미나티 운동 | 양쪽을 공격할 수 있게 하는 무기라는 가설 |
이 운동의 원리는 오늘날의 말로 세속적 인본주의 또는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투적 무신론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단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성경, 기독교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짓밟고 사회에서 몰아내려는 적극적인 적대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바이스하우프트의 말년과 일루미나티 사상의 계승
보복설을 뒷받침하는 단서로 제시되는 것은 바이스하우프트의 말년과 동료의 비난이다. 온라인 『가톨릭 백과사전』의 「일루미나티」 항목에 따르면, 바이스하우프트는 말년에 가톨릭교회로 돌아왔으며 로마 교회의 인정을 받으며 죽었다. 해당 항목은 헤르만 그루버(Hermann Gruber)가 쓴 글로, 1910년 『가톨릭 백과사전』 제7권에 실렸다.
일루미나티 내부에서도 바이스하우프트와 예수회의 관계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와 함께 운동을 이끌었던 저술가이자 조직가 아돌프 폰 크니게(Adolph von Knigge) 남작은 바이스하우프트를 비밀 예수회 인사라고 비난했다. 이 동료의 비난과 말년의 가톨릭교회 복귀가 바이스하우프트와 예수회의 관계를 가리키는 단서로 함께 제시된다.
개인의 이력에 더해, 이후 사상의 전개에서도 같은 관계를 찾는다. 예수회가 19세기에 일루미나티 운동의 원리들을 받아들여 사회 정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결합했으며, 그 원리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내적 핵심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바이스하우프트가 만든 조직과 예수회를 연결하는 근거에는 이처럼 뒤에 나타난 운동들에서도 같은 원리가 이어졌다는 해석이 포함된다.
이 시대의 관련 문헌은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 목사의 1849년 저서 『붉은 공화국』(The Red Republic)이다. 표제지에는 ‘묵시록의 주홍빛 짐승’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출판사는 William Whyte & Co.로 표시되어 있다.

전투적 무신론과 하나님을 대신하는 국가
나치 운동의 배후에 예수회가 있었다는 주장은 히틀러와 나치 운동의 책임을 로마와 예수회에 돌린 여러 역사가의 견해와 맞닿아 있다. 아돌프 히틀러 자신도 나치 운동을 프랑스 혁명과 정확히 대응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두 운동의 공통점으로 지목되는 전투적 무신론은 단순히 하나님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짓밟고, 인간의 권리가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생각까지 배제하는 이념이다.

하나님을 권리의 근원으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권력이 재산을 다룰 수 있는 범위도 달라진다. 누군가 사유재산을 폐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땅과 재산을 빼앗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도둑질을 금하셨다는 계명은 그 행동에 제동을 건다.
출애굽기 20:15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5의 계명은 국가가 하려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나면 거부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재산을 빼앗으려는 권력과 이에 항의하는 사람의 충돌을 가상의 대화로 옮겨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해진다. 한쪽이 도둑질을 금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 항의하자, 다른 쪽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이미 하나님을 내다 버렸으므로 그 명령도 따르지 않겠다고 답한다. 하나님을 배제한 권력은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한 항의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 쟁점 | 하나님의 계명을 들어 제기하는 반론 | 국가 중심의 답변 |
|---|---|---|
| 권리의 근원 |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에게서 온다 | 하나님을 권리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
| 재산 몰수의 한계 | 도둑질을 금한 계명이 권력의 행동에도 적용된다 | 국가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지 결정한다 |
| 최종 권위 | 국가도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설 수 없다 | 국가가 하나님을 대신하며 모든 것을 통제한다 |
이 가상 대화는 “이제 국가가 하나님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끝난다. 문제는 단순한 종교 불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차지하던 최종 권위의 자리를 국가가 차지한다는 데 있다. 국가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개인이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을 가질 수 없는지도 결정한다. 국가 위에 하나님의 명령을 인정하지 않는 이 권력의 원리가 프랑스 혁명과 나치 운동에 공통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보호받은 예수회와 1814년의 복구
예수회가 폐지된 뒤에도 조직이 살아남은 경로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 여제의 보호였다. 1762~1796년에 재위한 예카테리나 2세, 곧 예카테리나 대제는 예수회 사제 201명을 러시아에서 보호했다. 예수회가 폐지되어 있던 동안에도 보호는 계속되었고, 이 사제들은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예수회의 명맥을 이어 갔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영향력은 예수회가 결국 1814년에 복구되는 데 기여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활동도 아마 계속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별개로, 공개적으로 조직이 존속할 수 있었던 터전은 러시아였다.

숫자 201과 Event 201을 연결하는 추측
러시아에서 보호받았다는 사제들의 수는 훗날 전혀 다른 사건과 연결된다. Event 201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10월 18일 존스 홉킨스가 개최한 팬데믹 대비 훈련으로,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행사 이름에 들어간 201을 러시아에 남은 예수회 사제 201명과 연결하는 글을 썼다. 같은 숫자가 등장하므로 두 사건 사이에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다만 관련 세부 사항을 모두 알고 제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며, 매우 음모론적인 추측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 추측에서 러시아에 보존된 사제 201명은 예수회의 복수와 보복을 상징한다. 예수회는 예카테리나 대제의 보호 아래 살아남아 19세기 초에도 러시아에 있었고, 존 애덤스도 러시아에 예수회 총장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예수회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한 주체라는 주장을 함께 놓으면, 러시아에서의 존속은 단순한 피난을 넘어 이후의 활동을 가능하게 한 배경이 된다.
러시아 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의 오랜 적대
러시아에서 예수회가 보호받아 살아남았다는 역사에는 서로 적대하던 종교 세력이 어떻게 공존했는가라는 문제가 뒤따른다. 이에 대한 역사적 추측은 러시아가 대표하는 동방 정교회와 로마의 예수회가 대표하는 서방 가톨릭교회 사이에 오랜 적대감과 증오가 있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크리스 핀토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는 담지 않은 개인적인 추측이다.
미국에서는 종교 사이의 경쟁과 적대가 없거나, 있더라도 이를 억누르며 서로 자애롭게 대하고 관용을 베푸는 태도를 중시한다. 그런 일상에 익숙한 미국인에게 유럽의 뿌리 깊은 종교적 대립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와 로마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미국식 종교 공존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두 교회가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해 온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크로아티아 우스타시의 잔혹 행위와 정교회 세르비아인 박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시는 유럽의 종교적 적대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기본적으로 가톨릭 사회주의자들이자 크로아티아의 나치로 규정되는 이 조직에는 영화의 한 부분 전체가 할애되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를 장악한 뒤 크로아티아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를 지도자로 앉혔다. 파벨리치는 우스타시에게 사실상 나치의 총통과 같은 인물이었다.

우스타시는 겉모습도 나치와 매우 비슷했지만 사용하는 표장은 다소 달랐다. 당시 영상과 사진에서 두 조직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 야세노바츠(Jasenovac)에서 수감자들의 소지품 옆에 서 있는 우스타시 경비병들의 사진과 1942년 수용소의 지리를 보여 주는 자료도 남아 있다. 우스타시를 세계 역사에서 가장 피에 굶주린 살인자들 가운데 하나로 꼽는 강한 비판은 관련 인용과 역사 기록에 근거한다. 그 기록들에 따르면 우스타시의 잔혹 행위는 나치조차 충격을 받을 정도였으며, 나치가 때로는 지나친 행동과 만행을 질책하기까지 했다.
정교회 세르비아인 박해는 ‘크로아티아의 홀로코스트’로 불린다. 독일과 유럽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기록하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은 이 박해의 역사도 보존하고 있으며, 관련 서적에도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영화에 인용된 기록과 여러 책에는 앞서 언급한 야세노바츠 경비병 사진과 함께, 1942년 7월 유고슬라비아에서 세르비아인과 로마인을 강제 이송한 기록도 포함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가톨릭교회의 연루 의혹은 파벨리치와 프란치스코회의 가까운 관계, 그리고 프란치스코회 사제들이 마을로 뛰쳐나가 정교회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내용이다. 가해자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신이 나서’, ‘즐겁게’는 역사가들이 사용한 표현으로 인용된다. 폭력의 규모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향한 깊은 증오까지 드러내는 말이다.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 사이의 민족적·인종적 대립도 그 증오의 일부였지만,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강요는 정교회 신앙을 버리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종교적 요구였다.
총구 앞에 선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다음과 같이 재현된다.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해라. 안 그러면 죽이겠다.”
이 박해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우스타시 운동에 의해 강제로 개종당한 정교회 세르비아인은 20만 명이 넘었다. 민족적 적대와 종교적 적대가 함께 작용한 가운데, 사람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신앙을 바꾸라는 압박을 받았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역사는 아니지만, 관련 책과 보존된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적용한 동서 교회의 대립
크로아티아의 전시 박해를 서방의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사이에 오래 남아 있는 적대의 한 사례로 보면, 과거의 고립된 사건으로만 다룰 수 없다. 앞서 제시한 개인적 견해는 이 역사를 알지 못하면 오늘날 서유럽과 러시아, 동방 정교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현대의 사례로 지목되는 곳은 우크라이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정교회를 박해하고 있으며, 그를 뒷받침하는 세력이 아조우 대대라는 비판이다. 아조우 대대를 신나치이자 ‘현대의 나치’로 규정하는 이 비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적대감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갈등을 단순한 두 국가의 충돌이 아니라 서방의 로마와 동방의 정교회가 맞서는 오랜 종교적·역사적 대립으로 이해한다.
러시아의 급진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 차르와 그 가족을 그토록 잔혹하게 공격한 데에도 같은 적대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여기서 차르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이며, 가족은 로마노프 왕가를 가리킨다. 정교회는 오늘날까지도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된 순교자라고 믿는다. 로마노프 왕가의 죽음은 정교회의 기억 속에서 신앙 때문에 당한 죽음으로 남아 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이들의 죽음은 여기서도 순교로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예수회의 귀환과 복수에 빗대는 해석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예수회의 탄압과 폐지, 귀환과 복수에 빗대어 읽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 핀토 감독도 오랫동안 이 해석을 매우 흥미롭게 여겼다. 다만 문헌을 제시해 입증할 수 있다고 보는 역사와 달리, 소설과 예수회를 연결하는 것은 추측적인 역사 해석으로 구분한다.

소설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배신당해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철학을 배운다. 이후 돌아와 막대한 재산을 손에 넣은 당테스는 자신을 해친 모든 적에게 복수한다. 소설을 예수회의 역사에 빗대어 읽는 사람들은 당테스의 몰락과 귀환에서 한동안 추방되었다가 부를 얻고 돌아와 자신들을 몰아낸 적들에게 보복하는 조직의 모습을 찾는다.
| 소설 속 당테스의 경험 | 예수회에 빗대어 읽는 의미 |
|---|---|
| 배신당하고 감옥에 갇힘 | 예수회에 대한 탄압과 폐지, 한동안의 추방 |
| 돌아와 막대한 재산을 얻음 | 예수회의 귀환과 부의 획득 |
| 자신을 해친 적들에게 복수함 | 예수회가 자신들을 몰아낸 적들에게 보복함 |
당테스의 힘은 재산에만 있지 않다. 곳곳에 첩자와 정보원을 두고 있으며, 다음에 어디에 나타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넓게 퍼진 정보망과 예측하기 어려운 행적도 그를 예수회에 빗대는 해석에서 중요하다. 이름에도 종교적 의미가 부여된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그리스도의 산의 백작’으로 풀이되며,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그 산을 교회, 곧 가톨릭교회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American Jesuits』의 제작 목적은 이런 문학적 비유보다 문헌으로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를 다루는 데 있었다. 관련 저술을 모두 제시할 수 있고 자료도 이미 매우 많다고 밝힌 사례 가운데 하나가 예수회와 사회 정의의 관계다.
사회 정의의 기원과 ‘정당화할 수 있는 도둑질’에 대한 비판
사회 정의(social justice)라는 표현의 기원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예수회 사제이자 철학자인 루이지 타파렐리(Luigi Taparelli)다. 타파렐리가 1843년에 이 표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문헌으로 입증할 수 있는 역사로 제시된다. 특히 중요한 점은 타파렐리가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옛 가르침을 되살리려 했다는 데 있다.

아퀴나스에 대한 비판은 그가 ‘정당화할 수 있는 도둑질’이라는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좋은 이유가 있기만 하면 이웃의 것을 훔쳐도 괜찮다는 뜻이다. 『American Jesuits』에서는 아퀴나스의 글을 인용해 이 교리를 다루며, 아퀴나스가 신자들의 것을 훔치는 일은 언제나 괜찮다고 가르쳤다는 비판도 덧붙인다.
사회 정의를 향한 비판도 같은 지점을 겨냥한다. 좋은 목적을 내세워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것이 사회 정의의 내적 교리이며, 사회 정의 운동가들이 자신들이 돈을 받아야 할 이유와 구실을 끊임없이 찾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퀴나스의 가르침은 여기서 과거의 신학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 정의 운동이 자금을 요구하고 사용하는 방식의 뿌리로 지목된다.
사회 정의를 명분으로 한 자금 사용과 이민 정책
최근 USAID와 관련해 드러났다는 일에도 같은 비판이 적용된다. USAID가 딥스테이트와 예수회, 사회 정의 사상 전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 때문에 돈이 필요하고 저것 때문에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유를 붙이면, 막대한 자금을 가져가거나 법을 어기는 일까지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억 달러가 거듭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배후 인물들에게 책임을 묻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정당화할 이유를 내놓으리라는 것이 거의 확신에 가까운 전망이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대규모 이민, 특히 불법 이민에서도 목적을 내세워 수단을 정당화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부 가톨릭 주교와 추기경은 이민자들이 더 나은 삶을 찾고 있으므로 국경을 불법으로 넘거나 미국의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주장하며, 이런 입장을 가톨릭 사회 교리의 일부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비판이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적이 불법적인 수단까지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이민 문제와 관련된 문서로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와 멕시코 주교들이 2003년 1월 22일 발표한 사목 서한 『더 이상 낯선 이들이 아니다』(Strangers No Longer)가 거론된다.
타파렐리에서 가톨릭 사회 교리와 해방신학으로
타파렐리는 사회 정의라는 말을 만든 인물일 뿐 아니라, 훗날 교황 레오 13세가 되는 젊은 사제를 가르친 교수이기도 했다. 레오 13세는 교황이 된 뒤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새로운 사태』)이라는 회칙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오늘날 가톨릭 사회 교리라고 부르는 가르침의 토대가 되었다.
| 시기 | 인물·문서 | 사상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자리 |
|---|---|---|
| 1843년 | 루이지 타파렐리 | 사회 정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
| 1878~1903년 | 교황 레오 13세의 재위 | 타파렐리에게 배운 사제가 교황이 되어 회칙을 발표했다. |
| 1891년 5월 15일 | 『레룸 노바룸』 | 19세기 말에 발표되어 현대 가톨릭 사회 교리의 토대가 되었다. |
가톨릭 사회 교리를 사회주의의 다른 이름으로 규정하는 비판은 단순히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근거로 인용되는 가톨릭 저술가들의 설명은 『레룸 노바룸』을 기본적으로 바티칸판 『자본론』 또는 『공산당 선언』이라고 부른다. 교황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말하자면 성수를 뿌려 정당화했을 뿐, 종교적 표현을 입힌 내용은 사실상 같다는 비유다.
민주사회주의와 해방신학 역시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예수회가 이 사상들을 가리키는 여러 용어를 만들어 왔다는 주장에서, 해방신학의 사례로 등장하는 인물은 페루의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다. 구티에레스는 도미니코회 사제이면서 예수회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예수회가 구티에레스를 통해 해방신학을 내놓았다는 관계는 『American Jesuits』에서도 다뤄진다.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또 다른 형태이며, 예수회가 현대 세계의 사회 정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배후에 전적으로 자리한다는 것이 이 비판의 결론이다.
링컨 암살 배후설과 해리스 장군의 기록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의 배후로 바티칸과 예수회를 지목하는 배후설은 오늘날 이를 비웃는 듯한 역사가들에게 맞서 토머스 말리 해리스(Thomas Maley Harris) 장군을 매우 공식적인 출처로 내세운다. 토머스 M. 해리스로도 표기되는 그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자 의사였으며, 암살 사건 이후 조사위원회에 참여하고 공모자들을 재판한 법정의 판사로도 활동했다. 그의 저술에 무게를 두는 까닭은 사건 당시 법정에 제시된 증거를 직접 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법정에서 재판받은 주요 공모자 중 한 명이 메리 서랫(Mary Surratt)이었다. 서랫은 암살을 계획한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던 하숙집의 주인이었다. 1865년 워싱턴에서 열린 공모자 재판은 『하퍼스 위클리』의 삽화 보도로 소개됐고, 하숙집의 모습은 1890년경 사진으로 남아 있다. 링컨을 추모하는 뉴욕의 장례 행렬은 1865년 4월 25일에 열렸다.
해리스 장군은 훗날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에 대한 로마의 책임』(Rome’s Responsibility for the Assassination of Abraham Lincoln)을 썼다. 여기서 인용하는 판본은 윌리엄스 출판사에서 나온 1897년판이다. 해리스 장군의 결론으로 인용되는 내용은 바티칸과 예수회 사제들이 링컨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도왔으며, 존 윌크스 부스와 존 서랫을 통해 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배우였던 부스는 링컨을 직접 암살한 인물이고, 존 서랫은 메리 서랫의 아들이었다.
존 서랫의 도피와 교황 주아브 부대
존 서랫(John Surratt)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의 연락원이자 정보원이었다. 그의 활동은 링컨 암살 계획이 훨씬 전부터 준비돼 있었다는 배후설의 근거로 거론된다. 서랫은 암살 뒤 캐나다의 여러 가톨릭 교회를 거쳐 도주했다고 전해지며, 1년 뒤에는 로마에서 교황의 주아브 부대에 복무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주아브 부대는 교황의 사설 군대와 같은 조직이었다.
서랫이 주아브 제복을 입고 앉아 있는 흑백사진은 이 사건을 다룬 여러 책과 영화에 사용됐다. 사진에 붙은 인물 소개는 그의 이력을 ‘남부연합 연락원, 이후 교황 주아브 부대원’으로 요약한다.

서랫은 결국 체포되어 미국으로 송환됐고,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죄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압도적이었다는 평가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친구에게 했다는 말과 법정에서 내놓았다는 변론의 차이다.
| 발언의 자리 | 서랫의 설명 |
|---|---|
| 친구와의 대화 | 자신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죽였다고 인정했다. |
| 미국 법정 | 자신과 부스가 링컨 납치 계획에 가담했다고 인정하되, 목적은 납치였으며 반드시 살해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
법정에서 서랫은 납치 계획에 가담한 것과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를 품은 것을 구분했다. 부스와 함께 링컨을 납치하려 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서 결국 링컨을 죽이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배심원은 서랫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으며, 그 이유를 놓고는 여러 추측이 있다.
치니퀴와 링컨의 개인적 인연
전직 가톨릭 사제이자 저술가인 찰스 치니퀴(Charles Chiniquy)는 링컨과 개인적인 친구였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여러 해 전부터 알고 지냈으므로, 재판에서 증거를 접한 해리스 장군과는 다른 자리에서 링컨의 삶과 죽음을 바라본 인물이었다.

치니퀴 역시 예수회가 링컨 암살의 배후에 있다고 믿게 됐으며, 『로마 교회에서의 50년』(Fifty Years in the Church of Rome)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배후설을 뒷받침하는 두 저술은 저자들이 사건에 접근한 경로부터 달랐다. 해리스 장군은 조사와 재판에 직접 참여했고, 치니퀴는 전직 사제로서의 경험과 링컨과의 오랜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교황의 남부연합 인정과 가톨릭 성직자들의 활동
교황은 제퍼슨 데이비스를 남부연합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하는 편지를 썼으며, 이 사실은 당시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 편지를 남부연합을 하나의 외국 정부로 승인한 행위로 보는 해석은 로마 가톨릭과 남부연합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다. 여기에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종교적 배경과 가톨릭 성직자들의 활동도 함께 거론된다.
찰스 치니퀴는 섬터 요새에 첫 포격을 가한 P. G. T. 보리거드 장군의 동기를 교황에 대한 충성과 연결했다. 치니퀴의 주장에 따르면, 보리거드는 광신적인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교황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반대하고 남부연합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격했다. 개인적인 신앙만이 아니라 교황의 정치적 입장을 알고 행동했다는 것이 치니퀴가 지목한 동기였다.
남부연합의 첫 군목도 예수회 사제였으며,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다룬 책도 있다. 남부연합에서 활동한 또 다른 유명한 가톨릭 사제는 존 배넌(John Bannon)이었다. 배넌은 전장에서 전투 중인 병사들을 돌보며 사목 활동을 했고, 이후 제퍼슨 데이비스의 지시로 아일랜드에 파견되었다. 데이비스 자신도 도미니코회에서 교육받았으며, 젊었을 때 가톨릭으로 개종할 뻔했을 만큼 가톨릭에 매우 우호적이었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북군 입대를 막으려 한 배넌
배넌이 아일랜드에 파견된 목적은 미국으로 떠나는 이민자들이 북군에 입대해 링컨을 위해 싸우지 않도록 설득하는 데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대규모로 미국에 이주하고 있었고, 도착해 배에서 내리자마자 군복을 지급받고 북군에 입대하고 있었다. 데이비스는 배넌을 보내 이들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입대를 만류하려 했다.

이미 북군에 들어간 아일랜드 이민자들 가운데서는 탈영도 일어났다. 해리스 장군은 자신의 책에서 전쟁 중 탈영한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북군에서 가장 많이 탈영한 집단이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자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는 아일랜드에서 막 건너온 이들이 교황권에 바친 종교적 충성을 들었다. 교황이 링컨을 반대한다고 믿었으므로 북군을 위해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넌이 입대 자체를 막으려 했다면, 해리스 장군은 이미 입대한 이들이 군을 떠난 이유를 교황에 대한 충성에서 찾았다.
매클로플린의 링컨 암살 연구와 ‘유럽의 음모’
미국의 분열을 노린 ‘유럽의 음모’(European Plot)라는 배후설은 남부연합과 교황권의 관계를 넘어선다. 이 계획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해리스와 치니퀴의 저술뿐 아니라 에밋 매클로플린(Emmett McLoughlin)의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에 관한 조사』(An Inquiry into the Assassination of Abraham Lincoln)도 있다.
매클로플린은 미국에서 ‘민중의 신부’로 알려질 만큼 인기 있는 가톨릭 사제였다. 그러나 ‘민중의 신부’라는 명성과 달리 교계 지도부의 눈 밖에 났고, 결국 평신도 신분으로 돌아가 성직을 떠났다. 여러 해 동안 예수회와 링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그는 둘의 관계를 조사하여 20세기에 이 책을 썼다. 링컨 암살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배후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저술로 꼽히는 책이며, 아래는 시타델 프레스(Citadel Press)가 펴낸 1977년판이다.

매클로플린의 책에는 「국경 남쪽의 음모」라는 장이 있다. 미국 국경 남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면 남북전쟁 당시의 상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장의 요지다. 매클로플린에 따르면, 링컨을 둘러싼 음모는 미국 안의 암살 공모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교황 비오 9세,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 1세가 멕시코를 장악하고 그곳을 미국 개입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비오 9세의 교황 재위 기간은 1846~1878년,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황제 재위 기간은 1852~1870년이며, 막시밀리안 1세는 이후 1864~1867년 멕시코 황제로 재위했다.
멕시코 정복은 이 계획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미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단계였다. 멕시코를 차지한 뒤 남부연합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물리치도록 도와 미국의 연방을 분열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해리스 장군은 여기에 더 넓은 영토적 목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분열된 뒤 멕시코에서 미국 영토를 거쳐, 이미 가톨릭권이었던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로마 가톨릭 제국을 세우려 했다는 설명이다. 두 저술에서 제시하는 목표와 순서는 다음과 같다.
멕시코 침공과 장악: 유럽 세력이 미국에 개입할 거점을 확보한다.
남부연합 지원: 멕시코를 발판으로 미국에 들어가 링컨의 패배와 연방의 분열을 추진한다.
대륙을 잇는 제국 건설: 해리스 장군이 설명한 최종 목표는 멕시코·미국 영토·캐나다를 연결하는 로마 가톨릭 제국이다.
이 계획에서 남북전쟁은 미국 내부의 갈등인 동시에 유럽 세력이 북아메리카에서 다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였다. 미국이 분열되는 동안 그 남쪽에 군사 거점을 마련하면 미국 영토를 차지하는 데도 유리해진다. 프랑스의 멕시코 침공을 남북전쟁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뿐 아니라 역사가들까지 이 침공을 잊고 있지만, 링컨이 연방을 보존했다는 말에는 남부의 분리 독립을 막았다는 의미뿐 아니라 그 분열을 틈탄 외부 세력의 영토 장악을 저지했다는 의미도 담긴다.
푸에블라의 승리가 벌어 준 시간과 막시밀리안의 즉위
프랑스군의 진격은 1862년 5월 5일 제1차 푸에블라 전투에서 막혔다. 당시 프랑스군은 매우 정교하고 선진적인 군대였고, 멕시코군에게 승산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멕시코군은 예상을 뒤집고 승리하여 프랑스군을 저지했다. 신코 데 마요(Cinco de Mayo)는 바로 이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다. 흔히 멕시코 독립기념일로 생각하지만, 실제 기념하는 사건은 제1차 푸에블라 전투다.
이 승리로 프랑스군의 진격이 지연되면서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우세를 확보할 시간을 벌었다. 멕시코군의 저항은 자국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의 남부연합을 지원하려던 유럽 세력의 진출도 늦췄다. 미국 연방이 존속한 과정을 이해할 때 멕시코에서 벌어진 전투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진출이 한 차례의 패배로 끝나지는 않았다. 프랑스군은 다시 돌아와 제2차 푸에블라 전투에서 승리했고, 이어 멕시코시티를 점령하여 일시적으로 나라를 장악했다. 그런 다음 유럽에서 온 막시밀리안 1세를 황제로 세웠다. ‘멕시코의 첫 황제’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링컨은 새 황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멕시코에 황제를 세운 유럽 세력이 무엇을 추진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막시밀리안 정권의 승인을 거부했다.
프랑스군의 철수와 막시밀리안의 최후
미국이 멕시코를 도와 프랑스군을 몰아내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분열을 이용하려던 계획은 좌절됐다. 프랑스군은 후퇴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고, 막시밀리안 황제는 홀로 남았다. 멕시코군은 그를 체포해 결국 처형했다.
통치할 나라가 없는 군주로 남은 막시밀리안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처형 장면은 여러 회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에두아르 마네의 1867년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도 그중 하나다.
군사 개입의 실패와 대규모 이민을 통한 장악 주장
프랑스군을 동원한 멕시코 침공과 대규모 이민을 통한 미국 장악은 같은 목적을 가진 두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군사 개입이 실패하자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을 이민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 구분 | 수단과 진행 방식 | 목표 또는 결과 |
|---|---|---|
| 첫 번째 계획 | 프랑스군으로 멕시코에 군사 개입 | 미국의 분열을 이용한 영토 장악을 노렸으나, 미국의 멕시코 지원과 프랑스군 철수로 실패 |
| 두 번째 계획 | 외국 이민자를 미국에 대규모로 유입시키고 주요 도시에 정착시킴 | 이민을 통해 미국을 체계적으로 장악 |
두 번째 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국경을 넘는 사람의 수뿐 아니라 그들이 정착하는 장소다. 외국 이민자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주요 도시에 집중되면, 그 도시들을 통해 국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 교회에서의 50년』의 저자 찰스 치니퀴는 이미 120년도 더 전에 이 위험을 경고했다. 계획이 오늘날까지 계속된다는 주장도 필요한 증거가 모두 있다는 확신을 전제로 한다.
현대의 사례로 거론되는 문서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와 멕시코 주교들이 2003년 1월 22일 발표한 사목 서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희망의 여정을 함께하며』(Strangers No Longer: Together on the Journey of Hope)다. 온라인에 공개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서한이다.
미국 장악설은 이 서한을 미국과 멕시코의 가톨릭 주교들이 가톨릭 이민자의 대규모 미국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맺은 합의로 읽고, 이를 미국에 대한 ‘대규모 침입’이라고 부른다. 그 대상은 아마 가톨릭 신자에 그치지 않고 외국 이민자 전반을 포함할 것이라는 추측도 덧붙는다. 대상의 범위에는 유보가 있지만 문서에 드러난 목적은 모호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 불법 이민의 주된 책임자들이 로마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을 통제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을 통제하려는 목적과 링컨이 보여 준 자유
미국을 통제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러 설명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꼽히는 것은 토머스 M. 해리스 장군과 에밋 매클로플린의 논증이다. 해리스 장군은 『로마의 책임』(Rome’s Responsibility, 1897)에서 그 목적을 단순한 영향력 확대보다 훨씬 강하게 규정했다. 미국을 통제하려는 세력은 통제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수단으로 미국을 파괴하려 하며 미합중국이 계속 존재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다는 의혹이었다.

해리스 장군과 매클로플린이 설명한 적대감은 미국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그곳에서 가능한 삶을 향했다. 교황을 비롯한 유럽 구체제의 권력자들과 엘리트들이 싫어한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브러햄 링컨의 성장이었다. 링컨은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서 방 하나짜리 통나무집에 살며 맨발로 자랐고, 울타리용 목재를 만들기 위해 통나무를 쪼개는 일을 했다. 그런 사람이 변호사와 정치인이 된 뒤, 성실한 노력과 결단력,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매우 강력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1861년 3월 4일에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들의 설명에서 구체제의 권력자들이 견디기 어려워한 것은 가난한 사람의 성공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영향력이나 승인 없이도 나라를 이끌 사람이 결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해리스 장군과 매클로플린, 그리고 어느 정도는 치니퀴도 갈등의 중심에 권력과 통제를 놓았다. 미국이라는 이념과 아메리칸 드림은 다른 나라에서 전체주의적 정부를 원하는 엘리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부터가, 모든 결정을 지배층이 내려야 한다는 생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적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복종이다. 개인의 자유나 소망보다 지배하는 사람들의 뜻이 우선하고, 사람들은 지시받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각자가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며 권력이 그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을 그렇게까지 통제하려는 사고방식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미국을 둘러싼 갈등의 쟁점은 누가 권력을 갖느냐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느냐에까지 미친다.
청교도의 이주 목적과 예수회에 맞설 방벽
청교도들이 신세계에 세우려 한 공동체에는 복음을 전할 터전과 종교적 지배에 맞설 방벽이라는 두 목적이 있었다. 미국을 장악하려는 거대한 계획이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존 윈스럽(John Winthrop) 총독이 밝힌 이주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아메리칸 제수이츠』(American Jesuits)의 첫머리에도 놓인 그의 말에는 예수회와의 대립이 명시되어 있다.
윈스럽 총독은 1630년 다른 청교도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넜으며,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를 세운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남긴 1628~1629년경의 「뉴잉글랜드 식민지 건설의 이유」(Reasons for the Plantation in New England) 제1항은 이주의 주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신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예수회가 그곳에 세우려 하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에 맞설 방벽을 세우기 위해서
윈스럽 총독에게 식민지 건설은 유럽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얻는 일만을 뜻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세우려면, 예수회가 그곳에 세우려 한다고 본 종교적 지배도 막아야 했다. 예수회가 아메리카 초기부터 활동하면서 유럽의 교황 종교재판을 신세계까지 확장하려 했다는 주장도 이 대립을 설명한다. 청교도들에게는 바다를 건너 피하려 했던 종교적 통제가 새 정착지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유럽의 박해를 떠나 교회가 피할 광야로
신세계에서 피난처를 찾으려는 생각은 유럽의 종교적 충돌과 맞물려 있었다. 정치 저술가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소책자 『상식』(Common Sense, 1776)은 신세계의 출현을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했던 당시의 인식을 보여 준다. 페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메리카, 곧 신세계를 드러내셨다는 데 거의 모두 동의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항해했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17년에는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논제를 못 박으면서 대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신세계로 향하는 길이 열린 시기와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시기를 함께 바라본 것이다.
종교개혁에 대한 반발로 반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과 충돌, 박해가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30년 전쟁이다. 예수회가 개신교 운동을 무력으로 말살하려 했다는 비판은 이 전쟁을 가리키며, 충돌로 죽은 사람이 약 800만 명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유럽을 떠나 신세계로 향하는 일은 신앙을 지킬 터전을 찾는 일이기도 했다.

비아조 팔치에리의 약 1680년 작품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이단자들을 제압하는 성 토마스를 우의적으로 묘사한다.
플리머스 식민지의 윌리엄 브래드퍼드(William Bradford) 총독은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History of the Plymouth Plantation)에서 유럽의 전쟁과 혼란을 다루며, 서두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칭했다. 유럽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종교적 갈등은 통치자들 사이의 분쟁에 그치지 않았다. 브래드퍼드 총독의 표현에서 드러나듯,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박해를 성경이 말하는 영적 대립 속에서 이해했다.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의 저자이자 플리머스 식민지 총독인 윌리엄 브래드퍼드를 기리는 후대의 기념상이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신세계를 교회가 날아가 피할 광야로 드러내셨다고 믿었다. 그들이 자신의 이주와 연결한 말씀은 여인이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가는 요한계시록 12:14이었다.
요한계시록 12:14 그때 그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부양받으려 함이더라.
청교도들은 여인의 광야 피신에서 유럽의 박해를 피해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보았다. 바다 건너 신세계는 위험에서 멀리 떨어진 땅일 뿐 아니라, 교회가 보호받으며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 갈 터전이었다. 윈스럽 총독이 예수회의 신세계 장악을 막으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박해받는 교회를 위한 피난처를 지켜야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도 세울 수 있었다.
복음을 전할 터전이자 신앙을 지킬 요새
새 정착지에 부여한 종교적 목적은 상륙 뒤의 행동과 공동체의 문서에도 나타난다. 1607년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에 상륙한 사람들은 먼저 십자가를 세우고, 아메리카와 잉글랜드가 모두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메이플라워 서약 역시 기독교의 확장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어떤 신앙과 목적을 따라 공동체를 세울 것인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윈스럽 총독과 청교도들이 추구한 것은 복음 전파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과 함께 총을 가지고 왔다. ‘성경과 칼’은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에 부여한 두 가지 역할을 드러낸다. 아메리카는 복음을 전할 터전인 동시에 예수회주의에 맞서는 요새였다. 신앙을 전하는 일에는 그 신앙을 지킬 공동체를 방어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 신세계에 부여한 역할 | 그 역할을 보여 주는 내용 |
|---|---|
| 박해를 피할 광야 | 요한계시록 12:14의 여인처럼 유럽을 떠나 교회가 피할 땅으로 이해했다. |
| 복음을 전할 터전 | 제임스타운에서는 아메리카와 잉글랜드의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고, 메이플라워 서약은 기독교의 확장을 목적으로 밝혔다. |
| 종교적 통제에 맞설 요새 | 윈스럽 총독은 예수회의 장악을 막으려 했으며, 청교도들은 성경과 무기를 함께 가지고 왔다. |
독립선언과 청교도의 저항권
북아메리카를 장악하려는 예수회의 시도에 맞선 초기 개신교 식민지의 저항은 미국 독립혁명과도 맞닿아 있었다. 독립혁명 지도자 새뮤얼 애덤스와 많은 동료에게 독립선언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분리만을 선언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종교개혁에서 나온 권리와 권위의 원칙을 정치에 적용하는 문서이기도 했다.

애덤스가 서명 당시 했다는 다음 발언은 새뮤얼 팰로스의 1903년 저서 『새뮤얼 애덤스: 인물 소묘』(Samuel Adams: A Character Sketch) 104쪽에 수록되어 있다.
“오늘부터 정치적 개신교의 통치가 시작되리라고 믿습니다.”
정치적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원칙에 따라 정치권력의 한계를 정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권리는 하나님의 법에 근거하며 하나님에게서 온다. 교황이든 왕이든 그 법을 위반할 권한은 없다. 따라서 통치자가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에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청교도들은 필요하다면 무력으로도 그러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이 저항권의 근거로 굳게 붙든 본문은 시편 149편이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손에 칼을 들고 왕들을 결박하며 기록된 판결을 시행한다는 말씀이, 통치자 역시 하나님의 법 아래 놓인다는 믿음과 맞닿아 있었다.
시편 149:5 성도들은 영광 가운데 즐거워하고 그들의 침상들 위에서 큰 소리로 노래할지어다.
시편 149:6 그들의 입에 하나님을 향한 높은 찬양들이 있게 하고 그들의 손에는 양날이 있는 칼이 있어
시편 149:7 이방에게 복수하며 그 백성을 처벌하고,
시편 149:8 그들의 왕들을 쇠사슬로, 그들의 귀족들을 쇠족쇄로 묶어
시편 149:9 기록된 판결을 그들에게 시행하게 할지니 이 영광이 그의 모든 성도들에게 있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어다.
청교도들이 이 본문을 정치에 적용할 때 주목한 것은 성도들의 손에 들린 “양날이 있는 칼”과 그들이 시행할 “기록된 판결”이다. 기록된 판결을 성경에 기록된 판결로 이해했으므로, 왕과 귀족도 그 판결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이 영광이 그의 모든 성도들에게 있도다”라는 마지막 말씀에서 그 판결을 시행하는 영광이 일부 통치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속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성경관은 기독교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가져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청교도에게 무장할 권리는 신앙과 별개인 정치적 요구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믿음에는, 필요할 때 실제로 맞설 수단을 가질 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권리의 근원과 저항의 조건 권리는 통치자의 허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다. 교황과 왕도 그 법을 위반할 권한이 없으며, 위반하는 권력에는 필요할 경우 무력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여기서 설명하는 청교도의 입장이다.
두 세계대전과 유럽의 종교전쟁
미국을 둘러싼 예수회의 음모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초기 식민지 시대부터 19세기 남북전쟁까지 그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유럽의 두 세계대전도 같은 권력 투쟁의 역사에 놓는다. 로마가 전쟁을 배후에서 움직였다고 주장한 저자들의 저술이 그 근거다. 저자마다 다루는 전쟁과 배후 세력의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 저자와 저서 | 다루는 내용 |
|---|---|
| 존 켄싯, 『대전의 배후에 있는 로마』(Rome Behind the Great War) | 바티칸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배후였다는 주장이다. |
| 에드몽 파리 박사, 『예수회의 비밀 역사』(The Secret History of the Jesuits)의 저자 | 바티칸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모두의 배후였다고 주장한다. |
| 전직 가톨릭 사제 레오 레만, 『독재자들의 배후』(Behind the Dictators) | 바티칸·예수회와 히틀러 및 나치 운동의 관계를 논하는 문헌으로 거론된다. |
두 세계대전을 더 오래된 유럽의 종교전쟁과 연결하는 표현은 윈스턴 처칠에게서 나온다. 1940~1945년과 1951~1955년에 영국 총리를 지낸 처칠의 『다가오는 폭풍』(The Gathering Storm) 서문과 관련된 말이다.
“우리는 이제 막 두 번째 30년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 말을 단순한 전쟁 기간의 비교가 아니라 종교 권력의 연속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으면, 첫 번째 30년 전쟁과 두 세계대전 사이에는 같은 세력이 놓인다. 첫 번째 30년 전쟁은 예수회와 가톨릭 동맹이 개신교를 말살하려 했던 전쟁이며, 처칠 역시 두 세계대전에서 같은 세력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는 해석이다. 첫 번째 전쟁은 1648년 뮌스터 강화로 끝났지만, 개신교를 억압하려는 종교 권력과 이에 맞서는 저항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근대의 세계대전에서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 역사가들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미국 역사가 대부분은 세계대전을 이런 관점에서 전혀 보지 않는 반면, 유럽 역사가들은 바티칸과 예수회를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운동 전체의 직접적인 배후로 분명히 보았다는 주장이다. 그 가운데 레오 레만의 저술은 가톨릭 내부를 경험한 전직 사제가 독재 정권의 배후를 다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치 운동의 배후를 지목한 레만과 웰스
전직 가톨릭 사제이자 저술가인 레오 허버트 레만(Leo Herbert Lehmann)은 『독재자들의 배후』(Behind the Dictators)에서 예수회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나치 운동 전체를 조직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에는 예수회가 이미 1890년부터 자신들의 출판물에 나치 철학의 요소들을 실었다는 자료도 포함된다. 나치즘이 등장한 뒤 교회와 맺은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그보다 앞선 출판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상적 뿌리를 찾은 것이다. 이러한 선행 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의혹을 던지는 데 그치지 않는 저술로 평가된다.
영국 소설가이자 사회 논평가인 H. G. 웰스(H. G. Wells)는 전쟁 중 바티칸 폭격을 요구했다. 크리스 핀토 감독은 웰스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정이라고 밝히면서도 이 요구에 주목한다. 『손잡이 달린 십자가』(Crux Ansata)의 장 제목은 「우리는 왜 로마를 폭격하지 않는가?」이며, 제시된 서지 표기는 1933년판 152쪽이다. 웰스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아무도 바티칸을 폭격하지 않는가?”
웰스가 바티칸을 겨냥한 이유는 교황과 바티칸이 히틀러와 무솔리니, 나아가 추축국 운동 전체의 배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레만이 예수회의 활동에서 나치 운동의 조직적 기원을 찾았다면, 웰스는 전쟁을 벌이는 지도자들뿐 아니라 그들을 뒷받침한다고 본 종교 권력에도 책임을 물었다.
| 인물과 문헌 | 비판의 대상 | 제시한 주장 |
|---|---|---|
| 레오 허버트 레만, 『독재자들의 배후』 | 예수회와 나치 운동 | 예수회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나치 운동 전체를 조직했다. |
| H. G. 웰스, 『손잡이 달린 십자가』 | 교황·바티칸과 추축국 | 바티칸이 히틀러·무솔리니와 추축국 운동의 배후에 있다고 보아 폭격을 요구했다. |
오늘날에는 이런 비판이 덮이거나 지워진 듯 보이며, 혹은 잊힌 역사가 된 듯하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은 로마의 개입을 분명히 보았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서로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로 계속된 전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 이 저술들을 다시 살피는 이유다.
전후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 전쟁
예수회와 바티칸이 전쟁 뒤에도 자신들의 투쟁을 계속하려고 유럽연합을 세웠다는 주장은 두 세계대전의 연속성을 전후까지 확장한다. 유럽연합을 전쟁이 끝난 뒤 생겨난 별개의 정치 조직이 아니라, 앞선 권력의 목적을 전후에도 이어 가는 통로로 보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데 과거의 종교·정치 권력 관계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9월 교황 사절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표현뿐 아니라 발언자다.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의 배후로 지목된 세력의 수장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부른다면, 우리의 미래와 지구 전체의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교황의 발언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데 그쳐야 한다.
파우치·버크스·레드필드의 교육과 예수회 인맥
미국 보건 당국자들의 교육과 인맥에서도 예수회와의 관계를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으로 널리 알려진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를 “예수회 사람”이자 철저한 예수회 인사로 보는 근거는 그의 진로와 사고방식을 형성한 교육 경험이다.

파우치 박사는 정부 웹사이트에 실린 『임상연구저널』(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JCI)의 2014년 「의학계 거장들과의 대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진로를 설명했다. 아버지가 약사였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자신을 의학으로 이끈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의학을 택한 동기는 자신이 받은 예수회 교육에 있었으며, 그 교육이 오늘날의 자신이 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진로와 성장을 예수회 교육에 직접 연결한 것이다.
파우치 박사의 조력자로 언급되는 데버라 버크스(Deborah Birx) 박사는 의사이자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글로벌 에이즈 조정관을 맡은 인물이다. 버크스 박사와 예수회를 잇는 사례는 교육 이력이 아니라 취임 선서식이다. 2014년 4월 25일 열린 선서식에서 예수회 사제가 바로 곁에 있었고, 선서에 앞서 기도를 드렸다. 이 장면은 버크스 박사와 예수회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는 사례로 제시된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을 지낸 로버트 R. 레드필드(Robert R. Redfield)는 조지타운대학교 졸업생으로, 그곳에서 예수회원들에게 교육받았다. 파우치 박사가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준 교육을 직접 언급했다면, 버크스 박사의 경우에는 공직 취임식에 참여한 사제가, 레드필드의 경우에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구체적인 연결 고리다.
| 인물 | 연결 고리 |
|---|---|
| 앤서니 파우치 | 자신의 진로와 성장에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예수회 교육 |
| 데버라 버크스 | 취임 선서식에 참석하고 선서 전 기도를 맡은 예수회 사제 |
| 로버트 R. 레드필드 |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받은 예수회 교육 |
조지타운대학교와 정치권으로 이어지는 관계
보건 당국자들의 교육 배경에서 등장한 조지타운대학교는 미국 정치권과도 오랜 관계를 맺어 왔다. 조지타운 칼리지로 출발해 대학교가 된 이곳을 미국 내 예수회의 본부로 보는 데에는 졸업생들의 학력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회원들에게 받은 교육과 대학에서 맺은 인맥이 공직에 오른 뒤에도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지타운을 둘러싼 역사적 비판 가운데는 에밋 맥로클린(Emmett McLoughlin)의 링컨 암살 관련 저서도 있다. 맥로클린은 조지타운의 예수회원들이 배후에서 존 윌크스 부스와 다른 공모자들에게 링컨 암살을 실행하도록 훈련시켰다고 주장했다. 조지타운과 정치권의 관계를 문제 삼는 데에는 이러한 배후설도 자리하고 있다.
현대 정치권에서는 빌 클린턴과 대학 시절 멘토였던 오토 헨츠(Otto Hentz) 신부의 관계가 눈에 띈다. 클린턴이 조지타운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에 비해 덜 알려진 헨츠 신부는 예수회 사제이자 조지타운대학교 신학과 부교수다. 두 사람의 관계는 대학 시절에 시작되어 훗날까지 이어졌다. 2015년 4월 21일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열린 ‘클린턴 강연: 목적’에서도 헨츠 신부가 클린턴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클린턴 자신도 조지타운대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결코 미국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지타운은 그에게 과거의 학력으로만 남은 곳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학이었다. 대학에 대한 이러한 평가와 오랫동안 이어진 멘토 관계가, 클린턴이 예수회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보는 근거다.
바이든의 취임 성경과 반종교개혁의 상징
미국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의 경우에는 교육 배경에 더해 취임 선서에 사용한 성경과 의례를 맡은 사제들이 주목받는다. 바이든은 포덤에서 예수회원들에게 교육받았으며, 202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 선서에는 가문의 두에랭스성경(Douay Rheims Bible)을 사용했다.

두에랭스성경의 의미는 영어 성경 번역을 둘러싼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대립에서 드러난다. 당시 나오던 영어 성경들, 특히 제네바성경에 대응하기 위해 예수회가 번역한 영어 성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성경은 반종교개혁의 상징으로 읽힌다. 바이든이 그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 장면에도 단순히 가톨릭 신자가 가문의 성경을 사용한 것 이상의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다.
취임 당시에는 예수회 사제 두 명이 각각 다른 의례를 맡았다. 한 명은 취임 기도를 드렸고, 다른 한 명은 취임 미사를 집전했다. 예수회와의 관계는 과거의 교육 경험에만 머물지 않고,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자리에서도 기도와 미사를 통해 이어졌다.
게이츠 재단의 예수회 교육 지원과 배후 영향력에 대한 질문
정치인의 교육과 사제 인맥에 더해, 예수회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재정 지원도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립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가 그 사례다. 멜린다 게이츠의 가족 중에는 예수회원이 있으며, 두 사람의 재단은 미국의 예수회 교육 프로그램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기부한다. 기부 주체는 두 사람 개인이 아니라 재단이다. 이 가족 관계와 재정 지원은 음모론이 아니라 문서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라는 단언이다.

가족 관계와 기부에서 더 나아가면, 공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의 활동을 누가 배후에서 움직이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빌 게이츠, 앤서니 파우치 박사, 조 바이든, 그리고 의사이자 2014~2020년 미국 글로벌 에이즈 대응 조정관을 지낸 데버라 버크스 박사의 뒤에 검은 성직복을 입은 예수회원들의 ‘숨은 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 관계와 재단의 기부에 대한 확언에서 출발하되, 이들의 활동까지 예수회가 배후에서 움직이는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워싱턴의 가톨릭 성직자 인맥과 조지타운대학교
워싱턴 D.C.의 정치인들과 가톨릭 성직자들의 관계는 진보 성향 잡지 『마더 존스(Mother Jones)』에서도 다룬 주제다. 마틴 A. 리(Martin A. Lee)가 쓴 1983년 7·8월호 기사 「그들의 뜻이 이루어지이다(Their Will Be Done)」는 성직자들이 정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력은 한 사람만 음모론으로 제기한 문제가 아니라, 이런 기사에서도 다뤄 온 주제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미국에서 ‘딥스테이트’라고 부르는 배후 권력 뒤에 예수회가 있으며, 예수회가 조지타운대학교를 통해 이를 통제한다는 주장에 이른다. 조지타운대학교를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정치권과 정보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역사적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기관을 이끈 윌리엄 도너번이다.
도너번의 OSS에서 CIA로 이어지는 인력과 비밀 작전
‘와일드 빌(Wild Bill)’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윌리엄 도너번(William Donovan)은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의 창립자이자 국장이었다. CIA의 기원은 도너번과 OSS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너번은 몰타 기사단원이었으며, 인용된 특수부대 관련 저술가이자 역사가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그가 예수회원이기도 했다고 서술한다. 이 저술가에 따르면 도너번은 예수회에서 활동 기법을 배웠고, 이를 OSS를 발전시키고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활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OSS가 ‘미국판 게슈타포’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이러한 우려가 나온 뒤 해리 트루먼은 OSS를 해체하고 더 나은 정보기관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CIA를 세웠다. 그러나 기관의 이름이 바뀌어도 운영을 맡은 사람들은 그대로 이어졌다. OSS 출신의 같은 인물들이 CIA를 운영하게 되었으므로 부패도 계속된 것 같다는 판단은 이러한 인력의 연속성에 근거한다.
| 단계 | 조직과 인물 | 관계 |
|---|---|---|
| 제2차 세계대전 | 도너번과 OSS | OSS의 설립과 비밀 작전 기법을 예수회와 연결한다. |
| 전쟁 말기 | OSS를 비판한 미국 언론인들 | 조직이 ‘미국판 게슈타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
| OSS 해체와 CIA 설립 | 트루먼과 OSS 출신 운영진 | 더 나은 기관을 표방했지만 같은 인력에게 운영을 맡겼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
전후 비밀 작전을 둘러싼 의혹에는 나치 전범들의 유럽 탈출도 있다. OSS가 전쟁 후 수천 명, 더 정확히는 수만 명의 나치 전범을 유럽 밖으로 빼돌렸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거론되는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으로 미국에 이주한 인물 가운데 독일인 로켓 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있다.
전후 나치 도피와 도너번의 바티칸 수훈
나치 인사들의 전후 도피 경로로 지목되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페이퍼클립 작전으로 미국에 들어간 이들 외에도 아르헨티나와 바티칸으로 빼돌려진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그곳에서 박해를 피하고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OSS가 핵심 역할을 했고 영국의 MI6와 바티칸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바티칸 탈출로(Vatican ratlines)는 이러한 전후 도피 경로를 가리키며, 이러한 도피 경로는 영화에서도 별도로 다뤄졌다.
OSS와 바티칸의 관계에서 또 하나 주목할 사례는 국장이었던 윌리엄 J. 도너번(William J. Donovan)의 수훈이다. ‘와일드 빌 도너번’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도너번은 미국 현대 정보기관의 창립자로 인정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마틴 A. 리의 『마더 존스』 1983년 7–8월호 기사를 출처로 제시한 수훈 이야기에서, 도너번은 말년에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을 만났다. 평생 교황권을 위해 공개적으로, 또 드러나지 않는 비밀 활동으로 봉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교황의 최고 영예를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창립자가 교황권을 위해 봉사한 공로도 인정받았다는 점은 도너번 개인의 영예를 넘어선 질문을 낳는다. 도너번의 경력, 전후 도피에 관여했다는 정보기관들, 바티칸의 관계를 함께 놓고 볼 때 미국의 배후 권력을 뜻하는 ‘딥스테이트’는 과연 누구이며, 그 후보로 어떤 세력을 생각해야 할까? 도너번의 수훈은 미국 정보기관과 교황권의 관계를 묻는 구체적인 사례가 된다.
세 차례 세계대전 계획설과 러시아를 둘러싼 전쟁 우려
세 차례 세계대전이 미리 계획되었다는 이야기는 보통 앨버트 파이크(Albert Pike)와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사이에 오간 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개된다. 파이크는 저술가이자 스코틀랜드 의례 프리메이슨 회원이며, 마치니는 이탈리아 민족주의자이자 정치 활동가다. 크리스 핀토 감독은 초기 영화에서도 두 인물 사이의 편지에 세 차례 세계대전 계획이 담겼다는 이야기를 다뤘지만, 누가 편지를 보내고 받았는지와 그 세부 사항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힌다.

이 오래된 계획설이 현재의 전쟁 우려와 맞닿는 지점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제3차 세계대전이나 그 준비 단계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왜 러시아를 자극하며 전쟁의 위험을 키우는 것일까? 비논리적이고 미친 짓이 아닌가 하는 반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누구든 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쟁의 위험을 보여 주는 사례로는 1946년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된 크로스로드 작전의 핵실험 기록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전쟁 추진이 더 큰 계획의 일부이며, 그 배후 세력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강행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들더라도 앞으로의 전개를 단정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기다리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기다린다는 말이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과정에서도 이러한 권력에 맞서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도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지금 준비되고 있다고 보는 방식의 세계주의적 전쟁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권력에 맞서는 일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리스도인은 전쟁을 우려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권력에 맞서면서도,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여러 길 가운데 하나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 자신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시며, 누구도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전쟁의 배후에 어떤 권력이 있는지 살피고 그 권력에 맞서는 일에서도, 그리스도인이 붙들어야 할 구원의 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도행전에서는 한 사람이 치유된 뒤 베드로가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그 일이 누구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는지 밝힌다.
사도행전 4:10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그분으로 인하여 이 사람이 온전하여져서 여기 너희 앞에 서게 되었느니라.
베드로 앞의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온전해져 그들 앞에 서 있었다. 베드로의 증언은 이 한 사람을 치유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이름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한다.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요한복음 14장 6절이 아버지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을 밝힌다면, 사도행전 4장 12절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치유에 대한 증언에는 그분 외에 다른 누구도 구원을 줄 수 없다는 선언이 뒤따른다. 정치적 권력에 맞서는 그리스도인이 함께 붙들어야 할 구원의 근거도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다른 복음에 대한 경고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사도행전 4:12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을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 두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붙든다면, 그와 다른 복음도 경계해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누가 전하느냐를 이유로 다른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1:9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바울은 이미 받은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는 경고를 거듭한다. 여기에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전도자들도, 하늘에서 온 천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전하는 이의 지위나 권위가 다른 복음을 정당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인지를 앞세우기보다, 그가 전하는 내용이 이미 받은 복음과 같은지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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