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이후의 민족들에서 이방인들의 때까지: 히브리 역사와 성경 연대
홍수 이후 땅에 퍼져 나간 여러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내셨을까? 창세기의 민족 계보에서 시작되는 히브리 역사는 한 가족의 이동을 넘어 땅과 후손과 왕권에 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진 약속은 그의 후손뿐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받을 복을 담고 있었다.
그 약속을 받은 가족은 이집트에서 한 민족으로 자랐고, 종살이와 출애굽, 광야의 40년을 거쳐 카나안에 들어갔다. 재판관 시대의 반복되는 배교와 구출 뒤에는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땅을 차지하고 성전을 세운 것으로 역사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왕국의 분열과 부패는 바빌론 포로로 이어졌고,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진 왕관은 이방 통치자에게 넘어갔다. 약속받은 땅과 그 땅을 다스리는 왕권이 이 긴 역사를 관통한다.
이 과정을 시간 위에 놓으려면 사건이 일어난 때와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때부터 구별해야 한다. 창세기가 성경의 첫 책이라는 사실과 어느 책이 가장 먼저 기록되었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족장들의 생애, 출애굽, 카나안 정복, 성전 봉헌의 연대를 비교하는 일도 단순히 숫자를 고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 사건을 주변 문명의 역사와 어디에서 만나게 할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에서 ‘이방인들의 때’까지 왕권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지가 여기에 걸려 있다.
홍수 이후의 민족 계보: 함과 셈의 후손
홍수 이후의 민족사는 방주가 땅에 닿고 노아와 세 아들이 밖으로 나오는 데서 시작한다. 여기서 다루는 연대는 기원전 2342년 또는 2343년까지의 역사에 이어지며, 홍수 직후는 기원전 2343년 또는 2344년 무렵으로 잡는다. 창세기 10~11장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과 연대, 거주 지역을 따라가면 노아의 후손들이 여러 민족으로 갈라져 나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창세기 10:1 이것이 노아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펫의 후대라. 홍수 후에 그들에게 아들들이 태어났으니,
노아의 세 아들을 인종과 연결하는 설명에서는 함의 후손을 아프리카계, 셈의 후손을 아시아계, 야펫의 후손을 백인·유럽계로 나눈다. 먼저 함과 셈의 계통을 식별하고, 남는 유럽계 집단을 야펫에게 배정한다. 카인의 표를 피부색으로 보고 그 색이 방주를 거쳐 전해졌다는 생각도 여기에 전제되어 있으며, 함의 아들들은 모두 흑인이었다고 단정한다.
창세기 10:6 ○ 함의 아들들은 쿠스와 미스라임과 풋과 카나안이요 ,
함의 아들들은 쿠스, 미스라임, 풋, 카나안이다. 쿠스는 에디오피아, 미스라임은 이집트, 풋은 리비아를 뜻하는 히브리어 이름으로 풀이한다. 함의 후손을 아프리카와 연결하는 근거는 이러한 이름의 대응뿐만이 아니다. 시편에 나오는 ‘함의 땅’이라는 표현도 아프리카를 가리키는 말로 적용한다.
시편 106:21 그들이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들을 하셨던 그들의 구주 하나님을 잊었으니
시편 106:22 그는 함의 땅에서는 경이로운 일들을, 홍해에서는 무서운 일들을 행하신 분이라.
시편 106편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언급한 뒤, 함의 땅에서 행하신 경이로운 일들과 홍해에서 행하신 무서운 일들을 나란히 기록한다. 앞 절의 이집트를 뒤 절의 함의 땅과 연결하여 읽는 것이 함의 후손을 아프리카에 배정하는 또 하나의 근거다.

현대 지도에서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동부에, 이집트와 리비아는 지중해 남쪽에 위치한다.
창세기 10:21 ○ 셈은 모든 에벨 자손의 조상이요, 형 야펫의 동생이라. 그에게서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계통은 창세기 10장 21절부터 이어지는 족보에서 찾는다. 셈의 후손은 아시아인으로 분류하며, 함의 후손을 식별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대응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조상이며, 그 계보는 그리스도께로 이어진다.
야펫의 후손과 유럽의 민족·지명
함을 아프리카계, 셈을 아시아계와 연결하고 나면 백인 또는 유럽인이라는 분류가 남는다. 이들을 야펫의 후손으로 식별할 때에는 창세기 10장 1~5절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들을 유럽의 민족·지명과 대조한다.
창세기 10:2 야펫의 아들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투발과 메섹과 티라스요,
창세기 10:3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크나스와 리팟과 토갈마요,
창세기 10:4 야완의 아들들은 엘리샤와 타시스와 킷팀과 도다님이라.
창세기 10:5 이들에 의하여 이방의 섬들이 그들의 영토에서 나뉘었으니, 즉 각자 그 방언에 따라, 그들의 족속에 따라, 그들의 민족들에 따라 나뉘었더라.
야펫 계통의 인물들을 모두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이름의 대응 관계에는 유보가 붙는다. 다만 이름이 세월에 따라 조금 달라졌어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족보의 이름과 후대의 지명을 연결한다. 각 이름을 어느 지역이나 도시와 연결하는지, 그 대응을 얼마나 확실하게 보는지는 다음과 같다.
| 족보의 이름 | 연결하는 지역·도시 | 설명에 담긴 확신의 정도 |
|---|---|---|
| 야완 | 그리스 | 모든 주석가가 동의한다고 설명한다. |
| 타시스 | 스페인 | 아마 스페인일 것으로 본다. |
| 투발 | 토볼스크 | 두 이름을 직접 연결한다. |
| 메섹 | 모스크바 | 두 이름을 직접 연결한다. |
| 고멜 | 독일 | 흔히 그렇게 식별한다고 설명한다. |
야펫이라는 이름 자체도 밝거나 옅은 색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여 백인과 연결한다. 야펫에게서 나온 민족으로는 켈트족, 슬라브족, 반달족, 갈리아족, 색슨족, 롬바르드족, 프랑크족, 스키타이족, 프리기아족, 피시디아족, 킴브리족, 노르만족, 앵글족, 트라키아족을 열거한다. 이들은 오늘날 유럽인으로 불리는 집단의 선조로 묶인다.
고대 민족과 오늘날의 국가·국민 사이에서도 같은 계통을 찾는다. 앵글족은 잉글랜드와 잉글랜드인으로, 갈리아족은 프랑스인으로, 튜턴족은 독일인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노르웨이인, 스웨덴인,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도 이 유럽계 범주에 포함된다.
노아의 예언과 세 아들의 후손
함을 아프리카계, 셈을 아시아계, 야펫을 유럽계 민족의 조상으로 보는 해석은 창세기 9장의 노아의 예언을 각 집단의 역사에도 적용한다. 함의 후손에게는 종속을, 셈의 후손에게는 종교와 성경의 계보를, 야펫의 후손에게는 세계적인 팽창과 통치를 연결하며, 이 예언들이 모두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단정한다.

창세기 9:25 말하기를 “카나안은 저주를 받으리니,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될지어다.” 하고,
이때 카나안이 형제들에게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예언은 카나안만이 아니라 함의 후손 전체에 적용된다. 그 적용에 따라 함의 모든 후손이 종들의 종이 되었고, 그 상태가 발언 당시까지도 계속되었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9:26 또 그가 말하기를 “셈의 주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셈에 관한 축복에서는 “셈의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종교의 기원, 성경의 기록자, 그리스도의 혈통을 잇는 근거가 된다. 모든 종교가 셈에게서 나왔고, 성경의 모든 책을 셈의 후손이 썼으며, 그리스도께서도 셈의 계통에서 나오셨다는 것이다. 셈의 후손에게 부여된 역할은 한 지역에 정착해 민족을 이룬 데 그치지 않고 종교와 성경, 그리스도의 계보에까지 걸쳐 있다.
창세기 9:27 하나님께서 야펫을 증대케 하시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요,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더라.
야펫을 증대케 하신다는 말씀은 유럽인의 세계적 팽창과 지배에 적용된다. 그 성취에 관한 주장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유럽인의 통치를 받으며, 유럽인들이 모든 나라를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따라서 유럽인의 팽창은 단순한 민족 이동이 아니라 노아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후손들의 피부색에는 대기 조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셈의 후손이 아메리카로 건너갈 수 있었던 시간
셈의 후손을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으로 보는 데에는 홍수 이후 주어진 긴 시간이 근거가 된다. 홍수 이후의 출발점을 기원전 약 2343년으로 잡으면, 노아의 후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까지 땅에 인구를 늘릴 시간이 2300여 년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까지로 넓히면 그 기간은 3000년을 넘는다. 아메리카로 이동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며, 실제로 그 이동이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비교 대상은 1492년 이후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와 인구 증가다. 1492년에는 오늘날 미국에 해당하는 땅에 유럽인이 한 명도 없었으나, 500년도 지나지 않은 1964년에는 그 수가 2500만 명을 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에 비해 셈의 후손들에게는 콜럼버스가 오기 전에 아메리카로 건너갈 시간이 여섯 배나 있었다. 메이플라워호와 산타마리아호의 6분의 1 속도로 이동했더라도,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원주민이 2500만 명에 이를 수 있었다는 계산이다. 이 비교에서 근거로 삼는 것은 특정 항해 기술이나 이동 경로가 아니라 이동과 인구 증가에 사용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셈의 후손으로 묶이는 집단은 아메리카뿐 아니라 태평양의 여러 섬에도 걸쳐 있다. 아즈텍족, 잉카족, 마야족과 함께 마셜 제도 주민, 폴리네시아인, 마오리족, 사모아인, 하와이인이 포함된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코만치족, 치페와족, 체로키족, 쇼쇼니족, 포니족, 수족, 모히칸족, 블랙풋족, 세미놀족, 나바호족, 아파치족, 알곤킨족, 모호크족, 크로족, 크리크족을 같은 계통으로 열거한다.
이후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차지한 역사에는 야펫의 증대뿐 아니라 그가 거할 곳에 관한 예언도 적용된다.
창세기 9:27 하나님께서 야펫을 증대케 하시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요, 카나안은 그의 종이 되리라.” 하더라.
여기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은 셈의 장막에, 그 땅을 차지한 유럽인은 야펫의 후손에 대응한다. 앞서 야펫의 증대를 유럽인의 세계적 팽창과 연결했다면,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누구의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원주민의 이주와 뒤이은 유럽인의 진출은 이렇게 노아의 두 아들에게서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로 읽힌다.
바벨에서 언어가 나뉘고 사람들이 흩어지다
홍수 이후 사람들이 온 땅으로 흩어지는 또 하나의 분기점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다. 그 시기는 아담 이후 약 1700년 또는 1800년 무렵으로 잡는다. 기원전 약 2281년이라는 세밀한 연대도 있지만, 연도를 그만큼 좁혀 확정할 필요는 없다. 큰 틀에서는 아담 이후 약 1800년, 그리스도 이전 약 220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다룬다.

바벨에서 온 세상이 한데 모인 모습은 종교적 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빗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곳에 계속 모여 있도록 두지 않으시고 내려오셔서 언어를 혼란시키고 흩으셨다.
창세기 11:7 가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8 주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온 지면에다 멀리 흩으시니, 그들이 도성을 짓는 것을 그쳤더라.
사람들이 함께 도성을 건설하려면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하나의 언어로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건설도 중단되었고, 한곳에 모여 있던 무리는 온 지면으로 흩어졌다. 세계의 여러 언어는 이때 하나였던 언어가 갈라지면서 생겨났으며, 그 수는 3000개를 넘는다.
이때 함의 후손들은 한쪽으로, 셈의 후손들은 다른 쪽으로, 야펫의 후손들은 또 다른 쪽으로 이동한 듯하다. 언어가 나뉘면서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나온 후손들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의 언어에서 갈라진 여러 언어 계통
바벨 이후의 언어 분화를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는 언어들에 연결하면,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는 셈어파에, 북아프리카와 사하라의 여러 언어는 함어계에 놓인다. 소말릴란드와 동아프리카의 언어, 고대 이집트에서 이어지는 콥트어도 이 분류에 포함된다. 언어의 계통과 지역, 사용 규모는 다음과 같이 묶인다.
| 계통 또는 지역 | 언급된 언어 | 함께 제시된 정보 |
|---|---|---|
| 셈어파 | 암하라어 | 에티오피아의 공용어 |
| 함어계, 북아프리카·사하라 | 리비코베르베르어, 카빌어, 실흐어, 투아레그어 | 사용자 1억 명, 구어 방언 46개라는 규모가 함께 언급된다. |
| 소말릴란드·동아프리카 | 쿠시어계, 갈라어 | 각각 소말릴란드와 동아프리카에 연결된다. |
| 고대 이집트 | 콥트어 | 고대 이집트에서 이어지는 언어로 언급된다. |
| 우랄알타이계로 묶인 언어들 | 핀란드어, 헝가리어, 튀르키예어, 에스토니아어, 라프어, 퉁구스어, 만주어, 키르기스어 | 타타르인과 투르크멘인이 함께 거론되며, 방언 90개와 사용자 6000만 명이라는 규모가 제시된다. |
우랄알타이계로 묶인 언어들은 유럽의 핀란드어·헝가리어·에스토니아어·라프어에서 튀르키예어·퉁구스어·만주어·키르기스어까지 넓게 퍼져 있다. 여기에 일본어도 언급된다. 이처럼 멀리 떨어진 지역의 언어와 민족들을 하나의 출발점에 연결하는 것이 바벨에서의 언어 분화다.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수치로는 한국어 사용자 1억 3천만 명, 중국·티베트어군의 방언 115개와 사용자 6억 명, 인도에서 사용하는 드라비다계 방언의 사용자 1억 명이 제시된다. 중국·티베트어군에는 베트남어와 안남어, 태국과 버마가 함께 거론되며, 그 밖의 언어도 2,796개에 이른다. 이처럼 수많은 언어로 나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철저히 갈라놓으셔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시날에서 시작된 왕국과 이방인의 수 10
종교와 교회를 하나로 묶으려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출발점은 시날의 바벨, 곧 바빌론이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모여 살았던 장소와 최초의 이방 왕국이 시작된 장소가 모두 시날이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 맞닿는다.

창세기 11:2 그들이 동쪽으로부터 이동하여 시날 땅에서 평원을 만나니 거기에서 거하였더라.
창세기 10:10 그의 왕국의 시작은 시날 땅에 있는 바벨과 에렉과 악캇과 칼네에서였으며,
창세기 11장 2절의 시날 평원은 동쪽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며, 창세기 10장 10절의 시날은 바벨과 에렉과 악캇과 칼네에서 왕국이 시작된 땅이다. 여러 집단을 한곳에 모으려는 움직임은 그들을 흩으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대조된다. 훗날의 종교 통합 운동도 바벨에서 시작된 이 집결을 잇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방 왕국의 시작에는 숫자 10이 거듭 나타난다. 노아는 아담부터 열 번째 인물이고, 노아의 후손을 다루는 창세기 10장의 10절에는 최초의 이방 왕국이 등장한다. 그 마지막 모습 역시 다니엘 2장의 열 발가락과 연결된다.
다니엘 2:41 그 일부는 토기장이의 진흙이며 일부는 철인 발과 발가락을 왕께서 보셨으니 그 왕국이 나뉘어질 것이며, 왕께서 철과 차진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으니 그 왕국에는 철의 강함이 있을 것이니이다.
다니엘 2:42 또한 그 발가락의 일부는 철이요 일부는 진흙이므로 그 왕국이 부분적으로 튼튼하고 부분적으로 부서질 것이니이다.
철과 진흙이 섞인 발과 발가락은 철의 강함을 지니면서도 일부는 부서지는, 나뉜 왕국을 나타낸다. 열 발가락은 마지막 때 열 왕으로 이루어진 연합 왕국에 해당한다. 최초의 이방 왕국에서 마지막 이방 왕국까지 숫자 10이 반복되므로, 10을 ‘이방인의 수’로 설명한다.
니므롯의 왕국과 노아의 세 아들에게 정해진 경계
시날에서 시작된 니므롯의 왕국은 종교 통합뿐 아니라 인종 통합을 비판하는 근거로도 사용된다. 함의 손자인 니므롯을 흑인으로 규정하고, 그가 세운 왕국을 인종과 종교를 하나로 모으려는 운동의 출발점으로 지목하는 해석이다. 이때 계보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6절과 8절이다.
창세기 10:6 ○ 함의 아들들은 쿠스와 미스라임과 풋과 카나안이요 ,
창세기 10:8 쿠스가 또 님롯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힘센 자가 되었더라.
함의 아들이 쿠스이고 쿠스의 아들이 니므롯이므로, 니므롯은 함의 손자다. 창세기 10장 10절에 기록된 그의 왕국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캇과 칼네에서 시작되었다. 이 계보를 인종 분리와 연결하는 데에는 노아의 세 아들과 그 후손이 각각 정해진 대륙으로 가야 했다는 전제가 놓여 있다.
| 노아의 아들 | 가야 할 곳으로 제시되는 지역 |
|---|---|
| 야벳 | 유럽 |
| 셈 | 아시아 |
| 함 | 아프리카 |
이 전제에 따르면 함의 후손인 니므롯이 있어야 할 곳은 아프리카였다. 그런데 그는 동쪽의 바빌론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정해진 경계를 거의 300마일이나 벗어났다. 따라서 니므롯의 시날 정착은 단순히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 일이 아니라, 정해진 영역을 넘어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려 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아프리카와 유럽, 서아시아의 상대적인 위치를 보여 주는 지도다. 동지중해 연안에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표시되어 있다.
니므롯의 집결을 현대의 통합 운동에 빗대는 비판에는 에큐메니컬 협의회, 전국교회협의회, 전국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가 등장한다. 니므롯이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아우르는 이런 조직을 시작하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현대의 종교적 연합과 인종 통합을 바벨의 집결에 겹쳐 놓는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 결집을 해체하고 사람들을 분리해 흩으신 일은 이러한 통합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으로 제시된다.
민족의 경계를 현대의 인종 분리에 적용하는 해석
바벨의 분산을 인종 분리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은 “하나님은 인종 분리주의자이십니다”라는 단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근거로 함께 드는 본문은 신명기 32장 7~8절과 사도행전 17장 25~26절이다. 두 본문을 잇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나누시고 그들이 거주할 경계를 정하셨다는 말씀이다.

신명기 32:7 ○ 옛날들을 기억하고 많은 세대의 연수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어 보면 그가 네게 보여 줄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이 네게 말해 주리라.
신명기 32:8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민족들을 그들의 유업으로 나누셨을 때, 그분께서 아담의 아들들을 분리시키셨을 때,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따라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으니,
신명기 32장 7절은 옛날과 여러 세대의 역사를 기억하고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한다. 이어지는 8절에서 인종 분리의 근거로 붙드는 말은 ‘분리시키셨을 때’와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으니’다. 민족들에게 유업을 나누어 주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따라 경계를 정하신 일을 하나님의 의도적인 분리로 읽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함의 후손이 자신에게 정해진 영역을 넘어갔다는 앞선 해석에 적용된다.
사도행전 17:25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
사도행전 17:26 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시어 온 지면에 살게 하시고 미리 계획하신 시기와 그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정하셨으니
사도행전에서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피로 만드셨다는 말씀과,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 경계를 정하셨다는 말씀이 함께 나온다. 여기서 인종 분리의 근거로 삼는 부분은 거주 경계를 정하셨다는 대목이다. 민족의 거주지를 정하시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들어, 함이 정해진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흩으셨다는 설명을 뒷받침한다.
이 적용은 고대 바벨에 머물지 않고 현대의 인종 통합 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된다. 함이 인종들을 통합하고 경계를 벗어나려 한 일을 역사 초기의 중대한 사건으로 제시하며, 인종 분리를 마틴 루터 킹이 태어나기 거의 4천 년 전에 성경에 계시된 역사적 진리라고 단언하는 입장이다. 또한 이를 성경의 위대한 진리 가운데 하나로 꼽아 피의 속죄, 부활, 처녀 탄생과 나란히 놓는다. 민족의 경계를 정하신 말씀을 현대의 인종 통합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함 계통의 팔레스타인 정착도 같은 경계 문제로 다룬다. 함이 아프리카의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서쪽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그곳을 필리스티아라고 불렀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연결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 14절이다.
창세기 10:14 팟루심과 카슬루힘(필리스티아는 카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과 캅토림을 낳았더라.
카슬루힘에게서 필리스티아가 나왔다는 기록은 함 계통의 후손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는 근거로 사용된다. 이 땅에 누가 살고 있었는지는 훗날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나와 그곳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는 일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카나안의 후손들과 인도 종교 문헌의 등장
카나안 지역에 살던 함의 후손을 모두 멸하라는 명령이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이해하려면, 그곳에 정착한 족속들과 거주 범위를 살펴야 한다. 창세기 10장 15~19절은 카나안에게서 나온 족속들을 열거하고, 그들이 흩어져 살던 땅의 경계를 밝힌다.
창세기 10:15 ○ 카나안은 그의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창세기 10:16 또 여부스인과 아모리인과 기르가스인과 창세기 10:17 히위인과 알카인과 신인과 창세기 10:18 아르왓인과 스말인과 하맛인을 낳았더라. 그후에 카나안인의 족속들이 멀리 흩어졌더라. 창세기 10:19 카나안인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에 이르는 길로 가자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에 가는 길로 라사까지였더라.
카나안인의 경계는 시돈에서 그랄을 거쳐 가자에 이르는 지역뿐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에 이르는 지역까지 포함한다. 훗날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곤경에 빠지는 사건도 이 범위 안에서 일어난다.
홍수 이후의 연대를 기원전 2281년, 2217년, 2156년을 거쳐 따라가면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이른다. 이 시기에 인도에서는 브라만 문명과 관련된 산스크리트 문헌, 특히 베다와 푸라나가 등장한다. 인도의 힌두 문명 자체의 시작은 그보다 앞선 기원전 2500년경으로 잡는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인도의 상대적인 위치를 보여 주는 현대 지도다.
베다 종교는 정령 신앙이며, 그 시작은 리그베다의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 집성은 기원전 800년에야 완성되지만, 그 내용은 훨씬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문헌이 최종적으로 모인 시기와 종교적 전승이 시작된 시기는 구별해야 한다. 늦게 집성되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전승까지 그때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니다.
힌두교 또는 브라만교로 불리는 이 종교 체계는 크샤트리아 등을 포함한 여러 집단의 글을 통해 전해졌다. 그 문헌에는 베다, 푸라나, 샤스트라가 있으며, 우파니샤드는 특히 성스러운 책으로 꼽힌다. 이들 문헌에 대한 비판은 구약을 모방한 종교 문헌이라는 데 있다.
사건이 일어난 때와 성경이 기록된 때
창세기 11장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로 나아갈 때에는 사건 발생 시기와 기록 시기를 구별해야 한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아직 기록된 성경이 없었다. 오늘날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으므로, 사건 당시에도 지금 읽는 본문이 이미 존재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창세기 1~12장이 그 시대를 다룬다고 해서 그때 이미 창세기 1~12장이 쓰여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은 아담이나 에녹, 노아나 아브라함이 아니다. 이들이 겪은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때보다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기록되었다. 따라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 구별할 시기 | 뜻 | 창세기에 적용하면 |
|---|---|---|
| 사건 발생 시기 | 인물들이 살고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때 | 아담,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이 살던 시대다. |
| 기록 시기 | 지난 사건을 책으로 기록한 때 | 사건이 일어난 뒤 수백 년이 지나 기록되었으며, 사건 속 인물들이 창세기를 쓴 것은 아니다. |
사건과 기록의 시기를 구별하는 문제는 안식일을 영원히 지켜야 할 의무로 받아들이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에 대한 비판에도 연결된다. 비판의 초점은 창세기 2장 1~4절에 안식일이 나온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 의무를 설명하면서, 창조 때의 사건과 그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때를 혼동한다는 데 있다.
창세기 2:1 그리하여 하늘들과 땅이 완성되었고, 하늘들의 모든 군상들도 그러하니라. 창세기 2:2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시던 자신의 일을 끝내시고 자신이 만드시던 자신의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시니라. 창세기 2:3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으신 그의 모든 일로부터 쉬셨음이라. 창세기 2:4 ○ 하늘들과 땅이 창조되었을 때 그것들의 내력이 이러하니라. 그 날에 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들을 지으셨으니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사건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이미 이 구절들이 기록된 성경으로 존재했느냐가 쟁점이다. 창세기 2장의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에는 세상 어디에도 종이 한 장에 성경 한 구절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최초의 성경 책이 기록되는 때는 기원전 1500년 가까이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기원전 2000년 무렵을 살던 사람들이 이미 기록된 창세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창세기의 사건이 먼저지만 욥기의 기록이 먼저다
기록 시기를 구별하면 성경의 책들이 놓인 순서도 달리 보인다. 창세기가 다루는 역사는 아담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의 사건들로 설명되지만, 기원전 1500년경에 기록된 최초의 성경 책은 창세기가 아니라 욥기다. 성경의 맨 앞에 놓인 책이 반드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은 아니다.

창세기의 사건들은 욥기의 사건들보다 먼저 일어났지만, 책으로는 욥기가 창세기보다 먼저 기록되었다. 역사 연대표에는 인물과 사건의 연대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시기도 별도로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일어난 때와 그 사건을 나중에 기록한 때를 같은 시점에 놓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카나안 땅
아브라함과 관련된 사건들은 기원전 2000~1900년 무렵에 해당한다. 성경의 초기 책들이 기록되기 시작한 시기로 제시되는 기원전 1500~1200년보다 앞선 때다. 앞서 구별한 사건이 일어난 때와 성경이 기록된 때의 차이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 나중에 쓰였다고 해서 그가 살았던 시대까지 기록 시점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다. 그 출발지는 에덴 동산과 바벨탑이 있던 지역으로 설명된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야 했다.
창세기 12:1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는데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려면 고향뿐 아니라 친족과 아버지의 집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여정은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만큼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중요하다. 창세기 12장 5~6절에는 그와 함께 이동한 사람들과 소유, 목적지인 카나안 땅에 들어간 사실, 그리고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창세기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그의 형제의 아들 롯과 하란에서 그들이 모은 모든 소유와 그들이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카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카나안 땅으로 들어왔더라.
창세기 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켐 땅 모레의 평지에 이르니, 그때에 카나안인들이 그 땅에 있더라.
카나안인들을 흑인과 동일시하는 해석에 따르면, 이들은 니므롯 아래에서 그 땅을 강탈한 뒤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고 팔레스타인에 머물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목적도 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그들을 지배하게 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카나안인들이 이미 그 땅에 있었다는 창세기의 기록을 니므롯 아래에서 이루어진 민족 이동과 토지 점유에 연결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이동
아브라함의 여정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뿐 아니라 이동 방향도 중요하다. 성경과 역사에 적용되는 법칙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이동의 90%가 좋은 이동이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이동의 90%가 나쁜 이동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성경 사건들에서 같은 방향의 이동이 비슷한 의미를 띠고 거듭 나타난다. 사건들을 인위적으로 맞추지 않아도 방향과 의미가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기묘한 일치다.

| 방향 | 제시되는 의미 | 해당 사례 |
|---|---|---|
| 동쪽에서 서쪽으로 | 이동의 90%가 좋은 이동 |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나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감, 야곱이 벧엘로 돌아옴, 바울이 복음을 전함 |
| 서쪽에서 동쪽으로 | 이동의 90%가 나쁜 이동 | 아담과 이브가 쫓겨남, 카인이 주의 면전에서 쫓겨남, 야곱이 믿음에서 후퇴함,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감 |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왔고, 유대인들도 같은 방향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는 길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길도 서쪽을 향한다. 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이동에는 쫓겨남과 믿음의 후퇴, 포로 생활이 나타난다. 특히 같은 인물이나 민족의 이동을 비교하면 대조가 뚜렷해진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올 때와 믿음에서 후퇴할 때는 방향이 서로 반대다.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와 포로로 끌려갈 때도 마찬가지다. 이동 방향은 이처럼 그들이 처한 상황의 차이와 함께 읽힌다.
이 법칙을 나폴레옹과 아돌프 히틀러에게 적용하면, 두 사람이 이 역사적 진리를 알았더라면 역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게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비판에 이른다. 두 사람 모두 1611년 킹제임스 흠정역을 접할 수 있었으면서도, 자기 목숨을 지키거나 자기 나라의 패망을 막을 만큼도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동 방향을 이토록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실수하지 않으시며, 성령께서 기록하실 때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신다는 확신에 있다. 따라서 성경에 남은 이동 방향도 무심히 지나칠 세부 사항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기록이다.
아브라함의 연대와 기원전·서기의 대응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0년 무렵으로 잡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출생 연대도 계산에 따라 다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연대 계산과 어셔의 연대기에 따른 값으로는 기원전 2009년경이 제시되지만, 여기서 채택하는 출생 연대는 기원전 1996년이다. 해리 리머는 이보다 앞선 기원전 2086년으로 계산한다.
| 출생 연대의 근거 또는 선택 | 아브라함의 출생 연대 |
|---|---|
| 가장 신뢰할 만한 연대 계산과 어셔의 연대기로 소개된 값 | 기원전 2009년경 |
| 강의에서 채택한 값 | 기원전 1996년 |
| 해리 리머의 계산 | 기원전 2086년 |
이처럼 출생 연대에는 차이가 있지만, 주목할 점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적용한 기원전 연도와 후손들이 살아가는 서기 연도에 같은 숫자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기원전 2000년경에 태어났다고 놓고 계산하면, 하란의 죽음은 기원전 1996~1992년 무렵에 놓인다. 이어 아브라함은 기원전 1921년에 첫발을 내딛고, 기원전 1917년에 목적지인 팔레스타인에 도착한다.
이 연대의 대응을 이해하려면 먼저 B.C.와 A.D.의 뜻을 알아야 한다. B.C.는 ‘그리스도 이전’을 뜻하는 영어 Before Christ의 약자다. A.D.는 그리스도 이후의 연도를 표시하는 데 쓰이지만, 약자 자체가 ‘그리스도 이후’를 뜻하지는 않는다. 라틴어 Anno Domini, 곧 ‘우리 주님의 해’라는 뜻이다. ‘안노’는 영어 annual과 연결하면 ‘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도미니’와 합쳐 ‘우리 주님의 해’가 된다. 그리스도 이후의 시기를 가리킨다는 용법과 약자의 본래 뜻은 서로 다르다.
아브라함의 팔레스타인 도착과 후손들의 귀환
아브라함의 팔레스타인 도착을 기원전 1917년으로 놓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서기 1917년과 1918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일과 연도 숫자가 맞물린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유업으로 받도록 부르심을 받아 들어간 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약 1917년 전이고, 후손들이 다시 그 땅으로 들어간 때는 그리스도 이후 1917년이다. 같은 땅을 향한 조상과 후손의 이동에, 기원전과 서기를 사이에 두고 같은 연도 숫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에서 아라비아로 이어지는 계보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 땅을 돌아다니며 큰 시련과 믿음의 시험을 겪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시험받는 동안, 가정에서는 아내 사라와 이집트 여인 하갈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났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족사뿐 아니라 아라비아인의 계보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창세기 16장 7~11절에는 사래를 피해 도망하던 하갈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돌아가라고 명하면서, 태어날 아들의 이름과 후손에 관한 약속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창세기 16:7 ○ 주의 천사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로 가는 길에 있는 샘 곁에서 그녀를 만나
창세기 16:8 말하기를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니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내 여주인 사래의 면전에서 도망하나이다.” 하더라.
창세기 16:9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손 아래서 복종하라.” 하고
창세기 16:10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 씨를 심히 번성케 하리니,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되리라.” 하더라.
창세기 16:11 또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가 아이를 가졌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주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에는 주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브라함 집안의 갈등으로 광야까지 도망한 하갈에게 돌아가 복종하라는 명령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 아들에게서 나올 후손이 셀 수 없이 번성하리라는 약속도 주어졌다. 이스마엘의 출생 이야기가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 민족의 계보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하갈과 아라비아의 관계는 갈라디아서 4장 25절에서도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4:25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니 지금의 예루살렘과 같아서 그녀는 자기의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나
하갈을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과 연결하는 이 구절을 창세기의 출생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하갈과 이스마엘에서 아라비아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볼 수 있다. 이 계보에서 서기 570년의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70대 후손으로 놓인다. 아라비아와의 연관성은 혈통뿐 아니라 종교적 복장과 표장에도 적용된다. 프리메이슨의 복장과 표장, 상징들 역시 아라비아 계통으로 설명된다.
12인치 연대표로 보는 성경 역사의 비율
성경의 사건들이 시간상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살피는 한 가지 방법은 길이가 정확히 1피트, 곧 12인치인 종이에 같은 길이의 자를 놓고 연대표를 그리는 것이다. 먼저 6인치 지점에 갈보리를 표시하면, 앞쪽 6인치에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 약 4,000년에 걸친 구약의 역사를 배치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그 중간인 3인치 지점에 놓인다.
갈보리 뒤에는 성도들의 휴거, 그리스도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을 차례로 표시한다. 휴거는 그리스도의 몸이 들려 올라가는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구분하여 서로 다른 눈금에 놓는다.
| 눈금 위치 | 배치할 사건·인물 | 구분할 내용 |
|---|---|---|
| 3인치 | 아브라함 |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의 약 4,000년 가운데 중간 지점 |
| 6인치 | 갈보리 | 앞쪽 6인치에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의 구약 역사를 배치 |
| 9인치 | 성도들의 휴거 | 그리스도의 몸이 들려 올라가는 사건 |
| 10인치 | 그리스도의 재림 | 휴거 다음의 별도 위치에 배치하는 그리스도의 오심 |
| 12인치 | 새 하늘과 새 땅 | 연대표의 마지막 눈금에 배치 |
연대표를 그릴 때 주목할 점은 시간의 길이와 성경의 기록 분량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전반부인 기원전 4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까지 약 2,000년은 단 12장에 담겨 있지만, 그다음 성경의 38권은 나머지 2,000년을 다룬다. 아브라함을 3인치에, 갈보리를 6인치에 놓으면 두 구간의 시간은 같아도 기록 분량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의 분량만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의 비율을 이렇게 살필 수 있다.
홍수는 약 2.5인치 지점에 놓인다. 그 뒤 3인치에 놓인 아브라함부터 6인치의 갈보리까지가 이후 역사를 살펴볼 구간이다. 이 구간의 출발점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있으며, 족장들의 가족사를 거쳐 요셉과 이집트 이주로 이어진다. 연대표에서는 가까이 붙어 있는 사건들이지만, 그 사이에 실제로 흐른 세월은 짧지 않다.
족장들의 혼인과 친족 선택
족장들의 혼인 상대를 인종과 연결하는 해석에서는 카나안인들을 흑인으로 규정한다. 롯과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가족사도 인종 간 혼인과 인종 통합의 문제로 다룬다. 롯은 카나안인들과 얽혀 곤경에 빠졌으며, 모압인과 암몬인의 조상이 된 그의 두 아들은 혼혈이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연결되는 창세기 19장의 기록은 롯의 두 딸이 각각 모압과 벤암미를 낳았다는 내용이다.


창세기 19:37 첫딸이 아들을 낳아서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불렀더라. 그가 모압인의 조상이요, 오늘까지 이르니라.
창세기 19:38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벤암미라 불렀으니, 그가 암몬 자손의 조상이요, 오늘까지 이르니라.
모압과 벤암미에게서 각각 모압인과 암몬 자손이 나왔다. 롯의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이 두 민족의 기원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부를 메소포타미아에서 구하게 한 일에도 같은 인종적 의미를 부여한다. 창세기 24장에서 함의 후손이 아니라 셈의 후손을 배우자로 선택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흑인과 혼인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때 신부를 구한 장소는 단순히 거주지를 알려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느 계통의 사람을 혼인 상대로 택했는지가 중요해진다.
에서는 이삭과 달리 힛인 여자들을 아내로 맞았다. 창세기 26장에 따르면, 에서는 사십 세에 힛인 브에리의 딸 유딧과 힛인 엘론의 딸 바스맛과 혼인했다. 두 아내는 이삭과 리브카에게 마음의 근심이 되었다.
창세기 26:34 ○ 에서가 사십 세에 힛인 브에리의 딸 유딧과, 힛인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얻었으니,
창세기 26:35 그들이 이삭과 리브카에게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앞서 카나안인들을 흑인으로 규정한 설명은 에서의 혼인에도 적용된다. 에서 역시 흑인과 혼인하여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에서의 아내들이 속한 힛인과 그들의 땅을 살피는 데에는 여호수아 1장 4절과 창세기 23장 10절이 함께 쓰인다.
여호수아 1:4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힛인의 온 땅과 해 지는 편 큰 바다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지경이 되리라.
창세기 23:10 에프론이 헷의 자손들 사이에 거하였는데 힛인 에프론은 헷의 자손들, 즉 그의 성읍 문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여호수아 1장 4절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지경 안에 힛인의 온 땅을 포함한다. 창세기 23장 10절에는 헷의 자손들 사이에 살던 힛인 에프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 구절은 각각 땅의 범위와 그곳에 속한 사람을 통해 힛인을 짚어 주며, 에서의 혼인을 인종 통합과 연결하는 설명을 뒷받침하는 본문으로 사용된다.
야곱에게는 카나안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얻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이삭은 야곱을 외조부 브두엘의 집으로 보내어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게 한다.
창세기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카나안의 딸들에서 아내를 얻지 말지니,
창세기 28:2 일어나서 파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서 네 어머니의 오라비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얻으라.
이삭이 야곱을 친족에게 보낸 일에도 흑인 아내를 맞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는 인종적 해석이 적용된다. 야곱은 그 지시에 따라 친족에게 가서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는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배우자를 메소포타미아에서 구하게 했듯이, 이삭도 아들의 혼인 상대를 자기 친족 가운데서 찾게 한 것이다. 라헬과 레아, 디나와 요셉의 이야기를 거치는 동안 세월이 흐른다. 요셉이 이집트 땅으로 내려갈 때는 이미 족장들의 가족사에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다.
야곱의 이집트 이주와 후손들의 400년 체류
요셉이 이집트로 내려간 뒤, 야곱도 요셉을 만나러 이집트로 이주한다. 이 연대표는 그 시점을 기원전 1689년, 대략 기원전 1689~1690년 무렵으로 잡는다. 아프리카누스의 계산은 이와 다르다. 그는 야곱이 이집트에 도착한 때를 아담 이후 2303년으로 계산하며, 이를 기원전으로 환산한 연대로는 1697년이 제시된다. 여기서 2303년은 기원전 연도가 아니라 아담을 출발점으로 삼아 센 햇수다. 야곱은 이집트에 정착한 뒤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 연대 기준 또는 기간 | 제시된 연대 | 관련 사건 |
|---|---|---|
| 연대표에서 잡은 이주 시점 | 기원전 1689~1690년 무렵 | 야곱이 요셉을 만나러 이집트로 내려감 |
| 아프리카누스의 계산 | 아담 이후 2303년 | 야곱의 이집트 도착 |
| 위 계산을 기원전으로 환산하며 제시한 연대 | 기원전 1697년 | 같은 이주 사건에 대한 다른 연대 |
| 이후의 이집트 체류 기간 | 기원전 1645년경~1245년경 | 약 400년이 흐름 |
야곱의 후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이집트에 머문다. 이후 기원전 1645년경부터 1245년경까지의 약 400년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대인들이 이집트 땅에 체류하는 기간으로 잡는다. 야곱이 요셉을 만나러 내려간 이주는 이처럼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집트에서 살아가는 역사의 시작이 된다.

이집트는 지중해 남쪽, 아프리카 북동부에 자리한다.
히브리인의 역사와 고대 문명사의 출발점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일반 역사학자들은 주변 문명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쏟고, 이집트에 있는 소수의 히브리인들에게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대상은 바로 그들이다. 주변 왕국들의 역사를 함께 살피는 동안에도 성경 역사의 중심에 있는 이 작은 무리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고대 문명사의 연대를 비교할 자료는 레너드 코트렐(Leonard Cottrell)의 『문명의 모루』(The Anvil of Civilization)다.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New American Library)에서 출판한 이 책의 저자는 평생 고대 문화와 문명을 연구한 인물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는 강들, 메소포타미아, 두 땅의 군주, 문명의 시작이 있다.
코트렐이 처음 제시하는 연대는 기원전 3000년이다. 그를 향한 비판도 이 출발점에 집중된다. 평생 고대 문명을 연구하고도 처음 내놓는 연대가 기원전 3000년이라면 킹제임스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기록된 역사는 기원전 3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시작하며, 역사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 이 범위를 벗어나 성경보다 앞선 출발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초기 종교의 기원과 홍수 무렵의 연대표 공백
코트렐은 초기 인류의 종교를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설명한다. 호주 원주민을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힘을 인간으로 여긴다고 관찰했다. 코트렐은 고고학 기록에 비추어 기원전 4000년부터 3000년 사이의 사람들도 틀림없이 같은 생각을 했다고 본다. 모든 종교가 주술과 주관적인 관점에서 생겨났다는 설명이며, 이러한 종교 기원론 역시 이 부류의 저자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생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초기 도구의 사용에 이어 코트렐은 기원전 4000년과 3000년 사이 어느 시점에 인간이 광석에서 구리를 얻는 법을 배웠다고 서술한다. 문자의 시작은 기원전 제3천년기 초, 곧 기원전 3000년경으로 잡는다. 더 먼 선사시대는 책의 범위 밖에 두고, 자신이 다룰 역사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내가 다룰 가장 이른 시점은 기원전 4000년으로 정하겠다.”
앞서 처음 제시한 기원전 3000년뿐 아니라 책의 범위를 정하는 기원전 4000년도 성경 연대와 비교할 때 중요하다. 성경과 무관하게 역사의 범위를 정하려 해도 그 출발점이 계속 성경 역사와 맞닿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 성경에 손발이 묶여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은 바로 이 연대의 일치를 겨냥한다.
코트렐의 문명사 연대를 홍수 전후로 나누어 보면, 홍수 이전 이집트에서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국들이 세워지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인들이 쐐기문자를 발명한다. 페니키아에서는 초기 여행자들 사이에 접촉이 이루어지며, 페르시아에는 기원전 4000년 이전부터 정착지가 존재한다. 여러 지역의 발전을 나란히 기록한 이 연대표에는 기원전 2300년 무렵 공백이 나타난다.
공백은 한 지역에만 있지 않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크레타, 소아시아, 그리스, 페르시아, 시리아·팔레스타인이 모두 비어 있다. 코트렐은 홍수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의 연대표에서는 홍수가 있었던 때에 여러 지역의 기록이 함께 빈다. 이를 “놀라운 우연”이라고 부르는 말은 홍수를 배제한 역사 서술조차 그 사건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아브라함 시대에서 이집트 신왕국까지
아브라함 시대에 이르면 이집트에는 중왕국의 제11왕조가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대도시 우르가 있으며, 갈대아 우르에는 제3왕조의 왕묘들이 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고 나왔다. 그의 소명은 당시 도시와 왕조들의 역사 속에 자리한다. 같은 무렵 크레타에서는 그림문자가 시작된다.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시대에 걸쳐 이집트의 제12왕조와 제13왕조가 이어지고, 그 뒤에는 목자 왕들의 시대라 불리는 힉소스 시대와 신왕국이 놓인다. 바빌론에서는 기원전 1780년에 함무라비가 통치하며, 그는 아브라함·이삭·야곱과 동시대 인물로 연결된다. 이 무렵 그리스어를 쓰는 최초의 사람들이 침입하고, 힉소스는 북쪽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온다. 이집트 왕조의 변화와 주변 지역의 사건을 같은 시간축에 놓으면 족장들의 역사가 어느 시기에 자리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시기 | 이집트 | 다른 지역의 사건과 성경 인물의 위치 |
|---|---|---|
| 아브라함 시대 | 중왕국 제11왕조 | 메소포타미아의 대도시 우르와 제3왕조 왕묘, 아브라함의 소명, 크레타의 그림문자 시작 |
| 아브라함·이삭·야곱 시대에 걸친 시기 | 제12왕조와 제13왕조 | 족장들의 역사와 주변 왕국들의 역사를 나란히 배치 |
| 기원전 1780년 | — | 바빌론에서 함무라비가 통치하며 아브라함·이삭·야곱과 동시대 인물로 연결됨 |
| 기원전 1700~1555년 | 목자 왕들의 시대인 힉소스 시대 | 힉소스가 북쪽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는 이동과 함께 다룸 |
| 기원전 1555년 | 신왕국 | 이집트 왕조사의 다음 시기로 배치 |

현대 지도에서 이집트와 시리아, 이스라엘 일대의 상대적인 위치를 볼 수 있다.
출애굽기의 ‘새 왕’과 앗시리아인 압제자
기원전 1200년 무렵의 이집트 역사에는 람세스 2세가 힛인들과 조약을 맺고, 람세스 3세가 침입자들을 물리치는 일이 놓인다. 출애굽기 1장에서 이스라엘을 압제한 왕을 이 람세스 3세로 지목하고, 그의 출신을 이집트가 아닌 앗시리아로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 출애굽기의 ‘새 왕’과 ‘우리’라는 표현, 그리고 이집트 체류와 앗시리아인의 압제를 함께 언급하는 이사야 52장 4절이 그 근거다.

출애굽기 1:8 그때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는데
출애굽기 1장 8절은 통치자를 파라오라고 부르지 않고, 이집트를 다스리게 된 ‘새 왕’이라고 부른다. 이 호칭에서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왕위 교체가 아니라 새로 권력을 잡은 인물의 출신이다. 곧 이집트인 왕의 뒤를 또 다른 이집트인이 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본래 이집트인이 아닌 인물이 일어나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는다.
출애굽기 1:9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더 강하도다.
왕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와 세력을 경계하며 사용한 ‘우리’라는 말도 그의 출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는다. 왕과 그가 자기 백성으로 부르는 집단은 그곳에서 함께 살던 이집트인들과 배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이 두 표현에서 왕을 외부 출신으로 읽는 것과 그 출신을 앗시리아로 특정하는 것은 별개의 단계다. 앗시리아를 지목하는 근거는 이사야에 나온다.
이사야 52:4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 백성이 이전에 이집트에 내려가 거기서 기거하였고, 또 앗시리아인이 까닭없이 그들을 압제하였느니라.
이사야 52장 4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내려가 기거한 일에 이어, 그들을 까닭없이 압제한 자를 앗시리아인으로 명시한다. 이집트에 머물던 이스라엘과 앗시리아인 압제자를 함께 언급하므로, 출애굽기의 새 왕을 앗시리아인으로 보는 근거가 된다. 출애굽기의 호칭과 왕의 말에서 읽어 낸 출신의 차이를 이사야의 구체적인 민족 명칭과 연결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한 왕의 정체를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세력 변화와 히브리인의 진입 연대
레너드 코트렐의 『The Anvil of Civilization』은 아시리아의 부상과 주변 지역의 변화를 나란히 보여 준다. 살만에셀과 관련된 연대는 기원전 1276년으로 잡으며, 바빌론은 아시리아의 지배 아래, 이집트는 회복기에 놓는다. 페니키아에서는 해상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바알 숭배도 함께 퍼진다. 힛 제국의 잔해는 흙과 부스러기에 묻히지만, 북부 시리아의 힛인들은 칼크미스를 거점으로 통치한다.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연대표에서는 텔 아마르나 서신에 예루살렘이 언급되는 시점을 기원전 1300년으로 잡고, 카데시 전투를 기원전 1285년에 배치한다. 히브리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카나안으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도 이 무렵으로 제시하지만, 이 진입 연대는 추측이다. 드보라, 기드온, 삼손이 활동한 이스라엘의 재판관 시대에는 기원전 1100년이라는 연대가 붙는다. 히브리인의 진입을 이처럼 배치한 문명사 연대표를 성경 사건의 연대와 비교하려면, 그보다 앞선 출애굽을 어느 해로 잡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출애굽 사건과 서로 다른 연대 계산
이스라엘 자손은 파라오의 압제 아래서도 수가 늘어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특별한 임무를 모세에게 맡기시고, 모세는 파라오에게 내려간다. 출애굽기 1~10장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모세의 소명, 이집트에 재앙이 내리는 과정을 다룬다. 마침내 12장에서 파라오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쫓으면서 그들은 이집트를 떠난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위치를 보여 주는 현대 지도다.
출애굽기 12:41 사백삼십 년의 끝, 즉 그 날이 되었을 때 주의 모든 군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더라.
출애굽기 12장 41절은 이집트에서 나온 날을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시점으로 명시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원전 몇 년에 놓을지는 연대 연구자마다 다르다.
| 연대 자료 또는 인물 | 출애굽 연대 |
|---|---|
| 해리 리머 | 기원전 1586년 |
| 불링거 | 기원전 1491년 |
| 스코필드 | 기원전 1491년 |
| 별도의 연대표 | 아담 이후 2543년, 기원전 1457년으로 환산 |
| 어셔 | 기원전 1491년 |
불링거와 스코필드는 출애굽 연대를 기원전 1491년으로 잡는 데 일치한다. 반면 별도의 연대표는 아담 이후 2543년으로 표시하므로, 다른 자료와 비교하려면 이를 기원전 연대로 환산해야 한다. 서로 다른 계산 가운데 기준으로 삼기에 가장 좋은 것은 어셔의 연대다. 어셔의 계산은 크게 빗나가지 않으므로, 어느 연대를 선택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도 기원전 1491년을 기준으로 잡는다.
출애굽 이후의 시련과 광야의 40년
이집트를 떠났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출애굽기는 그들이 겪은 고난과 성막 건립을 다루며, 레위기는 제사장 직분의 규례를 설명한다. 이집트에서 벗어난 백성에게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며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놓여 있었다.
민수기에서는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광야 생활이 길어진다. 이스라엘 자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돌아섰으며, 다시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방황해야 했다. 그들이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사건을 살피려면 민수기 13장을 보아야 한다. 출애굽 연대와 마찬가지로 이때의 연대에도 견해 차이가 있지만, 어셔의 연대는 기원전 1490년으로 잡는다. 기원전 1491년에 이집트를 떠난 뒤 1년이 지난 시점이다.
모세의 마지막 율법 전달과 여호수아의 가나안 진입
민수기 16~19장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20~23장은 발라암을 만나고 전투를 벌여 승리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어지는 신명기에서 모세는 율법을 두 번째로 전한다. 새로운 율법을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율법을 다시 들려주는 것이다.

신명기의 영어 이름인 ‘Deuteronomy’도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를 뜻하는 그리스어 ‘듀테로스’는 둘을 나타내는 영어의 ‘듀오’와 ‘듀스’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크랩스 주사위 놀이에서 듀스는 두 점짜리를 가리킨다. 둘 또는 두 번째라는 뜻에 율법이라는 뜻을 연결하면, 신명기가 율법을 반복하여 전하는 책이라는 성격을 기억할 수 있다.
모세는 죽으러 산에 올라가기 전에 피스가 곁 모압 평지에서 백성에게 율법을 다시 전한다. 이후 산에 올라가 죽고, 하나님께서 그를 묻으신다.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를 무덤에서 꺼내셨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유랑한 40년을 계산에 반영하면, 신명기의 끝은 기원전 1451년에 놓인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시기는 기원전 1451년부터 1421년까지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영광스럽고 성공적인 전투들을 시작하며, 그 결과 유대인들이 그 땅을 차지한다. 이 연대를 따르면, 세속 역사에서 히브리인의 팔레스타인과 가나안 진입 가능 시기로 제시한 기원전 1285년, 곧 카데시 전투 무렵은 너무 늦다.
| 사건 또는 시대 | 제시된 연대 | 연대를 둘러싼 구분 |
|---|---|---|
| 신명기의 끝 | 기원전 1451년 | 광야 유랑 40년을 반영한 시점이다. |
| 여호수아의 가나안 진입과 전쟁 | 기원전 1451~1421년 |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전투를 거쳐 땅을 차지하는 기간이다. |
| 세속 역사에서 제시하는 히브리인의 진입 가능 시기 | 기원전 1285년 | 카데시 전투와 연결한 연대이며, 너무 늦다는 비판을 받는다. |
| 재판관 시대 | 기원전 1200년 무렵 | 가나안 진입을 기다리는 때가 아니라 이미 재판관들의 시대다. |
더 이른 진입 연대를 제시할 때는 여호수아가 모든 일을 마친 때를 기원전 1300년 또는 1400년 무렵으로도 표현하며, 진입 자체는 기원전 1400년으로 잡는다. 중요한 차이는 이스라엘이 기원전 1200년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기원전 1200년은 이미 재판관 시대이므로, 가나안 진입과 정복을 그 시기까지 늦추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기록 연대를 늦추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성경의 사건 발생 연대와 각 책의 기록 연대는 서로 다른 문제지만, 어느 쪽을 늦추느냐에 따라 성경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후대 기록설에 대한 비판은 학자들이 성경 각 책의 기록 시기를 실제보다 늦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 동기에 대한 비판도 강하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학자가 성경이 모든 책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며, 이를 피하려고 기록 연대를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기록 시기를 늦추면 문헌 사이의 선후 관계가 뒤집힌다. 성경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다른 문헌이 발견되었을 때, 그 문헌을 원본으로 삼고 성경은 나중에 그것을 베낀 책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쟁점은 연대 숫자만이 아니라 어느 문헌이 먼저였고 어느 쪽이 다른 쪽을 모방했는가에 있다.
비판의 대상으로 열거되는 견해는 이사야서와 다니엘서의 기록 시기를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로 잡는 것, 율법서를 말라키서가 기록된 시기에 놓는 것, 선지서들이 율법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그라프·벨하우젠·튀빙겐 신학파’라는 이름으로 지목된다. 비판은 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에도 향한다. 루이빌 신학교, 스텟슨, 저드슨, 머서, 유니언 신학교, 콜게이트 로체스터 신학교, 시카고·예일·하버드 대학교가 거론되며, 같은 가르침이 지상의 모든 배교한 신학교에 퍼져 있다는 강한 평가가 따른다.
이에 맞서는 기준은 어셔의 연대다. 어셔의 연대가 옳고 성경에 제시된 내용으로 연대의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성경과 닮은 문헌이 외부에서 발견되더라도 그것을 성경의 원본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이 언제나 먼저이며, 다른 문헌이 성경을 모방했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꼽는 것은 욥기이며, 그 기록 연대는 기원전 1520년경으로 제시된다.
욥기의 사건 시기와 기록 시기는 같을까?
욥기의 기록 시기를 족장들의 역사와 비교하려면 여호수아 시대보다 앞선 연대를 살펴야 한다. 여호수아 시대를 기원전 1451년으로 잡을 때 기원전 1521년은 그보다 앞선 시점이다. 어셔의 연대에서 창세기 34장은 기원전 1739년, 40장은 기원전 1729년, 49장은 기원전 1689년으로 제시된다. 이 연대들은 욥기의 사건을 야곱 시대에 놓고, 그 사건이 언제 기록되었는지를 따지는 기준이 된다.

사건이 일어난 때와 그것을 책으로 기록한 때는 반드시 같지는 않다. 욥기가 사건 당시 기록되었다면 기록 시기는 야곱 시대인 기원전 1700년경이 된다. 반면 저자가 지나간 사건을 나중에 기록했다면 사건과 기록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구원받지 않은 학자들의 견해를 일단 받아들여 후대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야곱 시대에 일어난 일을 야곱이 이집트에서 죽은 뒤 어느 때에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 기록 시기에 관한 조건 | 욥기의 사건과 기록의 관계 |
|---|---|
| 사건 당시 기록되었다면 | 야곱 시대인 기원전 1700년경의 사건을 그때 기록한 것이다. |
| 과거의 사건을 나중에 기록했다면 | 야곱 시대의 사건을 야곱이 이집트에서 죽은 뒤에 기록한 것이다. |
이 두 가능성에 따라 욥기의 기록 시기는 이르게는 기원전 1700년, 늦게는 기원전 1500년의 범위에서 검토된다. 어느 시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모세오경, 곧 모세가 기록한 다섯 책보다 욥기가 먼저 기록되었는지, 두 기록이 거의 같은 시대에 속하는지도 달라진다.
모세가 욥기를 썼다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어야 한다
모세가 등장하는 시기를 기원전 1500년으로 잡으면, 욥기의 기록 연대를 늦게 잡았을 때 두 기록은 거의 같은 시대에 놓일 수 있다. 욥기가 모세오경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뿐 아니라 같은 시기에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 자신이 욥기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저자라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욥기를 기록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욥기에는 율법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을 받은 모세가 쓴 책이라면 그 중요한 내용이 책 전반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율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기록 시기를 가늠하는 단서인 동시에 모세의 저작 가능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욥기의 정확한 기록 시기와 저자는 추정의 영역에 남는다. 기록 시기는 기원전 1500년 이전 어느 때로 잡으며, 그보다 일찍 쓰였다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기 전에 이미 욥기가 존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시기에 쓰였다면 모세의 저작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지만, 율법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가 쓰지 않았을 쪽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 모세가 저자가 아닐 가능성을 ‘천 대 일’로 표현할 만큼 강한 판단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해가 멈춘 긴 하루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간 때는 기원전 1451년경이다. 여리코가 무너진 뒤 아이와 기브온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 정복 과정에서 해가 멈춰 선 긴 하루가 있었다.
긴 하루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단호하다. 성경을 거부하는 불신앙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천문학적 계산으로도 그날을 확인할 수 있다는 확신이 더해진다. 그 근거로 거론되는 인물은 예일의 천문학자 토튼 교수다. 토튼 교수는 1890년에 계산을 검토하여 하루에서 23시간 20분이 빠져 있음을 발견했고, 이를 여호수아의 긴 하루와 연결했다. 그날의 날짜는 오늘날의 달력으로 7월 22일에 해당한다.
계산에는 관측 지점의 위치, 천정을 기준으로 한 태양의 위치, 전날 밤 자정에 떠올라 1시에 지는 달의 움직임도 함께 고려된다. 이런 현상을 계산으로 검토하면 긴 하루의 정확함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 정보의 출처로는 토튼 교수가, 근거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책으로는 해리 리머의 저서들이 제시된다.
여호수아의 긴 하루는 놀라운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킹제임스성경이 무엇을 말하든 목숨을 걸고 믿어도 틀림없다는 확신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재판관 시대의 반복되는 배교와 룻의 예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침공하여 차지한 뒤 장수하고 죽었다. 그 뒤에 이어진 재판관 시대는 기원전 1400년경부터 기원전 1171년경까지로 잡는다. 이 시기에 백성은 하나님께 구출받고도 거듭 하나님을 저버렸다. 백성이 배교에 빠지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어 재판관을 세우시고 그들을 건져 내셨지만, 백성은 다시 배교로 돌아갔다. 재판관기는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실 때마다 다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재판관 시대의 어느 때에 기록된 짧은 책인 룻기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아름답게 보여 준다. 룻과 보아스의 관계는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가장 훌륭하게 나타내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예표란 한 인물과 그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나 교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을 뜻한다. 보아스는 그리스도를, 룻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한다.
| 룻기의 인물 | 예표하는 대상 | 설명의 핵심 |
|---|---|---|
| 보아스 | 그리스도 | 룻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
| 룻 |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 모압 출신 이방인으로서 유대인 신부가 아니다. |
룻이 모압 여인이라는 사실은 이 예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룻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므로 유대인 신부로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이 이방인 여인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에서 솔로몬의 성전까지
사무엘상에 해당하는 시기는 기원전 1186년경부터 기원전 1170년까지로 잡으며, 중심인물은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이다. 사울과의 갈등 끝에 승리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사무엘하에서는 그의 왕권이 강성해지고 여러 왕국을 정복하면서 위대한 인물로 성장한다.
그러나 다윗의 생애에는 승리와 영토 확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죄에 빠져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고, 이후 다시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했다. 또한 하나님께 경배하며 번제와 희생제를 드릴 제단의 터를 마련했다. 다윗에 이어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면, 성전 봉헌이 왕국의 연대를 잡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열왕기상 8장 1절에는 솔로몬이 언약궤를 가져오기 위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열왕기상 8:1 그때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왕에게 소집하여, 그들로 다윗 성읍 시온에서 주의 언약궤를 가져오게 하니라.
솔로몬의 성전 봉헌은 기원전 1000년이라는 확정적인 역사적 기준점에 놓인다. 어셔의 연대기를 적용한 구체적인 연도는 기원전 1004년이다.
| 성전 봉헌의 연대 기준 | 제시된 연대 |
|---|---|
| 솔로몬 시대를 잡는 기본 기준점 | 기원전 1000년 |
| 어셔의 연대기 | 기원전 1004년 |
| 불링거의 연대 | 기원전 950년 |
반면 불링거가 제시한 기원전 950년은 이 기준에서 벗어난 엉뚱한 연대라는 비판을 받는다. 같은 봉헌 사건을 어느 해에 놓느냐에 따라 이후 왕국의 역사를 배열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왕국의 연대를 비교하는 기준
왕국의 연대표를 선택할 때는 솔로몬의 연도뿐 아니라 그 연도를 산정한 방식도 살펴야 한다. 어셔의 연대를 더 신뢰할 만한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불링거가 사용한 달력과 조정 방식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링거의 연대는 프톨레마이오스력·그레고리력·율리우스력을 조정한 데 기초하며, 어셔와의 차이는 솔로몬 시대뿐 아니라 포로 시기에도 나타난다.

레너드 코트렐의 『The Anvil of Civilization』에도 이스라엘 왕정의 연대가 제시되어 있다. 사울의 연대로는 기원전 1028년이, 다윗의 연대로는 기원전 1010년과 970년이 등장한다. 솔로몬의 연대는 기원전 970년으로, 불링거와 어셔가 제시하는 수치와 각각 다르다.
| 솔로몬의 연대 기준 | 제시된 연대 |
|---|---|
| 불링거 | 기원전 950년 |
| 레너드 코트렐 | 기원전 970년 |
| 어셔 | 기원전 1000년 |
코트렐은 구원받지 않은 저자라는 비판을 받지만, 솔로몬의 연대를 기원전 1000년보다 늦게 잡는 저자는 그만이 아니다. 불링거도 기원전 950년을 제시한다. 이들 연대 대신 어셔의 기원전 1000년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후 왕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솔로몬의 통치 영역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모두 차지한다. 열왕기상 4장 21절은 솔로몬이 다스린 왕국들의 경계와 그들이 솔로몬을 섬긴 기간을 함께 밝힌다.
열왕기상 4:21 솔로몬이 모든 왕국들을 다스렸으니 강에서부터 필리스티아인들의 땅과 이집트의 경계까지더라. 그들이 예물들을 가져오며 솔로몬의 평생 동안 그를 섬기니라.
이 통치 범위는 근동 전역에 이른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전역, 아라비아 북부 전체, 시나이반도 전체와 이집트 일부를 포함한다. 바빌로니아·메소포타미아·아시리아 전역을 아우르며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까지 뻗는다. 이 넓은 땅이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어진 땅이며, 본래 동산이 조성되었던 에덴이다. 에덴은 땅의 이름이고, 동산은 그 안에 조성된 곳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의 약속이 솔로몬의 통치 아래 이루어지며, 이 통일 왕국을 다스리는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다.

현대 지도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아라비아반도의 상대적인 위치를 살펴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사울과 다윗을 거쳐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정이 자리 잡는 동안, 이집트에서는 제21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다. 아시리아는 다윗의 거듭된 공격으로 세계 강국으로서 쇠퇴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는 바알 숭배를 동반한 페니키아 식민지들이 세워졌다.
왕국의 배교와 바빌론 포로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이 이어 간 역사는 열왕기상·하와 역대기상·하에 담겨 있다. 기원전 1000년을 기준점으로 삼아 그 역사를 따라가면, 왕국은 갈수록 악해지고 배교에 빠지다가 마침내 바빌론의 침공을 받고 포로 생활에 들어간다. 기원전 598년에는 느부캇넷살이 쳐들어와 여호야킴을 처형하고 여호야킨을 왕으로 세운다. 기원전 587년에는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모조리 무너뜨린다.

| 연대 | 왕국의 변화 |
|---|---|
| 기원전 1000년 | 솔로몬 시대를 기준으로 이후 왕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출발점 |
| 기원전 598년 | 느부캇넷살의 침공, 여호야킴의 처형과 여호야킨의 즉위 |
| 기원전 587년 | 느부캇넷살의 재침공과 파괴, 왕국의 몰락 |
하나님께서 칼데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선택하신 백성의 왕국은 그렇게 끝을 맞는다. 기원전 1000년부터 587년까지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이 다스린 기간이며, 12인치 연대표에서는 5인치 표시를 넘어가는 구간에 놓인다. 한편 역대기하 끝에 이르는 역사를 정리할 때는 기원전 598년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바빌론 포로 생활은 단순히 전쟁에서 패배하여 다른 나라로 끌려간 사건이 아니다. 왕들과 백성이 점점 더 깊이 배교하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서 왕관을 거두신 것이다. 그들은 약속받은 천국의 왕권을 잃고 바빌론의 느부캇넷살 아래에서 포로가 된다. 느부캇넷살은 적그리스도의 예표이며, 함 계열의 니므롯 같은 인물이다. 그가 바빌론에 자리 잡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속한 영역을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유대인에게서 거두어진 왕관은 이방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인간의 왕국으로 넘어간다. 이처럼 왕권이 옮겨 가면서 이방 통치자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마귀가 활동을 시작한다.
초림 이전의 종교와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
예루살렘 파괴부터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이어지는 400~500년 동안 그리스 철학자들과 이교 종교, 성경을 모방한 가르침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그분을 잘못 알아보도록 준비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대신, 여러 종교 전통에서 배운 내용을 전하는 인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파란 눈의 에세네파 사람이 조합 회원증을 지닌 채 돌아다니며 낮고 굵은 목소리로 에트루리아와 엘리시온의 신비 의식을 이야기한다는 풍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에세네파 소속의 이교 신비 의식 교사로 축소하는 모습을 겨냥한다. 외모와 목소리, 회원증까지 갖춘 인물로 과장하여 성경의 그리스도와는 다른 종교 교사의 모습을 그린다.
예루살렘 파괴부터 초림까지의 400~500년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한 온갖 악행이 벌어진 기간이다. 이 비교에서 유일하게 예외로 두는 기간은 1611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다.
루시퍼의 타락과 땅의 재창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 하늘과 땅은 루시퍼의 영향으로 부패했다. 사탄적 존재인 루시퍼는 본래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었다. 에스겔 28장과 이사야 14장은 그의 본래 지위와 타락을 보여 준다.
에스겔 28:14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웠더니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네가 불의 돌들 가운데를 위아래로 걸었도다.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는 표현은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에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그의 영향으로 아름다운 땅이 부패하고 파괴되었으며, 이후 여섯 번의 저녁과 여섯 번의 아침 동안 다시 만들어졌다. 창세기 1장 3절부터 장 끝까지는 이처럼 파괴된 땅을 다시 만드시는 과정을 기록한 말씀이다.
창세기 1: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하나님께서 빛을 명하시는 장면에서 땅의 재창조가 시작된다. 그 뒤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땅에 놓였지만, 두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타락했다. 땅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위에 사는 인간의 순종까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아담과 이브는 타락한 뒤 땅을 갈고 괭이질하는 법을 배워야 했으며, 그들의 삶에서 우리가 아는 문명의 첫 모습이 나타났다.
인간의 출발을 타락과 그 이후의 삶에서 찾는 이러한 역사 이해는 다윈의 이론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인간의 타락이 제정신인 사람에게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도 다윈이 이를 부정했다는 비판이다. 비판의 강도는 다윈이 그 이론에서 정신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며 지적으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데까지 이른다. 같은 이유로 ‘선사시대’, 곧 역사 이전이라는 명칭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어내려는 시도를 달리 부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문명에서 홍수 이후의 민족과 아브라함까지
인간의 역사 자체는 기원전 4000년 또는 4004년 무렵에 시작된다. 아담과 이브의 등장, 농경의 시작, 문명의 첫 모습이 모두 이 출발점에 놓인다. 아담은 나일강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의 첫 파라오이며, 그의 두 아들은 이집트의 판에 새긴 역사 기록과 상형문자 기록, 『사자의 서』를 비롯한 이집트 문헌들에 언급된 인물들이다.
두 아들은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셋이 아벨을 대신한 뒤, 후손들은 땅에 퍼져 살았다. 그러나 사람이 늘어나는 동안 부패도 함께 퍼졌다. 기원전 2400년경 노아의 때에는 땅이 너무나 부패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고, 전 지구적인 대홍수로 심판하셨다.
| 시점 | 사건 | 인류 역사의 변화 |
|---|---|---|
| 기원전 4000년 또는 4004년 무렵 | 아담과 이브의 등장과 타락 | 농경을 배우며 문명의 첫 모습이 나타난다. |
| 기원전 2400년경 |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 | 부패한 땅에 심판이 임한다. |
| 홍수 이후 | 노아의 아들들이 방주에서 나와 번성한다. | 인류가 땅을 다시 채우며 세 대륙으로 흩어진다. |
| 이후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칼데아 우르에서 불러내신다. | 퍼져 나간 인류 가운데서 한 집단을 선택하신다. |
홍수가 끝나자 노아의 아들들은 방주에서 나와 땅에 살며 번성했다. 그들의 후손은 땅을 다시 채우며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세 대륙으로 흩어졌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상대적 위치를 보여 주는 현대 지도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강조되어 있으며, 그 남서쪽에 이집트가 있다.
홍수 이후의 분산으로 니그로이드·몽골로이드·코카서스라는 세 인종 집단이 형성되었으며, 창세기 9장의 세 가지 운명은 이 집단들에게 적용된다. 인류가 유럽계·아시아계·아프리카계의 세 주요 집단으로 퍼져 나간 뒤, 하나님께서는 칼데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그 가운데 한 집단을 선택하셨다. 땅에 번성한 여러 민족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소명과 선택받은 집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소명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민족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란스러워진 뒤,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 집단 가운데서 불려 나와 그 민족들 가운데 계수되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따로 부르신 것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복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들을 향했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 22:18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음성에 복종하였음이라.” 하더라.
창세기 12장 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약속은 22장 18절에서 그의 씨로 이어진다. 한 사람을 여러 민족 가운데서 구별하여 부르셨지만, 그와 그의 씨를 통해 복을 받을 대상은 땅의 모든 족속과 민족이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진 후손들은 이집트로 내려가 종살이를 하다가 그곳에서 나왔다.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1400년, 1300년으로 이어지는 시대에는 출애굽과 약속의 땅 진입, 재판관 시대의 역사가 놓인다.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떠난 뒤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으며,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들어가 그곳의 나라들과 왕국들과 왕들을 정복했다. 정복 이후에는 재판관 시대를 거쳐 왕들이 다스리는 시대가 열렸다.
| 시기 | 사건과 시대 |
|---|---|
| 기원전 1400년경 |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복을 진행한다. |
| 대략 기원전 1400~1171년 | 재판관기의 시대가 이어진다. |
| 재판관 시대가 끝나는 무렵 | 사울과 사무엘과 다윗이 등장하는 시기로 넘어간다. |
| 솔로몬 사후 | 히브리 왕국이 분열된다. |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진 왕관과 이방인들의 때
솔로몬이 죽은 뒤 분열된 왕국에서는 선한 왕과 악한 왕이 번갈아 등장했고, 백성은 점차 부패해 갔다. 마침내 여코냐, 곧 예레미야서에서 코니야라고 불리는 왕이 다스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왕관을 거두셨다.

여기서 왕관은 땅을 다스리는 왕권을 뜻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서 불러내신 유대 민족은 물리적이고 문자적이며 눈에 보이는 유업을 받도록 구별되었다. 그러나 땅의 왕관은 이제 그 민족에게서 느부캇넷살에게 넘어갔다. 이 왕권 이전으로 기원전 606년경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된다. 예루살렘의 최종적인 파괴는 그보다 뒤인 기원전 587년에 일어나므로, 두 사건의 시점은 구별해야 한다.
예레미야 22장 26~30절에 기록된 코니야에 대한 심판은 왕과 그 가족의 추방뿐 아니라 후손의 왕위까지 다룬다.
예레미야 22:26 또 내가 너와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너희가 태어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쫓아내리니 거기서 너희가 죽으리라.
예레미야 22:27 그들이 돌아오고 싶어하는 그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
예레미야 22:28 이 사람 코니야가 멸시받는 부서진 우상이냐? 그가 그 안에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들, 즉 그와 그의 씨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땅으로 쫓겨났느냐?
예레미야 22:29 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주의 말을 들으라.
예레미야 22:30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에 번성치 못할 사람이라고 쓰라. 이는 그의 씨에서는 아무도 번성치 못하며 다윗의 보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더 이상 없을 것임이라.
코니야와 그의 어머니는 타국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고, 돌아오기를 바라던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기에 30절은 그의 씨 가운데 다윗의 보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심판을 더한다. 한 왕이 추방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이 왕위를 잇는 길도 끊어진다. 이스라엘에게서 왕관을 거두신다는 말은 바로 이 왕위의 단절과 연결된다.
예레미야 애가 5:16 면류관이 우리의 머리에서 떨어졌으니 우리에게 화로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음이라.
예레미야애가 5장 16절에서 유대인들은 왕관을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왕권 상실은 왕국의 분열 이후 계속된 백성의 부패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의 머리에서 왕관이 떨어지고 땅의 왕권이 느부캇넷살에게 넘어가면서, 이방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시대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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