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 성경

창조에서 홍수 이후까지: 성경 연대와 근동에서 살피는 인류의 시작

인류의 역사는 낮은 상태에서 점차 발전해 온 과정일까, 아니면 처음의 온전함을 잃은 뒤 타락이 깊어진 과정일까? 아담의 창조와 타락,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시작뿐 아니라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묻는다. 성경을 역사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사건의 연대를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왜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 역사를 시간 속에 놓으려면 먼저 날짜가 밝혀지지 않은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와 아담부터 계산할 수 있는 연대를 구별해야 한다. 족보에 기록된 나이는 세대 사이의 간격을 잇고, 노아의 나이와 홍수의 날짜는 그 계산을 구체적인 사건에 연결한다. 장소를 따라가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에덴과 아라랏이 등장한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사이의 근동은 초기 문명이 자리한 땅이자 홍수 이후 인류가 퍼져 나가는 중심 무대다.

이 시간과 공간 위에서 초기 도구와 문명의 의미, 고대 민족들의 홍수 전승, 화석과 지층, 아라랏의 방주 목격담을 함께 살필 수 있다. 그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질문은 문명의 발달이 곧 인간의 선함을 뜻하느냐는 것이다. 기술과 생활 방식의 변화만으로는 타락한 본성이 회복되지 않는다. 창조에서 홍수 이후로 이어지는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 완성에 이른다는 기대와, 인간에게 거듭남과 구속이 필요하다는 성경의 선언을 마주 세운다.

성경 역사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창조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경에서 살피려면 먼저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기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창세기 1장 1절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실제로 행하셨다는 전제에서 성경 역사를 읽는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다. 이사야 45장 12절은 땅과 그 위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하늘들과 그 모든 군상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며, 그분의 명령 아래 있음을 밝힌다.

이사야 45:12 내가 땅을 만들었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펼쳤으며, 내가 그 모든 군상들에게도 명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도 알려 준다. 럭크만 목사가 다윗의 말로 소개하는 시편 100편 3절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의 초편의 양이라는 관계와 함께 제시한다.

시편 100:3 너희는 주,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라. 우리를 지으신 분은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시라.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초편의 양이로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게 된 존재가 아니다. 창조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위에 사람을 두셨으며, 인간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창조의 시점과 연대 계산의 출발점은 다르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밝히지만, 그 창조가 언제 일어났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성경 기록이 시작되는 지점과 연대를 수치로 계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은 따라서 구별해야 한다. 연대 계산은 아담의 타락에 이르러 구체적인 문제가 되며, 계산에 사용할 첫 수치는 창세기 5장 3절에 나온다.

날짜가 제시되지 않은 하늘과 땅의 창조와 아담에서 셋까지의 첫 계산값 130년을 구별한 그림.

창세기 5:3 ○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계산의 출발점은 아담이 130년을 살고 셋을 낳았다는 기록이다. 다만 아담은 다른 사람처럼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창조된 사람이므로, 그의 시작을 출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또 이 130년을 어디서부터 셀 것인지에는 두 가능성이 있다. 에덴의 동산을 떠난 때부터 셋을 낳기까지의 기간일 수도 있고, 창조된 때부터 셋을 낳기까지의 기간일 수도 있다.

130년의 시작점셋의 출생까지 계산하는 기간
아담의 타락과 에덴의 동산을 떠난 때그때부터 셋을 낳기까지 130년
아담이 창조된 때창조된 때부터 셋을 낳기까지 130년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전체 연대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두 가능성 중 하나로 확정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아담과 셋 사이의 130년을 첫 계산값으로 삼는다.

아담부터 나이를 더해 얻는 어셔 연대기

연대 계산의 첫 메모는 아담, 130년, 셋이다. 이후 성경에 기록된 나이를 차례로 더해 가면 아담의 연대를 기원전 연대로 놓을 수 있다. 창세기 1장 1절에 없는 날짜를 읽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5장 3절부터 주어진 수치를 따라 계산하는 방식이다.

어셔 연대기의 기초도 연대에 관해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믿고, 기록된 나이를 합산하여 역사적 시점을 구하는 데 있다. 당시 사람들이 어셔 연대기를 조롱하고 무시하며 보수주의자들까지 이를 멸시한다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아담의 연대를 기원전 4004년으로 잡는 어셔의 계산은 올바르다. 앞뒤로 4~5년 정도 차이가 날 가능성을 허용하더라도, 대략 기원전 4000년이라는 시점은 유지된다. 이는 날짜가 제시되지 않은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 시점과는 별개의 문제다.

성경 연대 계산과 탄소-14 측정의 정확성

아담의 창조부터 셋의 출생까지인지, 타락부터 셋의 출생까지인지에 관한 차이가 연대 계산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남자가 아들을 낳으려면 적어도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은 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어느 쪽으로 계산해도 차이가 110년에 이를 만큼 크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전체 기간에 견주면 6,000년 가운데 기껏해야 110년의 오차다.

이는 과학자들이 3,000년을 측정하면서 보였다는 180년의 차이, 구체적으로는 리비의 탄소-14 실험과 비교된다. 성경에 기록된 나이를 따라 계산하면 그처럼 큰 오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정밀한 실험으로 꼽히는 방법으로도 이 정도의 오차가 생긴다면, 진정한 과학적 정확성을 구할 곳은 1611년 킹제임스 공인역이다.

리비의 탄소-14 실험에 대한 비판은 오차의 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실험 자체가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이며, 그것으로는 전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단언이다. 사람들이 늘 더 나아지려고 애쓴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족보의 나이를 더해 아브라함까지 계산한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연대는 창세기 1장부터 15장까지의 기록을 따라 계산할 수 있다. 방법 자체는 단순하다. 숫자를 적고 차례로 더해 표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135라는 수치에 다른 수치들을 더하듯, 성경에 기록된 기간을 순서대로 합산한다.

아브라함 이후의 연대가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이유는 그 무렵부터 당대의 역사 기록이 남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아브라함 시대 무렵의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왕조들은 인정한다. 따라서 먼저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연대기를 계산하면, 그 뒤의 역사 연대와 연결할 수 있다.

이때 더해야 할 수치는 각 인물의 전체 수명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아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다. 창세기 5장은 그 나이와 이후에 더 산 기간을 따로 기록한다. 아담의 기록에서 두 수치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창세기 5:3 ○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5:4 셋을 낳은 후 아담의 날들이 팔백 년이었고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창세기 5:5 아담이 살았던 모든 날들이 구백삼십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셋이 태어났을 때 아담은 130세였고, 이후 800년을 더 살아 전체 수명은 930년이었다. 그러나 아담에서 셋의 출생까지 경과한 시간은 130년이다. 다음 세대의 출생 시점을 구하려면 이 130년에 셋이 아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더해야 한다.

창세기 5:6 셋은 일백오 년을 살고 에노스를 낳았으며

창세기 5:7 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살며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창세기 5:8 셋의 모든 날들이 구백십이 년이었고 그가 죽으니라.

창세기 5:9 ○ 에노스는 구십 년을 살고 카이난을 낳았으며,

창세기 5:10 에노스는 카이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더라.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고 807년을 더 살았으므로 전체 수명은 912년이다. 아담부터 에노스의 출생까지를 계산할 때는 아담의 130년에 셋의 105년을 더한다. 그다음 카이난의 출생까지는 에노스가 카이난을 낳았을 때의 나이인 90년을 더한다. 출생을 기준으로 세대 사이의 간격을 이어 가는 방식이다.

인물다음 세대의 아들그 아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그 뒤에 더 산 기간
아담셋130세800년
셋에노스105세807년
에노스카이난90세815년

표에서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은 ‘그 아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 열이다. 창세기 5장의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아담부터 노아의 출생까지 얼마나 지났는지 계산할 수 있다.

홍수의 날짜와 아담 이후의 연대

노아에 이르면 족보에 기록된 나이에 홍수 당시의 구체적인 날짜를 연결할 수 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갔을 때 몇 살이었는지, 언제 들어가고 언제 나왔는지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기간을 막연히 추측할 필요가 없다.

족보로 구한 노아 출생 시점에 600년을 더해 홍수 시작을 놓는 계산 구조.

창세기 7:6 물로 인한 홍수가 땅에 있었을 때 노아는 육백 세라.

창세기 7:11 ○ 노아의 생이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그 달 십칠일, 그 날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으니,

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십칠일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족보를 통해 구한 노아의 출생 시점에 600년을 더하면, 아담부터 홍수까지의 기간을 얻을 수 있다.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믿고 계산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노아가 방주에 머문 기간은 370일로 계산하며, 홍수 무렵의 연대는 아담 이후 약 1,656년 또는 1,657년으로 잡는다. 이 방식으로 계산할 때는 대체로 두 수치 가운데 하나에 동의한다.

여기서 아담 이후의 연수는 아직 기원전 연대가 아니다. 1,656년이나 1,657년은 아담을 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더한 기간이지, 기원전 몇 년인지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다. 먼저 아담부터 세대와 사건 사이의 시간을 차례로 더해 다윗의 시대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때까지 계산한다. 그렇게 전체 기간을 구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신 때를 기준으로 앞선 사건이 몇 년 전의 일인지도 알 수 있다.

아담부터 앞으로 더해 기원전 연대를 구한다

아담 이후의 경과 연수를 기원전 연대로 바꾸려면, 먼저 아담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계산해야 한다. 초림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5장에 기록된 나이를 따라 아담부터 세대 사이의 간격을 차례로 더하는 방식이다. 시간을 합산하는 출발점은 아담이지만, 계산한 연대를 표시하는 기준은 그리스도의 초림이다.

창세기 5:3 ○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아담이 셋을 낳기까지의 130년이 계산의 첫 간격이다. 이 130년을 아담의 창조부터 셀 것인지, 타락부터 셀 것인지는 우선 두 가능성으로 남겨 둔다. 어느 쪽이든 이 첫 간격에 이후의 연대를 차례로 더하면 아담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약 4,000년이 된다.

어셔 연대기는 프톨레마이오스력이나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이 아니라 성경을 계산의 토대로 삼는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참이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갖도록 의도하신 성경을 지금 가지고 있다는 두 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어느 성경 본문의 수치를 따르느냐도 중요하다. 칠십인역은 그리스어로 된 구약의 변개본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그 본문을 따르면 다른 연대가 나온다는 이유로 킹제임스 1611년 공인역(KJV 1611 A.V.)의 수치를 고수한다. 이 본문을 선택하는 이유를 살펴보고 성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기 위한 참고 도서로는 『The Bible Babel』이 소개된다.

에녹과 노아의 출생, 홍수의 연대

아담부터 초림까지를 4,000년으로 놓으면, 4,000에서 아담 이후의 경과 연수를 빼서 기원전 연도를 얻는다. 예를 들어 에녹이 첫 기준점에서 623년 뒤에 태어났다면, 4,000에서 623을 뺀 3,377년, 곧 그리스도보다 3,377년 전이 된다. 노아의 출생과 방주에 들어간 시점도 같은 방식으로 환산할 수 있다.

사건아담부터 앞으로 계산한 경과 연수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환산한 연대
에녹의 출생623년약 기원전 3377년
노아의 출생1,057년약 기원전 2943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감과 홍수1,657년약 기원전 2343년

노아가 아담으로부터 1,057년 뒤에 태어났다는 것과 그리스도로부터 2,943년 전에 태어났다는 것은 같은 시점을 가리킨다. 방주에 들어간 때인 아담 이후 1,657년도 기원전 2343년과 같다. 숫자가 다른 것은 사건의 시점이 달라서가 아니라, 아담부터 지난 시간을 세느냐 그리스도보다 앞선 시간을 세느냐의 차이다.

계산하는 사람에 따라 수치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이 연대 체계에서 그 차이는 몇 년을 넘지 않는다. 홍수는 기원전 2344년 또는 2343년으로 잡으며, 아담부터 세면 각각 1,656년 또는 1,657년이 된다. 어느 수치를 택하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간격을 아담부터 앞으로 합산한다는 방법은 같다.

아담의 창조 또는 타락을 놓는 기준 연대는 기원전 4000년 또는 4004년이다. 약 4년의 차이는 그레고리우스 대제 시대의 달력 변경에 따른 것으로 설명된다. 기본적으로 기억할 연대는 기원전 4000년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언제 살았는지 알 수 있도록 창세기 5장에 연대의 기준을 주셨다. 그 계산은 아담이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셋을 낳았을 때의 나이, 곧 130년에서 시작한다.

아담의 130년은 창조부터일까, 타락부터일까?

아담이 셋을 낳기까지 살았던 130년을 어디서부터 계산하느냐에 따라 연대의 출발점이 달라진다. 창조부터 계산한다면 아담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되었고, 타락부터 계산한다면 타락이 기원전 4000년에 일어난 것이 된다.

창세기 5:3 ○ 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창조부터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셋보다 먼저 카인과 아벨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타락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타락한 뒤 셋을 낳기까지 130년이 걸렸으며, 그보다 앞서 카인과 아벨을 낳기까지도 100년, 120년 또는 125년이 걸렸다고 생각해야 한다. 반면 창조를 출발점으로 잡으면 창조 이후의 130년 안에 타락과 카인·아벨의 출생, 셋의 출생을 차례로 놓을 수 있다. 창조부터 계산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과학 실험으로 얻을 수 있는 가능성보다도 낫다.

이를 아담의 생애에 대입하면,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된 아담이 120세가 되기 전 어느 시점에 타락하고, 110세나 120세를 넘긴 어느 시점에 카인과 아벨을 낳은 뒤, 130세에 셋을 낳았을 수 있다. 타락과 카인·아벨의 출생 시점에는 이처럼 가능성을 열어 두지만, 셋을 낳았을 때의 130세는 연대를 계산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날짜를 알 수 없는 태초와 여섯 날의 구별

아담의 연대를 정한다고 해서 창세기 1장 1절의 시점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날짜가 특정되지 않은 태초와 각각 24시간으로 설명된 여섯 날을 구분한 시간 개념도.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이 구절이 말하는 태초의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아담의 시작을 기원전 4004년으로 잡더라도,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태초까지 그 날짜에 놓지는 않는다. 여섯 날의 시간은 그다음 구절부터 계산한다.

창세기 1:2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창세기 1장 2절부터 그 장의 끝까지는 기원전 4004년 이전의 여섯 기간으로 잡으며, 각 기간은 24시간이다. 따라서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1절의 태초와 각각 24시간인 2절 이후의 여섯 날을 구별해야 한다.

유대인 랍비들은 창조의 날짜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그 계산에 따른 땅의 창조, 넷째 날의 빛, 사람의 등장 날짜는 다음과 같다.

날짜랍비들의 계산에 따른 사건
9월 20일땅의 창조
9월 23일넷째 날에 빛이 나타남
9월 25일 무렵사람의 등장

랍비들의 날짜 계산은 ‘맞을 수도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 무렵에 놓는 데에는 확신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때는 가을의 장막절이며, 사람의 등장 시점으로 제시된 9월 25일 무렵을 그분의 탄생일과 연결한다. 장막절은 9월과 10월 사이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장막을 치고 거하신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장막절은 탄생뿐 아니라 재림의 때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막절에 다시 오신다. 그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로는 마태복음 17장과 마가복음 9장을 비롯한 수십 군데가 있다.

어셔 연대기와 아담·카인 시대의 인구 추산

성경 역사의 시간적 기준은 스코필드 성경의 난외주에 실린 어셔 연대기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의 시작은 대략 기원전 4000~4004년이다. 타락과 자녀 출생의 세부 시점에는 가능성을 열어 두더라도, 이 기본 연대 자체는 절대적으로 옳다.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신정통주의자, 불신자, 근본주의자들이 모두 이 연대를 바꾸려 했다는 비판은 그 이유를 킹제임스 공인역에 대한 미움에서 찾는다. 어셔 연대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 비판 속에서 단순히 편리한 연대표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킹제임스 공인역을 고수하는 문제와 맞물린다.

아담과 이브에게서 시작한 인류는 그들의 생애 동안 얼마나 늘어났을까? 시드니 콜렛의 『All About the Bible』 241쪽에는 아담 시대에 땅에 살았던 사람의 수를 계산한 표가 있다. 이 계산은 이례적으로 높은 출생률을 가정하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20년 동안 두세 명의 자녀를 낳는 통상적인 출생률을 적용하면, 아담은 죽기 전에 인구가 1,983만 6,763명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된다. 같은 출생률로 계산한 카인의 사망 당시 인구는 1억 3,633만 7,732명이다.

인구 추산의 기준 시점계산된 인구
아담이 죽기 전19,836,763명
카인이 죽었을 때136,337,732명

이처럼 통상적인 출생률만 적용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인구는 크게 늘어난다. 이 계산에 따른 초기 세계는 사람이 드문드문 흩어져 사는 땅이 아니라, 사람들로 가득 찬 땅이다.

성경 역사의 무대인 근동

기원전 약 4,000년부터 시작하는 성경 역사를 이해하려면 연대와 함께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알아야 한다. 그 중심 무대가 근동(Near East)이다. 이 지역을 살필 지도에는 북아프리카 일부와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바빌로니아가 포함되어야 하며, 인도 서부와 소아시아, 그리스 일부까지 나와야 한다. 바빌로니아·이집트·시리아 제국의 영역도 표시되어 있으면 고대 역사를 따라가기 쉽다. 이곳은 창세기의 초기 사건들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 계속 등장하는 무대다.

신약의 무대는 서쪽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뻗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이탈리아 동쪽에서 일어난다. 성경의 10분의 9 이상이 근동을 무대로 한다. 근동은 중국과 일본, 보르네오와 필리핀 등을 가리키는 극동과는 다르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도 함께 짚어 보면 티베트는 몽골 남쪽에, 시베리아는 몽골 북동쪽에 있다. 이 넓은 지도에서 성경 역사를 위해 집중해서 살필 범위는 인도 서쪽, 이탈리아 동쪽, 아라비아반도 끝의 북쪽, 러시아 남쪽이다.

현대 지도에서는 이라크, 이란,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기준으로 이 지역의 위치를 잡을 수 있다. 이스라엘을 중심에 놓으면 서쪽에는 지중해와 유럽, 남서쪽에는 북아프리카, 동쪽에는 아시아가 자리한다. 이러한 큰 지리적 범위를 먼저 익혀 두면 고대 지명과 제국의 위치도 찾기 쉽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무대

근동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역사 전체의 모든 분쟁이 집중되는 중심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고 죽으러 오신 곳이며, 구약과 신약의 책들이 기록된 곳이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불러내어 자신의 선택된 백성으로 삼으신 곳도 여기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경의 기록, 선택된 백성의 역사가 모두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장소도 근동이다. 적그리스도가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지배할 때 이곳은 세계의 중심점이 되며, 지상의 마지막 전쟁도 여기서 벌어진다.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과 마지막 전쟁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생각하면, 근동은 세계의 어느 곳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세 대륙의 사이와 두 강 사이의 땅

근동이 역사의 중심이 되는 까닭은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이란뿐 아니라 아라비아, 터키, 그리스, 그리고 구약에 등장하는 시리아를 함께 살펴보면 세 대륙 사이에서 근동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다. 성경의 사건들도 서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이 지리적 무대에서 일어난 일들로 이해할 수 있다.

노아의 방주가 땅에 머문 뒤 셈과 함과 야펫은 근동을 중심으로 세 지역에 퍼져 인구를 이루었다. 세 아들과 그 후손들이 어디로 퍼져 나갔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이 중심 지역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근동은 초기 성경 역사의 무대이자 홍수 이후 인류가 세 대륙으로 퍼져 나가는 출발점이다.

창세기 1~5장을 공부할 때는 그 안에서도 바빌로니아와 시리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메소포타미아가 표시된 지도가 도움이 된다. 메소포타미아는 ‘강들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며, 그 두 강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다. 이름에 담긴 ‘가운데’라는 뜻은 메조소프라노의 ‘메조’를 떠올리면 기억하기 쉽다. 이 두 강 사이의 땅이 문명의 요람이다.

이집트의 초기 연대와 아담의 시대

초기 문명의 역사를 성경 연대와 나란히 놓으려면, 역사서가 제시하는 연대뿐 아니라 그 연대가 어떤 기록에서 나왔는지도 살펴야 한다. 럭크만 목사는 문학석사이자 사회과 책임자가 인용한 역사서의 대목을 소개하며, 다른 저자들도 같은 내용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역사서의 모든 연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구석기 시대를 아득한 과거로 잡는 연대는 비판하지만, 저자들이 자신들이 아는 시기를 다루기 시작하면 결국 기원전 4000년이라는 같은 연대에 도달한다고 지적한다.

서로 다른 후대 기록과 남은 단편을 모아 이집트 초기 역사를 구성하는 자료 관계도.

이 역사서에 따르면 이집트 문명에 관한 지식의 일부는 후대에 기록된 역사에서 나왔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의 전설을 수집했으며, 이 시기는 기원전 400년 무렵으로 풀이된다. 3세기의 이집트 사제 마네토는 파라오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여기에 로마인들이 남긴 기록도 더해진다. 이집트의 초기 역사는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에 남겨진 기록들을 통해 살펴보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정확한 연대기를 남기지 않았지만, 이집트학자들은 남아 있는 단편들을 토대로 통일 이집트의 제1왕조가 기원전 3400년 무렵에 등장했다고 확신한다. 그리스도보다 3400년 앞선 이 시점을 성경의 초기 인류 연대와 나란히 놓으면 아담과 이브와 카인의 시대 한가운데 들어간다. 아담은 그때도 살아 있었고, 카인과 셋 역시 그 시대를 살았다. 이집트 초기 문명은 아담의 가족과 무관한 별개의 먼 과거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던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지리와 수메르 문명의 시작

이집트와 함께 초기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은 메소포타미아다. 두 강 사이에 놓인 이 땅은 고대에 대략 북위 34도선을 경계로 북쪽의 앗시리아와 남쪽의 바빌로니아로 나뉘었다.

지역메소포타미아 안의 위치지리적 특징
앗시리아대략 북위 34도선 북쪽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지역
바빌로니아대략 북위 34도선 남쪽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자리한 더 풍요로운 지역

바빌로니아가 더 풍요로웠던 까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까지 활 모양으로 뻗은 이 지대는 두 강의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으로 비옥해졌다. 메소포타미아의 최초 문명은 삼각주에 자리한 수메르에서 시작되었고, 수메르인들도 그곳에서 나왔다. 참고하는 역사서의 저자는 수메르 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3000년 무렵으로 잡으며, 홍수 조금 뒤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수메르의 종교와 문학 역시 이 문명을 설명하는 주요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문명의 초기 중심지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라는 점은 세속 역사가들의 설명에서도 나타난다. 두 문명의 위치를 함께 이해하려면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고 팔레스타인 동쪽의 메소포타미아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가 필요하다. 그 위에서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과 남북의 구분, 초승달 모양으로 이어지는 비옥한 땅을 살펴보면 초기 문명이 시작된 지리적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서에서 문명의 위치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 저자들의 역사관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세속 역사가들에 대한 비판은 인간은 점점 나아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의 90퍼센트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다. 초기 역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인간의 진보를 전제한 설명이 아니라 성경이다. 성경은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이며, 킹제임스성경의 난외주에는 기원전 4004년이라는 연대가 제시되어 있다. 이 연대를 받아들이는 바탕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틀릴 수 없다는 확신이 있다.

인간이 나아진다는 전제와 타락했다는 전제

아담과 이브의 창조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두 사람이 타락했다는 기록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를 읽는 출발점은 성경은 옳고 다윈은 틀리다는 전제다. 럭크만 목사는 진화에 관련된 사실들을 면밀히 연구한 끝에 다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확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다. 그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우선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 나아지는 존재인가 하는 문제다.

인간의 진보를 믿는 역사가만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듭나고 성경을 믿는 사람도 인간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역사관을 비교할 때, 상대방만 주관적이고 편향되어 있으며 자신에게는 아무런 전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양쪽 모두 출발점이 있다. 차이는 인간이 점점 나아진다는 기대에서 역사를 읽느냐, 성경에 기록된 창조와 타락에서 역사를 읽느냐에 있다.

비교할 점인간의 진보를 전제하는 역사관성경을 믿는 역사관
인간에 대한 출발점인간은 점점 나아진다인간은 나아지지 않는다
창조와 타락의 기록성경의 기록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타락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인다
전제에 대한 태도인간의 진보를 전제로 역사를 읽는다자신도 전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며 성경에서 출발한다

거듭남이 필요한 인간의 본성

인간이 저절로 나아지는 존재가 아니라면 필요한 것은 거듭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지금의 상태 그대로 충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주장과 죽은 영아의 운명이라는 별도 질문을 분리한 논증 구조.

요한복음 3:7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거듭남이 왜 필요한지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본성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이전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베소서 2:3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다는 말은 인간의 문제가 몇몇 잘못된 행동에만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사람은 아담의 본성을 지니고 죄 가운데 태어난다. 역사를 이해할 때에도 인간이 지닌 이 타락한 본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에는 영아의 죽음을 들어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며 본래 진노의 자녀라면, 죽은 아기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럭크만 목사는 수천 명을 상대해 온 경험으로 이런 반응을 미리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인간의 본성에 관한 성경 말씀을 듣자마자 아기의 죽음을 이유로 그 말씀을 부정하려는 태도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질책한다.

영아의 죽음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당장 답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관한 말씀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죽은 영아의 운명에 관한 상세한 신학적 답변은 별도로 다룰 문제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문제를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해서는 안 된다.

로마서 3:12 모두가 탈선하여 함께 무익하게 되었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12의 “한 사람도 없도다”라는 선언은 인간에 대한 판단에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인간이 자기 힘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어 간다는 기대를 역사의 기본 전제로 삼을 수 없다. 거듭남은 일부 사람에게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아담의 본성을 지닌 인간에게 필요한 일이다.

종교가 아니라 아들에게 생명이 있다

타락한 인간에게 필요한 구원은 종교를 갖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다. 지옥의 저주를 어떻게 피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종교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답이 되지 않는다.

종교에 소속된 상태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상태를 구원의 기준에서 구별하는 개념 그림.

마태복음 23:33 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

생명의 유무를 가르는 기준은 요한일서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요한일서 5:12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가이지, 어떤 종교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다. 모든 종교가 마귀에게서 나와 사람의 영혼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단언은 종교 자체를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종교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는 과장된 비유로는, 양쪽 목발에 불도저까지 동원해도 길에서 3피트 반조차 나아가게 해 주지 못한다는 설명이 제시된다. 아무리 많은 도움을 보태도 종교로는 필요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의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다.

인간의 진보가 도달하는 곳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타락하여 완전히 망가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은 점점 더 악해질 수밖에 없다. 그 끝에는 단순한 도덕적 실패를 넘어, 사탄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잘못 알고 경배하는 일이 기다린다.

진보의 완성으로 환영하는 대상이 사탄의 체제라는 본문의 역설을 보여 주는 풍자 그림.

성경에 기록된 역사와 예언은 마지막 때에 거짓말의 아비이며 속은 모든 자를 속이는 사탄 자신이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이 만들어 낸 가장 사탄적이고 마귀 같으며 지옥 같은 체제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 진보의 절정이자 완성으로 받아들인다.

늪에서 스스로 기어 나와 높이 솟아오르는 ‘위대한 아메바’는 인간이 낮은 상태에서 출발해 자기 힘으로 끊임없이 상승한다는 진보관을 풍자한 표현이다. 스스로 발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결국 사탄의 체제를 완성된 진보로 환영한다는 데 역설이 있다. 인간의 문제는 능력이나 문명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경배하는 대상조차 분별하지 못할 만큼 타락했다는 데 있다.

스스로 이루는 진보와 구속의 은혜 인간은 자기 힘으로 상승하고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타락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없이 계속 악해지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거듭남이다.

성경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의 판단도 바로잡는다

판단의 출발점은 성경이 옳다는 것이다. 성경과 다른 견해를 취한다면 그 견해를 가진 사람이 틀린 것이며,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말과 생각과 믿음 역시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 믿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느냐다.

타인의 견해뿐 아니라 자신의 교육과 경험에서 나온 판단도 동일하게 성경의 기준에 놓는 그림.

럭크만 목사는 자신의 확신을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믿도록 교육받은 결과로 돌리는 데 반대한다.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신자로 자랐지, 처음부터 성경 신자로 길러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결파의 산골 촌뜨기라서 다른 생각을 할 분별력이 없다는 식의 평가도 거부한다. 관련 사실과 서적, 연구를 알고 내린 판단이라는 점을 자신의 교육과 경험을 들어 밝힌다.

럭크만 목사가 제시한 교육 기간은 대학 4년과 신학교 6년을 합한 10년이다. 여기에 오랜 세월 여러 문제를 검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과 논쟁한 경험이 더해진다. 양측의 사실은 물론 상대가 생각해 낼 반론과 앞으로 만들어 낼 반론까지 충분히 알고 있다는 자신감도 드러낸다. 그러나 모든 반론에 하나씩 답하기에 앞서 적용할 기준은 성경이다. 교육과 논쟁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판단을 그 기준 위에 놓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 기준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 타락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없다면 인간은 철저하고 끝없고 영원하며 끔찍한 파멸 상태에 있다. 럭크만 목사는 이런 말을 중세의 광신자나 편협하고 독단적이며 청교도적인 암울한 예언자의 말로 치부하는 데 반대한다. 자신은 제정신인 계몽된 20세기 시민이며, 충분한 검토와 논쟁을 거쳐 인간의 타락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현대의 교육과 지식을 접했다는 사실이 인간의 타락과 거듭남의 필요성을 버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아담의 타락과 잃어버린 형상의 회복

아담의 타락은 작은 실수나 일시적인 후퇴가 아니라 인간 전체를 무너뜨린 파국이었다. 그 충격은 그라프 슈페의 폭발조차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나 냄비 속 팝콘이 톡톡 터지는 소리처럼 여겨질 만큼 컸다. 럭크만 목사는 아담의 타락에 관한 반론들에 이미 적어도 스무 번은 철저히 답했다고 밝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락이 인간에게 가져온 변화다.

창조된 아담, 타락한 상태를 이어받은 후손들, 그리스도의 구속에 달린 형상 회복을 연결한 그림.

아담은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고, 그의 영은 죽었다. 자녀들도 죽은 영을 지닌 채 태어났다. 따라서 인간의 출발을 이해하려면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와 타락한 뒤의 상태를 구분해야 한다. 카인과 아벨은 처음 창조된 상태의 아담이 아니라, 타락한 아담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이었다.

타락한 아담과 후손들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약속이 남아 있었다. 아담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신이 지은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자신과 후손들을 구속하시며,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해 주실 때를 바라보았다. 인간에게 필요한 회복은 타락으로 잃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며, 그 회복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달려 있었다.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를 아담과 연결하는 가설

아담의 가족을 초기 이집트 왕들과 연결하는 가설의 출발점은 아비도스(Abydos) 판이다. 이 판은 세티 1세의 무덤에서 가져와 대영박물관에 보관한 것으로 소개되며, 세티 1세는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로 불린다. 그에게는 미나와 셰샤손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고, 두 이름의 철자는 각각 M-E-N-A와 S-H-E-S-H-I-S-O-N으로 제시된다.

둘째 아들의 이름에는 ‘죄 있는 자’라는 뜻이 붙는다. 일부 비문에서는 그를 테타 켄트라고 부르며, 라틴어로는 아토스(A-T-H-O-S), 옛 영어로는 카인(C-A-I-N)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이름의 뜻과 여러 표기를 카인에게 연결하면,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가 아담이고 미나와 셰샤손이 카인과 아벨일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은 매우 파격적인 추측이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가설이다.

이름 외에 주목하는 특징은 ‘죄 있는 자’로 불리는 둘째에게 표가 있다는 점이다. 죄를 뜻하는 이름에 표를 지녔다는 특징이 더해지면서 카인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그 표와 카인의 피부색 사이의 관계를 꽤 잘 보여 주는 단서를 담고 있다는 추측이 더해진다. 그 관련성이 어쩌면 함의 피부색에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파라오들을 포함한 이집트 사람들이 함의 후손이라는 설명이 함께 놓인다. 카인의 표와 피부색을 연결하는 추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의 피부색과 그 후손인 이집트 사람들까지 살펴보는 가설이다.

초기 문명은 불을 두려워하는 유인원에게서 시작했는가

문명의 최초 흔적은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에게서 시작된다. 그 문명이 초보적인 형태였을 수는 있어도, 불을 무서워하며 비틀거리고 돌아다니는 털 많은 유인원의 생활과 같지는 않았다. 비판의 대상은 발생학자·민족학자·지질학자·인류학자·고고학자들이 초기 인간을 그런 모습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그런 묘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얼빠지고 어리석은 묘사로 강하게 배척된다.

아담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했던 사람이었다. 그 교제의 기간은 130년, 혹은 120년이나 100년으로 제시된다. 초기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불을 두려워하는 유인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다가 타락한 아담이다. 따라서 초기 문명의 초보적인 모습도 인간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조잡한 도구가 필요해진 것은 타락 이후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는 일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힘들게 땅을 갈며 생계를 이어 가야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타락 뒤에 사용한 농기구가 조잡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인간이 낮은 상태에서 발전해 온 흔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전에는 필요 없던 도구를 이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조잡한 농기구를 능력의 발전과 낙원 상실 뒤의 필요라는 서로 다른 원인으로 설명하는 비교 그림.

인간의 시작은 아메바에서 플라나리아로, 짚신벌레와 히드라에서 지렁이로, 다시 다른 생물로 변하다가 마침내 밭 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다. 성경이 그리는 인간은 완전하고 황홀한 낙원에서 살다가 타락한 인간이다. 그 풍요로운 삶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더없이 붉은 장미가 핀 공중 정원과, 하늘 위 나뭇가지의 향기가 감도는 라일락 침상에서 보내는 밤이다. 밭 가는 법을 배워야 했던 때는 그 풍요로움을 잃은 뒤였다.

따라서 조잡한 도구는 낮은 상태에서 올라온 흔적이 아니라, 높은 상태에서 떨어진 뒤 살아가기 위해 새로 도구를 만들어야 했던 흔적이다. 도구를 만들고 농경을 배웠다는 같은 사실을 두고도, 인간이 처음에 어떤 상태였는지에 따라 그 이유를 정반대로 이해하게 된다.

비교할 점비판의 대상인 진보 설명타락을 출발점으로 삼는 설명
인간의 시작낮은 생물에서 점차 발전한 존재완전한 낙원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던 존재
농경을 배우게 된 이유발전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얻었기 때문타락한 뒤 땅을 갈아야 했기 때문
초기 도구의 조잡함아직 발전이 충분하지 않았던 단계이전에는 필요 없던 도구를 새로 만들어야 했던 결과

다윈에 대한 비판은 이 방향을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쟁점은 인간이 실제로 도구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다. 도구를 필요로 하게 된 인간의 처지를 진보로 읽을 것인가, 낙원을 잃은 타락의 결과로 읽을 것인가에 있다.

약 1,600년 동안 인간은 더 악해졌다

낙원을 잃은 뒤 인간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의 관습과 행동 방식을 따라 살아가면서 더욱 악해지고 부패했다. 창세기 6장은 홍수 이전 인간의 상태를 생활 도구나 문명의 발달 정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라난 악으로 드러낸다.

약 1,600년의 시간 경과를 인간의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악화와 심판으로 설명하는 연속 그림.

창세기 6:5 ○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문제는 도구가 미숙하거나 생활 조건이 열악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마음의 생각과 상상까지 계속 악할 뿐이었고, 그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졌다. 문명이 오래 이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도덕적으로 나아졌다는 판단은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도 인간에게 시간을 더 주어 개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창세기 6:7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심판의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까지 포함한다. 인간의 악화는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생명들을 지면에서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시는 데 이르렀다.

이 기간의 시작은 기원전 약 4000년, 끝은 기원전 2360년이나 2370년 무렵으로 제시된다. 홍수를 둥근 수치인 기원전 약 2400년에 놓으면 그 사이에는 약 1,600년이 놓인다. 인간에게 주어진 약 1,600년은 도덕적 진보가 아니라 악화의 시간이었다. 긴 세월을 거치며 인간이 점점 나아졌다는 설명은 창세기 6장이 묘사하는 상태와 정반대다.

인간 역사의 방향을 어떻게 보느냐가 구원받은 이들의 신학과 구원받지 않은 이들의 신학을 가른다는 단언이다. 미국에서 구원받은 설교자나 교사가 다윈의 이야기를 믿는다면, 자기 수입 때문에 그것을 믿으려는 주관적인 동기가 있다는 비판이며, 다윈의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배척된다. 반대로 미국의 구원받지 않은 교사나 설교자는 모두 인간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비판이다. 인간이 본래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느냐,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길을 따를수록 더 부패한다고 보느냐에 따라 같은 역사를 정반대로 읽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홍수의 심판

홍수 이전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주에서 내려와 지상의 인간들과 함께 지내며 거대한 초인종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별들을 향해 뻗어 나가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우주로 퍼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홍수는 악해진 지상의 인간을 심판하는 동시에 그 확장을 막는 사건이었다. 예상되는 반발에도 이 설명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확신으로 제시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하강, 거대한 후손의 출현, 별을 향한 확장 시도와 홍수에 의한 중단을 연결한 해석도.

“저 녀석이 우주에 퍼져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라는 말은 그 심판의 뜻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 극화한 표현이다. 앞서 인용한 창세기의 직접 인용문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내려와 거대한 초인종이 생겨났고, 이들이 별들을 향해 확장하려 하자 하나님께서 홍수로 막으셨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수록 더 악해지고 부패하며 썩어 가는 인간을 내려다보시고 쓸어버리기로 하셨다. 창세기 6~8장의 홍수는 실제로 인간을 물에 빠뜨려 멸망시키는 심판이었다. 홍수 사건의 연대로는 기원전 약 2344년도 제시된다. 이 심판이 온 세상을 덮었는지, 일부 지역에만 닥쳤는지는 홍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쟁점이다.

홍수는 온 땅을 덮었는가

기원전 약 2344년에 일어난 홍수는 한 지역만 물에 잠긴 사건이 아니라 온 땅을 덮은 사건이다. 성경은 그 범위가 전 지구적이었음을 분명히 밝히며, 고대 민족들의 기록도 이 홍수가 닥쳤음을 증언한다. 이에 맞서는 국지적 홍수론은 홍수의 발생 자체보다 그 범위를 문제 삼는다. 물이 일부 지역을 덮었을 뿐, 지구 전체를 덮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높은 곳의 물이 언다는 반론과 수면 상승에 따라 대기도 올라간다는 반박을 비교한 단면 개념도.

럭크만 목사가 최근 직접 들었다는 반론은 에베레스트산의 높이와 기온을 근거로 삼았다. 온 땅을 덮으려면 물이 모든 산보다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에베레스트산까지 넘었다면 물이 얼어 버렸을 것이고 방주는 결국 얼음 위에 떠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럭크만 목사는 물이 높아질 때 대기도 함께 밀려 올라간다고 반박했다. 수면만 현재의 높은 산 위로 올라가고 대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이 계속 상승하면서 대기도 위로 밀어 올렸다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의 대기도 저 아래 벵골만의 낮은 곳만큼 따뜻했을 것이므로 현재의 산 높이에 따른 기온을 그대로 적용해 결빙을 단정할 수 없다는 반박이었다.

럭크만 목사는 이 반론을 제기한 상대를 “배운 멍청이”라고 부르며,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성경을 반대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판단을 비합리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이유로 미쳤거나 흥분해 있고, 감정적이며 제정신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럭크만 목사는 정작 지구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성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강하게 맞받았다. 에베레스트산을 둘러싼 대화에서 겨냥한 것은 교육 수준을 곧 합리성으로 여기는 태도였다.

또 다른 반론은 홍수 기록을 노아의 제한된 시야로 설명한다. 노아가 방주 밖을 내다보며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 적었으므로, 그 기록만으로는 다른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고대 민족에게도 홍수 기록이 남아 있다. 홍수에 대한 증언이 노아 한 사람의 관찰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 기록 곳곳에 나타난다는 점은 성경이 옳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기록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기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얼마나 널리 남아 있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국지적 홍수론의 반론전 지구적 홍수를 옹호하는 응답
에베레스트산을 넘을 만큼 높아진 물은 얼어 버렸을 것이다.물이 상승하면서 대기도 함께 밀어 올렸으므로, 현재의 산 높이에 따른 기온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노아는 방주에서 보이는 범위만 기록했을 것이다.여러 고대 민족의 홍수 기록이 있어, 홍수의 증언을 노아 개인의 시야로만 한정할 수 없다.

수메르 점토판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전승

메소포타미아에는 성경 외에도 고대의 홍수를 전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워드 F. 보스의 『고고학 속의 창세기』는 이러한 자료를 다루면서, 홍수 이전 사람들의 장수와 관련해 수메르 왕 명단을 소개한다. 수메르 지역과 바빌론 남쪽의 키시에서 이루어진 발굴 및 여러 조사도 함께 다룬다. 왕들의 수명을 적은 기록과 홍수 전승은 창세기가 전하는 초기 인류의 역사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에게 듣는 홍수 이야기와 그 전승에 나오는 여섯 갑판 배의 구조.

니푸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수메르의 홍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남아 있는 단편의 첫머리에서 일부 신들은 다가올 홍수를 슬퍼하지만, 신들의 무리 전체는 이미 인류에게 홍수를 보내기로 결정한 상태다. 그 결정에 대한 일부 신들의 슬픔이 나타난 뒤 홍수 자체가 묘사된다.

바빌로니아의 홍수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나온 자료로, 열두 점토판에 기록된 더 긴 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를 이룬다. 길가메시는 불멸, 곧 영생을 찾아 나서며, 그 탐색은 카인과 아벨이 다시 들어가려 했던 일과도 연결된다. 길가메시는 여행 도중 불멸을 얻은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빌로니아 전승에서 노아에 해당하는 인물인 우트나피쉬팀은 한 변이 120큐빗이고 갑판이 여섯 층인 배를 만들었으며, 배의 틈새를 아스팔트로 메웠다. 수메르 점토판의 단편이 홍수를 보내기로 한 신들의 결정과 재앙을 전한다면, 바빌로니아 전승은 영생을 찾아가는 이야기 안에 홍수와 그 생존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창세기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는 단순히 큰물이 났다는 점만 닮은 것이 아니다. 재앙이 일어난 이유, 한 사람이 미리 경고를 받고 배를 준비하는 과정, 사람과 생물이 살아남는 방식, 홍수가 끝난 뒤의 행동까지 여러 세부 내용이 서로 대응한다.

비교할 내용두 홍수 기록의 공통점
홍수의 계획과 이유신적 계획에 따라 인간의 잘못이나 도덕적 타락을 벌하는 재앙이 일어난다.
사전 경고다가올 재앙이 한 사람에게 계시된다.
배의 준비주인공이 신의 지시를 받아 배를 만들고 안팎에 역청을 바른다.
생명의 보존소수의 사람과 상당수의 다른 생물이 배에 올라 살아남는다.
홍수의 경과홍수의 물리적 원인과 지속 기간을 명시한다.
홍수 이후배가 머문 곳과 새들을 내보낸 일을 기록한다.

바빌로니아 비문에도 이처럼 상응하는 내용이 남아 있으므로, 성경의 홍수를 다른 어떤 기록과도 접점이 없는 황당한 이야기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두 기록을 같은 수준에 놓을 수는 없다.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는 여러 신이 등장하는 등 신화적 요소가 섞여 있지만, 성경의 기록은 그보다 훨씬 명확하고 정확하다.

높은 곳의 퇴적물과 함께 묻힌 동물들

고대 전승이 홍수의 기억을 전한다면, 높은 지대의 퇴적물과 한데 묻힌 동물들은 땅에 남은 홍수의 흔적을 보여 준다. 여러 종류의 동물이 함께 묻힌 지표의 틈과 위기에 처한 자세로 보존된 물고기까지 살펴보면, 홍수가 온 지구에 미쳤다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지대 틈의 혼합 동물 매장 묘사와 이를 홍수 때의 동시 피난·익사로 읽는 해석을 구분한 단면 그림.

황토는 층을 이루지 않은 노란 양토나 점토다. 이 퇴적물이 때로는 2,000~9,000피트 높이에서 발견되며, 그곳에는 화산성 진흙과 장석도 나타난다. 이러한 물질은 빙하에서 비롯될 수 없고, 전 세계에 걸친 홍수로만 설명할 수 있다.

잉글랜드, 러시아, 그리스, 시칠리아, 네브래스카, 몰타에서는 동물 뼈가 가득 들어 있는 지표의 틈들이 발견된다. 하나같이 높은 곳에 있으며, 온갖 종류의 동물이 한 매장지에 함께 묻혀 있는데도 서로 잡아먹은 흔적이 없다. 마치 모든 동물이 동시에 높은 곳으로 달려갔다가 그곳에서 익사한 듯한 모습이다. 높은 지대의 언덕 하나에서 발견된 동물 수가 무려 9,000마리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 전염병으로는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을 한꺼번에 죽이고 같은 매장지로 몰아넣을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홍수뿐이다.

물고기의 보존 상태에서도 급박한 죽음의 순간을 볼 수 있다. 위험이 닥칠 때만 가시를 펼치는 물고기들이 가시를 펼친 채 경련하는 자세로 발견된다. 이런 물고기들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잉글랜드와 러시아, 그리스, 시칠리아, 네브래스카에서는 발견된다. 따라서 홍수의 흔적을 찾을 지리적 범위를 근동에 한정할 수 없다.

매몰된 물고기는 석유의 기원과도 연결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인 맥팔레인 박사는 석유가 매몰된 물고기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며, 이를 다룬 글을 400쪽에 걸쳐 썼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척추동물인 물고기들이 수천 마리씩 온전한 모습으로 암석에 묻혀 보존되어 있다.

화석의 보존 상태와 지층이 형성된 속도

화석에 피부가 남아 있다는 것은 연한 조직이 분해되기 전에 생물이 산 채로 매몰되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물고기를 비롯한 수천 개의 화석은 생물이 서서히 죽고 그 위로 여러 지층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화산성 해일이 생물들을 한데 몰아넣고 압착하여 짓눌렀다. 이런 매몰을 일으킨 것은 이후 세상이 다시는 겪지 못한 파괴적인 홍수와 대격변이었다. 물은 한 지역을 넘어 온 지구를 덮었고, 비도 단순히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거세게 쏟아졌다.

연한 조직의 보존을 생물의 급격한 집적과 매몰·압착에 연결하는 본문의 설명도.

침식된 층 경계의 예상과 평탄하고 압착된 층을 대조하는 본문의 지층 형성 속도 논증.

암석층과 화석이 서로를 연대 판단 근거로 삼는 가상 문답의 순환 구조.

지질학자들이 제시하는 지층의 배열과 연대 판단 방식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지층 배열은 실제로 발견하거나 발굴한 것이 아니라, 서로 떨어진 장소의 지층을 이론적으로 조합한 것이며, 상당수 암석은 그들이 주장하는 순서와 반대로 놓여 있다는 비판이다. 연대 판단에서 지적되는 문제는 지층과 화석이 서로의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지층의 연대는 그 안에 든 화석으로 판단하고, 다시 화석의 연대는 그것이 나온 지층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4,000년이라는 연대를 붙이는 가상의 문답을 생각하면 문제가 분명해진다. 지질학자에게 암석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물으면, 그 안에서 발견된 화석을 근거로 4,000년 되었다고 답한다. 이번에는 화석을 가진 사람에게 그 화석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묻는다. 답은 역시 4,000년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다시 물으면, 화석이 발견된 지층을 근거로 내세운다.

연대를 판단하는 대상제시하는 연대그 연대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
암석층4,000년그 안에서 발견된 화석
화석4,000년그 화석이 발견된 암석층

이렇게 지층과 화석이 서로의 연대를 근거로 삼으면 어느 쪽도 상대방과 별개로 연대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서로를 뛰어넘는 놀이에 빗댄 것도 한쪽에서 내세운 근거를 따라가면 다른 쪽을 거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층이 얼마나 빨리 형성되었는지는 그 평탄함에서도 드러난다. 여러 층이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쌓였다면, 먼저 생긴 오래된 층에는 침식으로 깎이고 패인 불규칙한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지층에서 그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층이 빠르게 형성되었음을 가리킨다. 땅속의 층들이 서로 짓눌리고 압착되며 밀려 붙은 모습도 급격한 형성을 보여 준다. 이 모든 징후는 매몰과 압착이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격렬하게 일어났음을 보여 주는 홍수의 증거다.

빙하기 설명에 대한 반박과 거대한 물의 힘

급격한 매몰과 지층의 변형을 빙하기로 설명하는 견해를 “미친 이론”이라고 부르며 배척한다. 첫 번째 반론은 지구를 덮는 데 필요한 얼음과 물의 양에 관한 것이다. 지구 전체를 덮을 만큼의 얼음은 없지만 물은 충분하다. 온 지구를 뒤덮을 막대한 얼음이 생겨나려면 얼마나 엄청난 자연현상이 필요할까? 그만한 얼음을 만들어 내는 데는 오히려 홍수보다 더 큰 기적이 필요하다는 반박이다.

얼음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힘에 대한 의문과 홍수의 물이 바위를 이동·매몰시킨다는 설명의 비교.

두 번째 반론은 빙하가 생기는 고도와 이동 방향이다. 빙하는 고도 6,000피트 미만에서 생겨난 적이 없는 반면, 극지를 덮은 얼음인 빙관은 해수면 위로 100피트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수치를 대조한다. 극지 빙관이 온 지구를 뒤덮었다면 낮은 곳의 얼음이 높은 산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빙하가 어떻게 6,000피트나 되는 오르막을 올라갈 수 있을까? 얼음의 양뿐 아니라 그 얼음을 산지까지 밀어 올릴 힘도 설명해야 한다. 극지 빙관이 온 지구를 덮었다고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는 학자들을 “미친, 배웠다는 멍청이들”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맞서 제시하는 힘은 거세게 움직이는 홍수의 물이다. 중력을 능가하여 호수를 가로지르고 높이 3,000피트의 산을 넘으며, 수 톤이나 나가는 바위 무더기를 그 아래 땅속으로 눌러 박을 수 있는 힘은 이것뿐이다. 물은 움직이고 구르며 포효했다. 화석을 한데 몰아 압착한 해일, 지층을 밀어 붙이고 거대한 바위를 땅속에 눌러 박은 물의 힘은 모두 전 지구적 홍수가 얼마나 급격하고 격렬했는지를 보여 준다.

큰 깊음에서 솟아오른 물과 전 지구적 격변

노아의 홍수 때에는 하늘에서 비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 땅 아래에서도 막대한 물이 솟아올랐다. 창세기 7장 11절은 하늘의 창들이 열리는 것과 함께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고 기록한다.

창세기 7:11 ○ 노아의 생이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그 달 십칠일, 그 날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으니,

홍수를 일으킨 물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밀려왔다. 땅이 갈라지고 솟구치다가 터졌으며, 화산에서는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높이 60피트의 해일이 적도를 따라 시속 40~50마일로 지구를 돌았다. 단순히 비가 많이 내린 사건이 아니라 땅과 바다, 대기까지 뒤흔든 전 지구적 격변이었다.

빙하기를 믿는 사람을 딱하고 무지하며 중세적이고 독단적이고 청교도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이교도, 곧 사실을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까지 비판한다. 빙하기 대신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홍수이며, 그 시점은 기원전 2344년이다. 홍수 당시 대기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고, 지구 전체가 물에 뒤덮여 완전히 잠겼다. 앞서 살펴본 실제 증거들은 그 격변을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셈·함·야펫,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만이 그 격변에서 살아남았다. 이들은 물에 완전히 잠겼던 땅의 유일한 소유자가 되었으며, 홍수 이후 인류의 역사는 이 가족에게서 다시 시작되었다.

방주에는 종마다가 아니라 종류마다 들어갔다

모든 동물을 방주에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동물을 세는 단위인 종(species)과 종류(kind)를 구분해야 한다. 여기서 종류는 분류학의 종이 아니라 과(family)에 대응한다. 동물의 분류 단계를 계, 아계, 강, 목, 과, 속, 종으로 나열하면 과는 속과 종보다 넓은 범주다. 따라서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수를 계산할 때도 각 종을 따로 세어 두 마리씩 잡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을 포괄하는 과를 기준으로 두 마리씩 세어야 한다.

구분방주에 들어간 동물을 세는 기준
종마다 두 마리각 종을 따로 세어 두 마리씩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 설명에서 배척하는 기준이다.
종류마다 두 마리종류를 과에 대응시켜 계산하는 방식이다. 개과 두 마리와 고양이과 두 마리가 그 예다.

방주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배의 크기와도 관계가 있다. 방주는 부피로 따지면 퀸 메리호보다 컸으며, 동물을 실을 만한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수용 능력에 관한 참고 문헌으로는 레빙켈(Rehwinkel)의 『홍수』(The Flood)가 있다. 콘코르디아 출판사(Concordia Publishing Company)가 1951년에 출간한 책이다.

근동에서 세 대륙으로 퍼진 노아의 후손들

노아와 함께 방주에서 나온 셈·함·야펫의 후손들은 근동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가 세 대륙을 채운다. 그 출발 시점은 기원전 약 2344년 또는 2343년으로 잡으며, 몇 년 정도의 차이는 허용한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사이에 놓인 근동은 이들이 각 대륙으로 흩어져 나가는 출발점이었다.

근동이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사이에 놓인 위치를 보여 주는 현대 지도.

이 분산을 코카서스계·몽골계·흑인계, 곧 유럽계·아시아계·아프리카계라는 세 인종 범주와 연결한다. 근동은 여러 민족이 섞이는 용광로이기도 하다. 이집트인과 유대인, 튀르키예인과 페르시아인을 그리스인 옆에 나란히 세우면 거의 구별하지 못할 만큼 닮았다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근동을 벗어나 서로 떨어져 살아가면서 집단들은 분리되고 갈라진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그렇게 형성되는 민족의 예에 속하며, 민족들이 각기 나뉘어 퍼지는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다.

셈·함·야펫에 따른 구분에서는 각 계통에 ‘순수한’ 집단이 있다. 호텐토트족·와투치족·퍼지워지족은 함 계통으로, 독일인·스웨덴인·영국인은 야펫 계통으로 분류한다. 대법원이나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무엇이라고 하든 이 구분에는 근거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인간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는 근거로 인용하는 구절은 로마서 3:4의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라는 말씀이다.

로마서 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

홍수의 연대와 방주가 멈춘 아라랏 산지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발을 디딘 땅은 온 지구를 덮었던 홍수가 지나간 뒤의 땅이다. 여러 지역의 문헌에도 홍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문헌들에 연결되는 연대를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시점과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일곱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산지에 멈춘 사건과 이후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 사건을 구별한 그림.

홍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문헌제시된 연대
앗시리아 문헌2300년
그리스 문헌2300년
그 밖의 문헌2700년
이집트 문헌2600년
멕시코 문헌2297년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장소는 아라랏 산지다. 창세기 8:4는 방주가 그곳에 멈춘 때를 일곱째 달 십칠일로 기록한다. 이 날짜는 방주에서 나온 날이 아니라 방주가 산지 위에 멈춘 날이다.

창세기 8:4 일곱째 달, 그 달 십칠일에 방주는 아라랏 산지 위에 멈췄더라.

에덴의 땅과 그 안에 있던 동산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에덴과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아라랏은 인류 역사의 출발점을 근동에서 찾게 한다. 아담과 이브도 이 근처에서 나왔을 것이며, 에덴의 동산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했다. 그 위치를 짚는 단서는 창세기 2:11~14에 나오는 강과 지명이다.

넓은 에덴의 땅 안에 동쪽의 동산을 작게 배치하고, 강과 지명 및 약속된 땅의 연결 가설을 구분한 개념도.

창세기 2:11 첫 번째의 이름은 피손인데 금이 있는 하윌라의 온 땅을 둘렀으며

창세기 2:12 그 땅의 금은 좋고, 그곳에는 델리엄과 얼룩마노도 있더라.

창세기 2:13 두 번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에디오피아의 온 땅을 둘렀더라.

창세기 2:14 세 번째 강의 이름은 힛데켈이라. 그것은 앗시리아 동편으로 흐르더라. 네 번째 강은 유프라테스더라.

유프라테스는 이 땅을 지나는 강 가운데 하나다. 힛데켈의 위치는 앗시리아 동편으로, 기혼이 두른 땅은 에디오피아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명들을 바탕으로 에덴이라 불렸던 땅을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북아라비아, 소아시아 동부, 페르시아 서부, 이라크와 이란에 걸친 넓은 지역으로 잡는다.

에덴이라는 땅과 그 안에 있던 동산은 같은 범위가 아니다. 동산은 이 넓은 땅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나온 칼데아 우르 부근에 자리했을 것이다. 원래 에덴이라 불렸던 넓은 땅은 훗날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약속된 땅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되는 곳은 동산 하나가 아니라 동산을 품고 있던 에덴의 땅이다.

아라랏에서 세 대륙 사이의 근동으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아라랏 산지는 이 약속된 땅의 맨 위쪽에 놓인다. 지도에서는 가로로 난 38도선 바로 위에서 거의 39도선에 이르는 곳, 세로로 난 40도선과 44도선 사이에 해당한다. 럭크만 목사는 세로선을 ‘위도’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망설이면서도, 찾으려는 지점은 세로선 40~44도 사이이자 가로선 39도 표시에 조금 못 미치는 곳으로 짚는다.

노아는 이곳에서 방주를 나와 산비탈을 내려가 세 대륙 사이의 중심지인 근동으로 들어갔다. 출발 지점은 남러시아의 캅카스산맥 부근으로 설명되며, 캅카스라는 지명은 코카서스계라는 명칭과도 연결된다. 근동을 중심에 두면 북쪽에는 유럽, 남서쪽에는 아프리카, 동쪽에는 아시아가 놓인다. 세 대륙이 맞닿는 이 땅이 이후 역사가 펼쳐질 무대이자, 사실상 역사가 시작되고 끝나는 장소다.

이 이동은 노아가 실제로 존재했던 방주에서 나왔다는 데서 출발한다. 방주는 단지 이야기 속의 배가 아니라 노아가 타고 있다가 밖으로 나온 배다. 여러 시대의 목격담과 지명에 관한 기록, 근대의 발견 보도는 방주가 아라랏에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다는 확신의 근거다.

아라랏의 목격담과 지명에 남은 기억

아라랏에 남아 있다는 방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사례는 1942년 러시아 비행사의 목격담이다. 이 증언에 따르면 배의 윗부분은 둥글고 짧은 돛대들이 있었으며, 문은 가로세로 각각 20피트였다. 전체적인 모습은 오대호에서 광석을 나르는 고래등형 운반선과 비슷했고, 아라랏산맥의 14,000피트 높이에 얼어 있었다고 한다.

1942년 러시아 비행사 목격담에 묘사된 둥근 윗부분과 짧은 돛대, 큰 문을 가진 얼음 속 배의 재구성.

그보다 앞선 기록에도 방주를 보았다는 이야기와 배가 머물렀던 장소를 뜻하는 지명이 등장한다. 마르코 폴로는 1269년에 아르메니아를 지나며 방주를 보았다고 했고, 제멜리는 1694년에 아라랏 가까이에 있는 오래된 도시와 그 이름의 뜻을 기록했다. 1883년 영국 과학자의 방주 발견 소식은 당시 《시카고 트리뷴》에 실렸다고 한다.

연도인물·자료목격담 또는 기록의 내용
1269년마르코 폴로아르메니아를 지나며 같은 방주를 보았다고 했다.
1694년제멜리의 기록아라랏에서 30마일 떨어진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소개하고, 그 이름을 ‘배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1883년영국 과학자의 발견과 《시카고 트리뷴》 보도아라랏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42년러시아 비행사의 목격담둥근 윗부분과 짧은 돛대, 가로세로 20피트의 문을 가진 배가 14,000피트 높이에 얼어 있었다고 했다.

제멜리가 소개한 도시는 아라랏에서 30마일 떨어져 있었으며, 이름에는 ‘배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방주가 있는 산기슭의 또 다른 마을은 ‘내려옴의 마을’이라고 불린다. 누군가 산에서 내려와 도착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산 아래로 이동한 일과 연결된다. 여기에 아라랏이 다섯 수역에서 같은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설명도 더해진다.

방주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시대의 목격담과 기록은 방주가 그곳에 있었다는 풍부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 그 증거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는 것과 증거 자체가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항공사진의 배 모양 지형과 현장 탐사

한 튀르키예 육군 대위는 전통적으로 아라랏으로 알려진 곳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산의 항공사진을 살피다가 배 모양의 지형을 발견했다. 길이는 약 500피트로, 미식축구장 두 개를 이어 놓은 길이에 가깝다고 묘사된다. 이 발견으로 방주 탐사에 새로운 관심이 쏠렸고, 미국 과학자 탐사대도 현장을 찾아갔다.

탐사대에 동행한 튀르키예 군인들은 방주로 추정한 지형의 일부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다. 작은 나뭇조각들은 나왔지만 큰 목재 덩어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동안의 현장 조사만으로는 어떤 결론도 입증할 수 없었다. 철저한 발굴을 시작하기 전에 러시아가 그곳을 차지하면서 방주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다른 탐사들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49년에는 은퇴한 선교사 에런 스미스 박사가 방주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3년 뒤에는 극지 탐험가가 이끄는 프랑스 탐사대가 소련 국경 근처에서 수색에 나섰지만, 방주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러시아 측이 이들을 소련의 방어시설을 엿보려는 간첩으로 몰아 쫓아냈다고 전해진다. 탐사를 막은 것은 험한 지형에서 방주를 찾아내는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 지역에 들어가 현장의 자료를 조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홍수 후 인류의 분산과 인간 진보에 대한 반대

노아는 세 아들 셈과 함과 야펫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왔다. 앞서 계산한 성경 연대기를 따르면 이때는 기원전 약 2342년 또는 2341년이다. 이들로부터 홍수 이후 인종들의 역사가 시작되고, 인류가 온 땅으로 퍼져 나간다. 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기본 인종으로 나뉜 인류는 대체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쳐 정착한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상대적 위치와 세 대륙 사이에 놓인 이스라엘의 위치를 보여 주는 현대 지도다.

세속 역사서가 이러한 인류의 기원과 분산을 크게 부정하는 까닭은 인간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에 있다. 자신이 계속 발전한다고 믿고 싶은 사람에게, 인간은 오히려 점점 더 악해진다는 성경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경을 거부하고 그 판단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홍수 후 인류의 역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세 갈래로 나뉘어 대체로 세 대륙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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