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 성경

사탄의 삼위일체와 적그리스도의 예표: 역사적 통치자와 현대 국가의 대응

사탄의 삼위일체는 사탄·적그리스도·거짓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위와 경배를 모방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용은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한다. 이 관계를 이해하려면 세 존재의 역할을 먼저 살핀 뒤, 이미 활동하는 적그리스도의 영과 미래에 나타날 최종 인물을 구분해야 한다.

사탄의 삼위일체와 참 하나님을 모방하는 역할

사탄의 삼위일체는 사탄,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를 묶어 부르는 표현이다. 사탄이 하나님을 흉내 내려 한다는 관점에서 세 존재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존재모방 대상역할의 연결점
사탄아버지 하나님거짓말의 아비이며 적그리스도에게 권세를 준다.
적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사탄을 육신으로 나타내며 하나님으로 경배받으려 한다.
거짓 선지자성령적그리스도를 대표하고 높이며 그에게 경배하도록 이끈다.

사탄과 아버지 하나님의 모방 관계는 사탄을 거짓말의 아비라고 부르는 말씀과 연결된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적그리스도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한다. 이때 핵심은 단순히 외형이나 명칭이 비슷하다는 데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경배받으셔야 하는 분인 데 반해,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으로 경배받으려 한다는 관계에 있다.

거짓 선지자와 성령의 대응 역시 남은 자리를 맞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첫째 연결점은 예언과 영의 관계이다. 참된 선지자의 말과 예언은 성령의 역사에 의존한다. 한편 신탁이나 영들과의 만남을 말하는 예언 활동, 오늘날의 주술과 오컬트에서 영들과 접촉한다고 하는 예언자와 선견자도 있다. 여기서 비교하는 것은 이 활동들이 모두 같은 영에서 나온다는 뜻이 아니라, 예언 활동에 영의 작용이 관련된다는 구조이다.

둘째 연결점은 다른 존재를 대표하고 높이는 역할이다. 요한복음 14장과 16장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높이며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분으로 설명된다. 거짓 선지자는 이를 모방하여 적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고 그를 대표한다. 누가 앞에 서느냐뿐 아니라 누구를 높이고 누구에게 경배를 돌리느냐가 중요한 구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아버지와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가리키신다는 사실은 그분의 신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드러내는 근거로 이해된다.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시니

김진하 목사는 이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슬람의 견해에 대한 반박으로도 제시한다. 그의 논지는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신성과 연결하셨으며,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는 견해와 그 선언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 되심은 신성을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신성을 드러내는 선언이라고 강조한다.

같은 모방 구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고, 적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 사탄, 곧 육신을 입은 이 세상의 신으로 규정된다. 다만 모방이 모든 특징의 완전한 일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시며 아버지를 나타내시면서도 구별되시는 관계를 비교 근거로 삼아, 적그리스도가 사탄을 나타내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용의 권세와 두 짐승의 경배 체계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다른 짐승이 등장한다. 첫째 짐승은 적그리스도, 다른 짐승은 거짓 선지자로 구별된다. 용은 첫째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 사탄이다.

요한계시록 13:4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그 짐승과 같으며 누가 감히 그와 더불어 싸울 수 있으리요?”라고 하더라.

환난 중 경배받는 대상은 적그리스도만이 아니다. 그에게 권세를 준 용도 경배받는다. 이는 사탄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방한다는 설명과 연결된다.

요한계시록 13:11 또 내가 보니,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어린양처럼 두 뿔을 가졌으며 용과 같이 말하더라.

요한계시록 13:12 그가 자기 앞에 있던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사하고 또 땅과 거기에 사는 자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받은 그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더라.

다른 짐승은 어린양 같은 두 뿔을 가졌으나 용처럼 말한다. 외형과 말의 성격이 대조되며, 행사하는 권세와 경배를 돌리는 대상이 첫째 짐승과 연결된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만을 높이는 독립적 지도자가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받은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경배를 집중시키는 존재이다.

용의 권세, 짐승에 대한 경배, 거짓 선지자의 강요 용에게서 짐승으로 권세가 주어지고, 거짓 선지자는 짐승을 향한 경배를 강요한다.

이미 활동하는 적그리스도의 영과 미래의 최종 인물

누가 적그리스도인가에 대한 관심은 시대마다 다른 후보를 낳는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때에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강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후에는 트럼프를 두고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재러드 쿠슈너, 교황도 후보로 거론된다. 쿠슈너에 대해서는 유대계 배경과의 관련성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후보설을 소개하는 것과 특정 현대 인물을 최종 적그리스도로 확정하는 것은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네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히틀러가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예표로 제시된다. 네로가 유력한 후보처럼 보였더라도 그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는 않았다. 히틀러 역시 적그리스도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인물이라는 판단과 최종 적그리스도라는 지목은 구별된다.

이 구별의 핵심은 동일한 인물인가가 아니라 같은 영을 따르는가이다.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한일서 4:2 하나님의 영을 너희가 이렇게 알지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한일서 4: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그것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지금 그것이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

앞으로 온다는 표현과 지금 이미 세상에 있다는 표현은 서로 배제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이미 활동하지만, 최종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등장한다. 이 관점에서는 그 영이 역사 속 여러 사람을 선택하고 그들 안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다.

요한일서 2:18 어린 자녀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너희가 들었던 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로써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느니라.

여러 적그리스도가 있다는 말은 최종 인물이 여럿이라는 뜻으로 읽지 않는다. 역사 속 예표들과 마지막에 등장할 인물을 구별하는 것이다. 예표들을 비공식적인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의미이다.

역사적 후보를 선정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계 통치자라는 지위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 적그리스도와 닮은 태도와 행동이다. 단순히 외모가 비슷하거나 악명이 높다는 이유가 아니라, 통치와 행동에서 같은 영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판단이다. 김진하 목사는 이 기준으로 선택된 인물들이 억지스러운 후보가 아니라고 강하게 옹호하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 전체에서 누가 더 적합한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럭크만 목사의 인물·숫자 대응

피터 S. 럭크만(Peter S. Ruckman) 목사의 설명을 소개하면서 김진하 목사가 여섯 적그리스도라고 부른 수적 대응은 다음과 같다.

숫자대응 인물 또는 의미
111네로
222콘스탄티누스
333샤를마뉴
444나폴레옹
555히틀러
666적그리스도
777예수 그리스도
888새로운 것
999결실

이 도식에서 히틀러는 666이 아니라 555에 해당하며, 최종 적그리스도를 앞서 보여 주는 예표이다. 이후 적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새로운 것, 결실로 이어지는 순서는 세계사의 흐름을 수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9가 마지막 숫자인 까닭에 관한 질문도 이 연결에서 나온다. 관련 자료로는 럭크만 목사의 성경 연구 도표와 개요가 제시된다.

이 대응은 각 통치자의 이름과 숫자를 직접 연결한 성경 구절의 목록이 아니라, 여러 단서를 종합하는 럭크만 목사의 수적 해석 체계이다. 김진하 목사는 샤를마뉴가 333이라고 명시한 한 구절을 요구하는 식으로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연결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예표가 존재한다는 성경적 논증과 각 예표에 특정 숫자를 배정하는 도식은 구별되지만, 그는 둘 다 자의적으로 지어낸 설명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일곱 머리와 열 뿔: 왕권의 상징과 왕관의 차이

용과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왕관의 수와 위치가 다르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났으니, 보라,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 머리들 위에는 일곱 왕관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3:1 내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보니, 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그 뿔들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요소붉은 용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머리일곱일곱
뿔열열
왕관일곱, 머리들 위열, 뿔들 위
머리의 추가 묘사왕관이 있음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음

용과 짐승의 머리·뿔·왕관 비교

왕관은 왕권과 연결되며, 뿔도 왕과 통치자를 나타낸다. 특히 열 뿔의 의미는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직접 설명된다.

요한계시록 17:12 또 네가 본 그 열 뿔은 열 왕이라. 아직 왕국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들로서의 권세를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17:16 네가 그 짐승에게서 본 열 뿔은 그 창녀를 증오하며, 그녀를 패망시키고 벌거벗기며, 그녀의 살을 먹고 그녀를 불로 태우리라.

13장과 17장의 짐승은 같은 대상으로 연결된다. 열 뿔은 짐승과 함께 권세를 받는 열 왕이며, 창녀를 파멸시키는 행동에도 참여한다. 머리와 뿔을 왕권으로 읽더라도 수량과 위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용의 왕관은 머리 위에 일곱이고, 짐승의 왕관은 뿔 위에 열이다. 왕관 수의 차이는 셋이다.

왕관과 뿔의 기원에 관한 주장

김진하 목사는 왕관이 뿔에서 유래했으며, 왕관의 여러 돌출부도 그 기원과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니므롯을 최초의 왕 중의 왕이자 세계 통치자로 부르고, 니므롯에게 늘 뿔 하나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뿔에 사람들이 더 많은 뿔을 붙이려 했다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흐름이다.

그는 뿔과 왕권의 관계를 앗시리아 역사 및 길가메시와 니므롯의 연결에서도 찾는다. 이는 고대 왕권의 상징에 관한 김진하 목사의 주장이다.

세상 왕국과 그 배후의 영적 권세

일곱 머리를 왕들로 읽는다면, 그 대상을 미래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이미 역사 속에서 활동해 왔고 사탄도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므로, 역사 전반의 세계 통치자들을 살필 수 있다는 논리이다. 사탄의 활동은 시편이 다루는 옛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세상의 신이 사탄이라면, 자신을 대신하여 다스릴 통치자에게 권세를 줄 수 있다는 설명은 다음 본문과 연결된다.

누가복음 4:5 그러자 마귀가 주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동안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 주더라.

누가복음 4:6 그리고 마귀가 주께 말하기를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것들의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그것이 나에게 넘겨졌으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느니라.

여기서 권세를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주체는 마귀이다. 이 발언을 세상 왕국에 대한 사탄의 권세와 대리 통치자 선택의 근거로 읽는다. 세계 통치자의 배후에 영적 권세가 있다는 전제에서, 역사적 왕국과 통치자 가운데 일곱 머리에 가장 잘 들어맞는 후보를 찾게 된다.

인간 왕과 영적 통치자의 구별

역사적 인간 왕과 그 배후의 영적 존재는 같은 층위가 아니다.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 인간 통치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사탄이나 적그리스도를 함께 가리킨다는 독법이 그 연결을 뒷받침한다.

김진하 목사는 에스겔서의 파라오를 리비야단과 연결하고, 투로 왕에게 적용되는 그룹의 묘사도 배후의 영적 존재를 드러낸다고 본다. 여기서 그룹은 집단이 아니라 영적 피조물의 명칭이다. 평범한 인간 왕만을 대상으로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묘사가, 그 왕을 통해 활동하는 영적 존재까지 함께 가리킨다고 보면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통치자에 관한 다니엘 10장도 이러한 구별에 연결된다.

다니엘 10:20 그때 그가 말하기를 “너는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아느냐? 이제 내가 페르시아의 통치자와 싸우려고 돌아갈 것이라. 보라, 내가 가면 그리스의 통치자가 올 것이니라.

김진하 목사는 그리스의 통치자를 적그리스도와 연결하고,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사탄을 가리킨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한다. 이 영적 통치자에 대한 판단과 그리스의 인간 통치자를 알렉산더 대왕으로 선정하는 일은 구별된다.

기도 응답의 지연과 영적 충돌

다니엘의 기도는 처음부터 들렸지만, 응답을 전달하는 과정에는 영적 저항이 있었다.

다니엘 10:12 그때에 그가 내게 말하기를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네가 깨닫고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손하기로 마음을 정한 첫날부터 네 말이 들린 바 되었기에 내가 네 말들로 인하여 왔느니라.

다니엘 10:13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가로막았도다. 그러나 보라, 최고 통치자들 중의 하나인 미카엘이 나를 도우러 왔고, 내가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거기 있었노라.

페르시아의 통치자는 다니엘에게 오는 천사를 가로막았고, 미카엘이 그를 도왔다. 김진하 목사는 이 충돌을 인간 왕의 배후에 영적 권세가 있다는 근거로 삼는다.

일곱 머리에 대응하는 역사적 통치자 후보

역사적 후보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로마에서 이전 왕국들로 거슬러 올라가며 선정된다. 이를 시대순으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왕국·시대통치자 후보
고대 바빌론·바빌로니아니므롯
이집트파라오
앗시리아산헤립
바빌론느부캇넷살
페르시아코레스 또는 다리오
그리스알렉산더 대왕
로마카이사

일곱 머리에 대응하는 역사적 통치자들

코레스와 다리오는 한 자리에 들어갈 대안이지, 별개의 두 왕으로 세는 것이 아니다. 파라오와 카이사는 특정 개인 이름으로 좁혀지지 않은 통치자 호칭이다. 니므롯의 고대 바빌론은 느부캇넷살의 바빌론과 구별되는 이른 시대의 항목이며, 니므롯은 최초의 세계 통치자로 제시된다.

이 목록은 가장 잘 들어맞는 후보들을 선정한 것이지만, 개별 대응에 대한 확신의 강도는 같지 않다. 로마와 그리스의 해당성은 역사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고 주장하며, 이집트와 파라오의 연결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페르시아의 인간 통치자는 코레스 또는 다리오라는 가능성을 남긴다.

후보 선정의 성경적 연결로는 느부캇넷살을 용과 연결하는 설명, 산헤립과 앗시리아인을 적그리스도로 읽는 설명, 파라오를 영적 피조물과 연결하는 설명이 제시된다. 이들은 인간 통치자와 그 배후의 영이 함께 드러난다는 독법에 속한다.

역사 속 일곱 후보를 찾은 뒤 남는 문제는 용의 일곱 왕관과 짐승의 열 왕관 사이에 있는 셋의 차이이다. 사탄은 역사 내내 활동했지만 최종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등장한다. 따라서 나머지 셋은 과거 통치자를 더 추가하기보다 미래의 왕과 왕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표범·곰·사자와 다니엘의 네 짐승

나머지 세 왕국의 단서는 요한계시록 13장의 복합적인 동물 묘사에서 찾는다.

요한계시록 13:2 또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같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자리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

여기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등장한 세 짐승이 아니라 하나의 짐승을 이루는 세 동물의 특징이 있다. 주된 몸체는 표범과 같고, 발은 곰의 발 같으며, 입은 사자의 입 같다. 이 셋을 미래의 세 왕과 왕국에 연결한다.

표범의 몸, 곰의 발, 사자의 입 하나의 짐승에 표범의 몸, 곰의 발, 사자의 입이라는 특징이 함께 나타난다.

이 연결의 근거는 다니엘 7장의 네 짐승이다.

다니엘 7:4 첫째는 사자 같고 독수리의 날개가 있는데, 내가 보니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발로 서 있게 되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다니엘 7:5 또 다른 짐승을 보니, 둘째는 곰과 같고 그것이 몸 한쪽 편을 들어올렸는데, 그 입의 잇사이에 갈비뼈 세 대가 물려 있으며 그들이 그 짐승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다니엘 7:6 이 일 후에 내가 보았더니, 보라, 또 하나는 표범과 같은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은 머리도 네 개가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다니엘 7:7 이 일 후에 내가 밤에 환상들을 보았고 넷째 짐승을 보았는데, 두렵고 무서우며 힘이 매우 세고 또 철로 된 큰 이빨을 가졌더라. 그 짐승이 먹고 산산이 부수며 그 나머지는 발로 밟더라. 그 짐승은 먼저 있었던 모든 짐승들과 다르며 또 그 짐승은 열 뿔을 가졌더라.

넷째 짐승에서 주목하는 특징은 앞선 짐승들과 다르다는 점과 열 뿔을 가졌다는 점이다. 김진하 목사는 영어의 ‘다르다’라는 표현을 여러 요소의 다양성이 결합된 상태와 연결한다. 현대 사회가 다양성을 장려하며 여러 국가와 국적의 통합을 말하는 모습을 비유로 삼아, 넷째 짐승을 사자·곰·표범의 특징이 결합된 존재로 이해한다.

같은 세 동물의 특징과 열 뿔이 요한계시록 13장에도 나타나므로, 다니엘 7장의 넷째 짐승과 요한계시록의 짐승을 동일한 대상으로 본다. 그는 다니엘 7장이 이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유일한 대응 본문이며, 요한이 다니엘의 이 묘사를 가리키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왕과 왕국으로 읽는 근거도 본문 안에 있다.

다니엘 7:17 이 커다란 네 짐승은 땅에서 일어날 네 왕이라.

다니엘 7:23 그러므로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넷째 짐승은 땅 위의 넷째 왕국이 되리니 그것은 모든 왕국들과 달라서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밟아서 산산조각을 낼 것이라.

네 짐승을 네 왕으로, 넷째 짐승을 넷째 왕국으로 설명하는 17절과 23절은 국가 대응을 살피는 토대가 된다. 19–20절의 넷째 짐승과 열 뿔에 관한 질문도 이 왕권의 문맥 안에 있다.

역사적 왕국과 현대 국가의 대응

역사적 왕국과 현대 국가의 대응은 다음과 같다.

동물역사적 왕국에 대한 대응현대 국가에 대한 대응
사자페르시아잉글랜드
곰그리스러시아
표범로마미국

역사적 왕국은 사자-페르시아, 곰-그리스, 표범-로마로 연결된다. 현대 국가와의 대응은 과거 왕국 배후에서 활동한 영이 현대 국가에도 반영된다는 관점에 따른다.

이때 영적 모습과 물리적 현실을 구별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영적 영역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성격이 동물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인간이 접하는 현실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국가, 언어, 정치적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현대 국가를 찾는 작업은 이러한 특징을 함께 충족하는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사자와 잉글랜드: 입, 언어, 날개 달린 상징

사자의 입은 말하는 기능과 연결된다. 미래에 세계적으로 사용될 언어를 영어로 보고, 그 언어의 국가적 연결점으로 잉글랜드를 제시한다. 적그리스도의 영적 모습이 사자의 입으로 표현된다면, 물리적 관점에서는 그 입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물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다니엘의 사자에게 독수리의 날개가 있다는 점도 같은 대응에 사용된다. 김진하 목사는 날개 달린 사자를 그리핀이라고 부르며, 이를 잉글랜드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설명한다. 영어와 날개 달린 사자라는 두 특징이 같은 국가를 가리킨다고 판단하며 잉글랜드와의 연결을 강하게 확신한다.

곰과 러시아: 전쟁, 세 갈비뼈, 정교회의 연결

곰의 발은 행진과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러시아가 전쟁에 나설 때 곰처럼 행진한다고들 하는 표현을 소개하고, 곰이 몸을 일으키는 행동을 공격 준비와 연결한다. 다니엘 7:5에서 몸 한쪽을 들어 올리고 많은 고기를 먹으라는 말을 듣는 모습은 전쟁을 나타낸다고 본다.

곰의 입에는 갈비뼈 세 대가 있지만, 각각을 특정 국가나 사건으로 배정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도 관련 주제로 언급되지만, 세 갈비뼈를 그 전쟁의 특정 대상에 대응시키는 주장은 아니다.

역사적 그리스와 현대 러시아를 잇는 또 하나의 연결점은 종교이다. 김진하 목사는 러시아의 대표 종교를 그리스 정교회라고 설명하며, 정교회와 그리스의 관계를 앞서 제시한 곰의 역사적 대응에 연결한다. 전쟁의 이미지와 종교적 연속성이 함께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러시아를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보고, 이 대응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한다.

표범과 미국: 주된 몸체와 세계적 중심성

표범은 짐승의 주된 몸체이다. 이에 대응하는 현대 국가는 세계가 주목하는 중심 국가여야 한다는 논리에서 미국을 선정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안다는 사실을 미국의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보여 주는 사례로 든다. 여기서 트럼프는 세계적 관심의 예이지 최종 적그리스도로 지목된 인물이 아니다.

표범의 몸체에는 인종적 혼합이라는 의미도 부여된다. 김진하 목사는 자신이 사회학 입문 수업인 Sociology 101에서 배웠던 몽골로이드(Mongoloid), 니그로이드(Negroid), 코카시안(Caucasian)의 옛 인종 삼분류를 소개한다. 다만 오늘날에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 분류는 그의 과거 학습 경험에서 가져온 비유이지, 현재의 정확한 인종 분류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표범의 검은 반점, 노란 몸, 흰 배를 이 세 범주와 연결하여 여러 인종이 한 사회에 섞이는 용광로에 비유한다. 여러 색이 한 몸에 있다는 점이 미국의 인종적 혼합과 들어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사자의 입과 곰의 발도 이 미국 중심의 몸체에 연결된다. 미국이 영어로 말한다는 점은 사자의 입에, 공산주의나 좌파 이념처럼 움직인다는 정치적 비판은 곰의 발에 대응한다. 후자는 미국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김진하 목사의 평가이며, 발을 움직임과 연결한 적용이다.

피터 S. 럭크만 목사는 이미 1960~1970년대에 이러한 설명을 했다고 소개된다. 김진하 목사는 그 시기를 들어 럭크만 목사의 설명이 엉뚱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본 해석이었다고 평가한다. 반대하는 경우에는 다니엘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여러 특징을 더 잘 설명할 조직, 왕, 국가를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신비의 바빌론과 공통된 영이라는 설명

표범을 로마에서 미국으로 연결하는 논거에는 신비의 바빌론에 관한 해석도 포함된다. 널리 거론되는 두 대상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미국이다.

요한계시록 17~18장을 로마 카톨릭 교회에 적용하는 쪽을 더 강한 해석으로 평가하지만, 같은 장들의 여러 특징을 미국에 적용하는 설명도 들어맞는다고 본다. 둘 중 하나만 관련될 수 있다는 접근이 아니라, 양쪽에서 바빌론의 영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더 유력한 후보를 선정하는 일과 다른 대상에게도 같은 영적 성격이 나타난다고 보는 일은 양립한다.

김진하 목사는 이집트, 워싱턴 D.C., 카톨릭 교회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공통점으로 들고, 로마 카톨릭 교회와 워싱턴 D.C.에서 프리메이슨적이라고 판단하는 요소들도 연결한다. 그는 이러한 일치가 많다는 점을 같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공유한다는 근거로 제시한다. 이는 건축물과 상징의 유사성에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주장이다.

이 설명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미국은 동일한 조직이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대상에게 같은 영이 작용할 수 있다는 원리가 역사적 예표들뿐 아니라 현대의 국가와 종교 조직에도 적용된다.

교황은 적그리스도인가, 거짓 선지자인가

교황에 대해서는 두 견해가 경쟁한다. 하나는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성격을 근거로 거짓 선지자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견해이다.

김진하 목사는 럭크만 목사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가르쳤다고 소개한다. 또한 대각성 운동의 모든 부흥 설교자와 개신교 종교개혁의 영웅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모두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불렀다고 주장하며, 이 해석이 자신이 속한 교회의 역사와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 계보를 끊지 않는 것이 옳다고 믿고, 요한계시록 17~18장을 카톨릭 교회에 연결한다.

종교성과 정치성을 함께 지닌다는 논거

교황이 종교 지도자이므로 거짓 선지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적그리스도 역시 종교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경배를 받는 존재이므로 종교성을 지닌다. 종교적이라는 특징만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나눌 수는 없다.

교황을 적그리스도 후보로 보는 핵심 논거는 세계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는 판단이다. 김진하 목사는 교황이 정치 문제에 가장 깊이 관여하는 종교 지도자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다른 교회와 달리 카톨릭 교회가 면제를 받는다는 점도 비판한다. 종교 지도자의 지위와 세계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함께 지닌다는 것이 이 비판의 초점이다.

예수회 선서에 대한 주장도 같은 논거에 포함된다. 김진하 목사는 그 선서가 온 세계를 교황 앞에 굴복시키는 일을 임무로 삼는다고 설명하고, 이를 경배와 세계적 권위의 결합에 연결한다.

현재 교황의 모습이 적그리스도의 조건과 맞지 않아 보인다는 반론에는 현재의 권력 구조가 환난 때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답한다. 카톨릭 교회는 계속 변화하고 변모해 왔으며, 환난의 세계적 권력 변화 속에서도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래 교황과 무슬림 거짓 선지자라는 개인적 가설

김진하 목사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가설은 미래의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되고, 무슬림 인물이 거짓 선지자가 될 가능성이다. 이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개인적 이론이며, 다투면서 지켜야 할 확고한 교리로 제시되지 않는다. 또한 그는 발언 당시 재임 중인 교황을 최종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재임자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이 가설에는 종교적 대표성의 차이에 관한 주장이 포함된다. 김진하 목사는 카톨릭 신자들이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표자이자 지상의 그리스도로 바라본다고 설명하며, 교리문답을 그 근거로 든다. 반면 무슬림이 기다리는 대상은 그리스도의 대표자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설명한다. 이 대비를 통해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적그리스도에는 교황이, 선지자의 역할에는 무슬림 인물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카톨릭과 이슬람의 대표성에 대한 그의 설명을 미래 인물의 역할에 적용한 가설이다. 특정 교황이나 특정 무슬림 인물의 신원을 확정한 주장이 아니다.

살해와 표를 강요하는 거짓 선지자의 역할

후보 대응의 또 다른 논거는 거짓 선지자가 수행하는 강제 집행이다.

요한계시록 13:15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

요한계시록 13:16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고 말하게 하며, 경배하지 않는 자를 죽이도록 한다. 또한 신분과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 환난 성도에 대한 학살과 표의 강제를 집행하는 주체를 적그리스도와 구별되는 거짓 선지자로 보는 것이다.

김진하 목사는 여기에 꾸란이 개종하지 않는 사람의 손과 머리를 자르는 일을 말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연결한다. 그는 이 꾸란에 대한 이해를 무슬림 거짓 선지자 가설의 논거로 사용한다.

정치적·종교적 권위를 함께 지닌 인물과 그 인물을 위해 경배와 표를 강요하는 인물을 구별할 때, 교황과 무슬림이라는 조합이 자신에게 더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 평가의 강도와 별개로, 이 조합은 개인적 가설이라는 범위 안에 남는다.

기초 교리와 심화 해석의 관계

기초 교리는 초보자가 한 번 배우고 지나가는 내용이 아니라, 더 깊은 교리를 이해할 때 계속 돌아가야 하는 토대이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주의를 거두면, 익숙한 말씀 안에서 새로운 연결을 발견할 기회를 잃는다. 같은 교리를 열 번째 듣더라도 관련 구절을 자세히 살피고, 자신의 이해를 더 단단하게 해 줄 내용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복 횟수가 아니라 반복할 때의 태도이다.

김진하 목사는 익숙한 가르침을 소홀히 여기지 않은 덕분에 수없이 목숨을 건졌다고 표현할 만큼 반복 학습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한다. 사람들이 그의 설명에서 여러 내용을 연결해 주는 점을 좋게 평가하는 데 대해서도, 그 출발점을 특별한 연결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에 둔다. 반복해서 익힌 말씀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가 심화 교리를 살필 때 서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말씀을 반복해서 익히는 일이 새로운 구절을 기존 지식과 연결하는 사고방식까지 길러 준다는 설명이다.

이 학습법의 바탕에는 KJV의 모든 단어가 완전하다는 확신과 성경을 올바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분과 말씀의 단어에 대한 신뢰는 심화 교리와 별개인 주제가 아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처음 확인한 본문과 구분을 유지해야 한다. 기초와의 연결을 놓친 채 새로운 설명만 따라가면,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토대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

거짓 선지자의 영과 역사적 흔적이라는 열린 문제

적그리스도의 영이 역사 속 여러 인물을 통해 활동했다면, 거짓 선지자의 영도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는 아직 결론을 내린 교리가 아니라 탐구의 가능성이다.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제시한 작용 방식이 거짓 선지자의 영에도 적용된다면,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서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현재 사건들에서도 같은 영을 공유하는 연결점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특정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의 영도 역사 속에서 활동했다면 그 흔적은 어떤 인물과 사건에 남아 있을까? 적그리스도의 예표를 살피는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 글은 성경 교사 김진하(Gene Kim) 목사의 「The Satanic Trinity」 멜버른 강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재구성한 성경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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